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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 피플 [78]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 - 저유가 주도하는 ‘에너지 술탄’ 

셰일가스·샌드오일과의 한판 승부 ... 전 세계 경제 회복에 한줄기 빛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
국제 원유 가격이 연일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1월 12일 기준으로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45.67달러로 배럴당 43.77달러를 기록했던 2009년 3월17일 이후 최저 수준이다. 같은 날 미국의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내년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46.07달러로 2009년 4월20일(45.88달러) 이후, 런던석유거래소(ICE) 선물시장의 브렌트유는 47.43달러에 마감해 2009년 3월16일(43.98달러)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날 투자은행들이 하향 조정된 유가 전망치를 발표한 것이 유가 하락을 견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골드먼삭스는 올해 WTI 연간 예상 가격을 73.75달러에서 47.15달러로, 브렌트유 가격을 83.75달러에서 50.40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미국 내 정제시설 3곳이 최근 화재로 가동이 중단돼 원유 재고 증가 우려가 커진 것도 유가 하락을 이끈 요인의 하나로 분석된다.

이렇게 반 토막 난 국제 유가를 더욱 부추기는 산유국이 있다. 사우디다. 사우디의 석유장관인 알리 알-나이미(79)는 오히려 유가가 더욱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상한 말이지 않은가. 유가가 내리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게 산유국인데 말이다. 여기에는 알-나이미 장관의 전략적 계산이 숨어있다. 가격 하락을 통한 시장 점유율 회복이다

유가 떨어뜨리되 점유율은 유지하는 전략

그는 지난해 11월29일 빈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원유에 경쟁하는) 미국의 셰일가스 붐을 꺾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가 하락에도 감산을 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OPEC 회원국들은 하루 생산쿼터인 3000만 배럴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하루 100만 배럴 이상 공급 초과 상황인데도 원유 생산량을 줄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공급 초과로 기름값을 계속 떨어뜨리고 저유가를 유지해 생산원가가 비싼 미국의 셰일오일, 캐나다의 샌드오일을 고사시켜야 한다는 것이 이유다. 경쟁자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시장 가격을 떨어뜨려 상대를 도태시켜 시장을 독점하거나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은 유통이나 산업 분야에서도 가끔 쓰는 경영 전술이다.

지난 몇 년 간 고유가 행진이 계속되면서 생산 단가가 높은 에너지가 속속 개발됐다. 프래킹(수압파쇄) 등 새로운 광업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전까지 채굴이 어려웠던 셰일오일의 생산이 가능해진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비싼 생산단가에도 고유가가 이를 상쇄해 수지가 맞았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오일샌드에 이어 미국의 셰일오일도 속속 개발된 이유다. 이 덕분에 캐나다가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4.54%를 차지하는 하루 385만 배럴의 생산량으로 세계 5위의 산유국이 됐다. 이란보다도 많다. 미국도 중동 의존에서 탈피해 에너지를 자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이 나선 이유다.

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중동의 배럴당 평균 원유 생산가는 27달러 정도인데 비해 셰일오일은 45달러 정도다. 국제 유가가 45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미국의 셰일오일이나 캐나다의 샌드오일은 채산이 맞지 않아 생산을 중지하게 된다. 그런 상황이 상당 기간 계속되면 셰일오일이나 샌드오일 채굴 업체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 통신은 그 기간을 6개월 정도로 보고 있다. 6개월 정도만 버티면 OPEC 회원국들이 다시 전 세계 원유 공급을 좌지우지하면서 가격을 올려 준독점적 이익을 볼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알-나이미의 저유가 정책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미국이나 캐나다의 고비용 석유산업이 아니었다. 재정 사정이 좋지 않은 OPEC 국가가 먼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가장 약한 고리는 베네수엘라였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1월 7일 베이징에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 200억 달러 투자를 약속 받았다. 사실 중국이 중남미나 아프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에 각국에 ‘은탄(銀彈)’, 즉 자금을 무기로 외교적 진출을 꾀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 중 최대의 차관 제공국이기도 하다. 특히 베네수엘라는 중국이 국제 전략상 강한 연대의식을 나타내며 챙길 수밖에 없는 나라다. 대표적인 반미 국가로 라틴아메리카 반미 벨트의 중심 국가이기 때문이다. 중국과는 반미 전선에서 동맹국이나 다름없다. 중국은 이미 베네수엘라에 현물상환 조건으로 4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한 바 있다. 이번 지원에는 또다른 의미도 있다. 마두로 대통령이 직접 베이징에 찾아와서 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남미의 대표적인 산유국으로 외화 수입의 90%, 국가 재정의 50% 이상을 석유에 의존하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가장먼저 자금줄이 말랐다. 마두로는 베네수엘라가 국제 유가의 급격한 하락으로 극심한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물론 재정마저 위기상태에 처하자 베이징으로 날아간 것이다.

