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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분식회계 왜? - 불황에 “숫자만 고치면…” 유혹 커져 

법정관리 신청한 모뉴엘 파산선고로 충격 … 외환위기·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분식기업 늘어 


▎가전업체 모뉴엘은 지난 6년 간 매출 부풀리기 등 분식회계로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다. 사진은 모뉴엘의 제주 신사옥.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했던 가전업체 모뉴엘이 12월 9일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다. 모뉴엘의 부채(7302억여원)가 자산(2390억여원)을 초과해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로봇청소기 ‘클링클링’ 등을 출시한 모뉴엘은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주목할 회사로 꼽을 정도로 주목 받았다. 그랬던 모뉴엘이 지난 10월 20일 은행에 갚아야 할 수출환어음을 결제하지 못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예상치 못한 법정관리 신청에 금융당국이 감리에 착수한 결과 모뉴엘은 지난 6년 간 분식회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모뉴엘은 2009년부터 6년 간 미국과 홍콩 등 해외 지사를 통해 가짜 수출 증빙 서류를 만든 뒤, 이를 근거로 시중은행에 수출 채권을 넘기고 대출금을 받아 챙기는 수법으로 3조2000억원의 수출 실적을 조작했던 것이다.

빌 게이츠도 주목한 모뉴엘, 감쪽같이 속여

‘분식회계(window dressing settlement)’란 회사의 장부를 조작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이 벌어들인 돈은 없지만 재고자산을 실제보다 부풀리거나 외상판매를 가짜로 만들어 매출을 늘리는 등 재무제표를 고의로 왜곡시킨다. 분식회계는 모뉴엘만의 일이 아니다. 대한전선은 지난 2011년과 2012년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한 매출 채권을 회수가 가능한 것처럼 꾸며 27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당시 대한전선은 전선을 생산해 계열사인 대한시스템즈에 납품했다. 문제는 빚이 많았던 대한시스템즈가 대한전선에 줘야 할 납품 대금을 갚지 못하게 되면서 생겼다. 적자가 쌓여 자본금을 모두 까먹게 된 대한시스템즈는 대리점으로부터 받은 돈을 대출금과 이자를 갚는데 써버렸다. 무려 2269억9800만원에 달했다. 대한전선은 상환 받지 못한 2269억9800만원을 당기순이익으로 회계장부에 기록했다. 여기에 대한전선 종속회사인 티이씨건설에서 받지 못한 377억 4000만원도 분식회계로 조작했다.

이처럼 기업들의 고의적인 분식회계는 끊이지 않는다. 요금처럼 불황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많이 일어난다. 기업들이 분식회계를 저지르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의 신뢰와 주가를 높이기 위해서다. 기업들의 영업 실적이 좋아지면 금융권으로부터 자금을 빌리기 쉬워지고 금리도 낮아져 금융 비용도 줄일 수 있다. 또 투자자들은 기업이 재무상태와 영업실적을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주가도 그만큼 높게 형성될 수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김영훈 경제실장은 “경영자들은 단기간에 실적을 내야 하는 압박을 받는다”며 “이렇다 보니 경영 환경이 어려울수록 분식회계는 달콤한 유혹과도 같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분식회계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부분 기업의 부채는 늘고 실적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역대 최대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은 단연 대우그룹이다.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김우중 전 회장은 41조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대우그룹은 이듬해 해체됐고 투자자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 대우사태로 피해를 본 소액주주는 37만명으로 피해금액은 3조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식회계를 주도했던 김우중 전 회장은 징역 8년 6개월,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처벌을 받았다. 이 당시 분식회계는 대우그룹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한보철강·기아자동차·동아건설 등의 분식회계 사실이 적발됐다. 이후 다소 주춤했던 분식회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늘고 있다. 최근 모뉴엘과 대한전선 이외에도 지난해에는 GS건설·동양그룹·STX그룹 등이 적발됐다.

기업들의 분식회계가 적발되면 그 피해는 자금을 빌려준 채권자와 투자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지난해 동양그룹 사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동양그룹의 계열사인 동양파이낸셜대부와 동양네트웍스·동양시멘트·동양인터내셔널 등 4개 회사는 분식회계로 재무제표를 꾸몄다. 그 재무제표로 1조3000억원대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발행했고, 결국 자금난을 못 견뎌 지난해 9월 30일 동양·동양시멘트 등 계열사 5곳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CP와 회사채에 투자한 4만여명의 개인투자자들은 손해를 입었다. 최근 파산선고를 받은 모뉴엘에 대출해준 은행들도 6700억원의 대출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엉터리 감사에도 회계법인은 솜방망이 처벌

분식회계 사실이 적발되면 기업과 관련 당사자들은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피해를 보상 받기 쉽지 않다. 물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예컨대 집단소송제도가 있다. 집단소송제는 불공정거래나 분식회계 등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을 상대로 소송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집단소송을 하기가 쉽지 만은 않다. 집단소송을 위해서는 요건이 충족돼야 하기 때문이다. 집단소송은 피해자 구성원 50명 이상이어야 하고, 분식회사의 유가증권 1만분의 1 이상을 가져야 하는 등의 요건이 있다. 여기에 소송 자체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소송비용도 개인들이 부담해야 한다. 고동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집단소송제를 통해 피해 보상금액을 모두 돌려 받는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도할 수 있지만 가능성이 작은편”이라며 “피해자들을 위해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분식회계를 막기 위해 회계법인은 기업의 외부 감사를 맡는다. 회계감사를 통해 기업의 재무제표가 실질을 반영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회계법인들의 감사에도 별 문제 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대한전선의 회계감사를 맡은 안진회계법인은 대한전선의 분식회계를 감사 과정에서 걸러내지 못했다. STX조선해양 회계감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도 분식회계를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회계법인들의 허술한 감사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새누리당 김태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상장사 및 저축은행 부실감사 현황’에 따르면 2011년 이후 4년 간 부실감사가 적발된 상장사는 39개 기업으로 이 중 19개 기업은 적발 이후 상장 폐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달리 엉터리 감사를 실시한 회계법인들이 받은 조치는 과징금 6억3800만원과 손해배상공동기금 7억1000만원을 적립한 것에 불과했다. 현재 법상 회계법인은 중대한 과실이나 고의로 감사한 사실이 적발돼도 영업정지 등의 처분을 받지 않는다. 또 감사를 한 기업이 분식회계가 적발되면 해당 기업에 대한 감사업무가 제한될 뿐 다른 기업에 대한 감사는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에 대해 회계법인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국회계사협회 관계자는 “기업들이 재무제표를 들여다 본다고 기업 안팎에서 발생하는 모든 거래 관계를 알아내기가 현실적으로 힘들다”라며 “분식회계 사고가 터졌을 때 해당 회계법인들은 이미지와 신뢰가 실추되는데 쉽게 하겠냐”며 주장했다.

정부는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를 마련했다. 지난 6월 기업의 재무제표 작성 책임을 강화하고 감사인의 재무제표 대리작성 행위를 금지하는 ‘주식회사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통과됐다. 앞으로는 자산이 1000억원 이상일 경우 내부회계관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주식회사보다 설립 요건이 간단한 유한회사도 외부 감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고동수 연구원은 “제도 마련도 필요하지만 분식회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회계법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회계법인의 감사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1267호 (201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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