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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미의 ‘도시미술 산책’ ⑥ 클래스 올덴버그 ‘건축가의 손수건(Architect’s Handkerchief)’ - 일상의 커튼 뒤에 숨은 ‘이상한 나라’ 

예술가들이 선사하는 ‘낯설게 보기의 기술’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 발견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 정문 앞에 설치돼 있는 ‘건축가의 손수건(Architect’s Handkerchief)’ 1999년 작.
‘Drink Me’.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주인공 앨리스는 실수로 깊은 구덩이로 굴러 떨어집니다. 테이블 위에는 ‘Drink Me’라고 쓰인 수상쩍은 물약이 하나 있습니다. 빠져나갈 도리가 없는 갇힌 공간에서 앨리스는 망설이다 물약을 꿀꺽 삼킵니다. 앨리스는 어떻게 됐을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앨리스는 귀뚜라미만큼이나 작아집니다. 작아진 앨리스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갑자기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평범했던 탁자가 빌딩 만해지고 평소엔 잘 보이지도 않았던 흠집이 마른 계곡처럼 커집니다.

꼭 몸이 커지거나 작아지지 않더라도 세상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늘 새로울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온갖 것이 신기했죠. 개미를 한참 들여다보던 어릴 적 기억이 있나요? 돌멩이나 유리구슬 따위에서 우주를 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작은 물건에도 무수한 이야기와 흔적이 새겨진 광경이 참 신기해서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새 어른이 되고, 태어나서 처음 봤던 벽지의 무늬나 엄마 등에서 나던 냄새, 하늘색 포대기의 포슬포슬한 느낌 같은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어느 순간 나만의 신기하고 모험 가득했던 ‘이상한 나라’는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매번 모든 것을 자세히 관찰하고 새삼스럽게 감탄하다가는 바보 소리 듣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희미했던 ‘이상한 나라’의 기억을 번쩍 떠올리게 하는 곳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쇼핑백을 들고 바삐 오가는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앞입니다. 백화점 앞의 조형물을 보는 순간 저는 물약을 마신 앨리스처럼 잠깐 어리둥절해 집니다. 너무 커서 추상 조형물처럼 보이는 이것은 클래스 올덴버그의 작품 ‘건축가의 손수건’이랍니다. 손수건이라고? 저는 애벌레만큼 작아진 기분으로 어떤 남자의 수트(왜인지는 모르나 그 남자의 직업은 건축가)포켓에서 살짝 빠져 나와 바람에 날리고 있는 손수건을 바라봅니다.

일상의 반전, 그 짜릿함

사실 크기나 질감을 반전시킨 클래스 올덴버그의 작품은 이 외에도 많습니다. 그는 1960년대부터 장난스럽고 가볍게(하지만 아주 무겁고 큰) 현대사회의 소비나 산업현상을 농담처럼 표현한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왔습니다. 직은 옷핀을 개선문 만하게 확대해 산책길 가운데 위태롭게 세워놓은 작품, 공원의 거대한 밀짚모자, 톱, 잔디밭 위의 피자나이프, 호수 한 가운데 꽂힌 포크, 배드민턴 공, 녹은 아이스크림, 체리를 얹은 스푼….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소한 물건을 엄청나게 크게 만들어서 많은 사람에게 당혹스러움과 놀라운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우리나라 청계천에 설치돼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다슬기 모양 작품 ‘스프링(Spring)’도 클래스 올덴버그의 작품입니다. 마치 거인의 나라에서 실수로 떨어뜨린 물건처럼 보이는 거대한 오브제 앞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꼬마의 마음으로 되돌아갑니다.

작가는 왜 이런 장난을 하는 걸까요? 보통 아주 커다란 물체는 무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엄청나게 중요하고 필연적인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은 게 상식입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만들기도 힘드니까요. 기왕 그렇다면 의미심장하거나 상징성 있는 대상을 선택할 것이지, 왜 아무리 뜯어봐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일상용품을 택했을까요? 아마도 올덴버그는 ‘쇼킹한 광경일수록 몹시 지루한 것의 변형‘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일 겁니다. 갑자기 낯설게 만들기의 효과는 매우 뛰어납니다. 모두 다 아는 어릴 적 공포 “내가 정말 네 엄마로 보이니?”로 끝나는 이야기가 정말 소름 끼쳤던 이유도 마찬가지지요. 또한 예술가에게 ‘낯설게 보기’ 기술은 계속 연마해야 하는 중요한 뮤즈이자 도구입니다. 그것 없이는 창작의 영감도, 과정도 어려워집니다. 누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고 당장의 보상이 약속되지 않게 마련인 예술품의 제작 과정은 당연히 외롭고도 험난합니다. 그래서 모든 힘을 짜내 구상을 하고, 번뜩이는 발견의 놀라움과 흥분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작가는 내밀하게 풀무질을 하며 작품을 완성해가야 합니다. 심드렁함과 무의미함은 애초의 동기마저 퇴색하게 만드니 가장 무서운것인 셈이지요.

그런데 이 낯설게 보는 기술은 꼭 예술가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모험과 낯선 느낌을 사랑합니다. 마치 맑은 공기처럼 우리를 살아있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각종 예술장르, 예를 들면 이야기책과 미술·음악·영화, 혹은 여행 등을 통해 일상의 익숙함을 씻어내려 합니다. ‘익숙함’이란 늪은 특히 나이가 들수록 점도가 높아집니다. 그만큼 편안하고 안전한 느낌은 커지지만 대신 우리 인생에서 경이로움과 신비·모험심·흥분을 빼앗아가죠. 더 이상 아무것도 새로울 것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세요. 얼마나 지루하고 암담할지, 아마 살맛이 안 날 겁니다. 어쩌면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만 우리가 눈을 닫아버린 것 일수도 있습니다. 매일 보는 햇빛, 매일가는 전철역, 매일 보는 가족의 얼굴, 눈 감고도 익숙한 골목길. 그 모든 것 옆에는 반드시 새로운 무언가가 발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지극히 평범함 속에 비일상적인 일이 발생할 때 더 큰 놀라움과 흥분을 느낍니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전 세계적인 공감대와 인기를 얻는 이유도 따분한 머글(인간)들이 사는 세상과 바로 한 겹 너머 온갖 신기한 마법이 현실이 되는 세상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무심하게 지나치는 회색의 서울역이 사실은 마법학교 행 열차를 탈 수 있는 곳이라면? 혹은 어느 허름한 가게에 들어갔더니 나만의 마법지팡이를 팔고 있다면? 잠깐의 상상만으로도 짜릿해지는 경험을 누구나 했을 것입니다.

올덴버그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고 싶어 했습니다. 잠깐만이라도 호그와트의 마법학교나 걸리버의 세상을 보여주어 익숙함에 마취된 우리의 눈에 초점을 돌려놓고 싶었던 거죠. 우리가 보는 것이 진실이냐 허구냐의 논란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아직 미스터리로 가득 차 있고 그 결론은 죽음 이후에나 알게 될지 모르지요.

예술가들이 으레 그러듯 올덴버그도 이러쿵저러쿵하는 관객이나 비평가의 논란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것같습니다. 원래 해석이나 비판의 역할은 보는 이의 몫이니까요. 그의 작품은 한 때 날카로운 사회 풍자 작품으로 미술계의 관심과 이슈를 유발했었지만, 여기 백화점 앞에서는 어려운 생각 대신 휘파람 불 듯 우리의 가벼운 마음이면 족합니다. 그럼 이제 올덴버그가 바랐던 대로 눈을 크게 떠볼까요. 누가 아나요, 토끼가 회중시계를 들고 뛰어가는 나만의 ‘이상한 나라’가 또 다시 펼쳐질지.

* 작품 감상할 수 있는 곳 - 서울시 중구 충무로1가 52-5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 정문 앞

클래스 올덴버그(Claes Thure Oldenburg)- 1929년생 스웨덴 태생. 미국의 대표적 팝아티스트 중 하나. 1961년 자신의 작업실에 가게를 꾸미고 가정에 있는 일상용품들을 회반죽으로 만든 미술품을 판매해 현대사회의 물질문화나 소비문화를 비판했다

박보미 - 문화예술 기업 ‘봄봄(vomvom)’ 디렉터.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국제디자인대학교대학원(IDAS)에서 미디어디자인을 공부했다. 영화미술,전시기획, 큐레이팅, 미술칼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bomi1020@gmail.com

1266호 (201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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