재정 빈약한 OPEC 회원국 흔들


▎저유가 정책을 이끌고 있는 알-나이미의 일거수일투족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마두로는 중국 방문에 이어 OPEC 회원국들도 순방했다. 1월 10일에는 반미 동맹국이자 OPEC 회원국인 이란을 방문해 하산 루하니 대통령과 회담했다. 루하니는 “OPEC 회원국들이 단결하면 우리에 대항하는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2015년 원유 가격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안정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두로와 루하니는 사우디가 가격 안정화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면서 저유가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두로는 1월 11일 찾은 사우디의 냉대를 받았다. 지난해 12월31일 병원에 입원한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국왕을 대신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왕세제를 만났으나 유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합의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베네수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이란·이라크·쿠웨이트와 더불어 1960년 OPEC의 5개 창립 회원국의 하나다. 하지만 석유 생산량에서 사우디에 한참 뒤진다. 사우디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969만 배럴로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13%를 차지한다. 러시아(1005만 배럴, 13.8%)에 이어 세계 2위다. 미국(744만 배럴, 12.23%)과 중국(437만 배럴, 5.15%), 캐나다(385만 배럴, 4.54%)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세계 6위의 산유국인 이란(351만 배럴, 4.14%)은 생산량이 사우디의 3분의 1을 조금 넘는 수준이며, 세계 9위 산유국인 베네수엘라(302만 배럴, 3.56%)는 3분의 1도 안 된다.

이런 막강한 사우디의 석유 정책을 결정하는 알-나이미는 평생을 석유와 더불어 살아온 인물이다. 12살 때인 1947년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인재양성 프로그램에 뽑혔다. 이 회사는 1933년 해외 자원개발에 나선 미국 캘리포니아-아라비안-스탠더드 석유회사로 시작해 1944년 아라비아-아메리칸 석유회사(줄여서 아람코)로 이름을 바꿨다. 1950년 국유화 압력에 눌려 지분의 50%를 사우디 정부에 넘겼으며, 1980년 지분 전체가 사우디 정부 소유가 됐다. 1988년에는 회사 이름을 사우디 아라비아 석유회사(줄여서 사우디 아람코)로 바꿨다. 그는 회사 지원으로 당시 중동에서 가장 발달한 지역인 레바논의 베이루트로 유학을 떠나 인터내셔널 칼리지를 거쳐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에서 공부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펜실베이니아주 베들레헴에 있는 리하이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했으며, 스탠퍼드대에서 수리학과 경제지질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아람코에서 생산감독으로 일하던 그는 승승장구해 1980년 이사가 됐으며 이듬해 석유가스 부문 부회장에 올랐다. 1983년 사우디인으로는 처음 이 회사의 회장이 돼 12년 동안 재직했다. 1995년 사우디의 4대 석유장관에 올랐다.

사우디 왕가는 석유장관 자리에 왕족을 임명한 적이 한 번도없다. 대신 상술과 수완이 뛰어난 민간인에게 자리를 맡겨왔다. 왕족에게 나눠줘 군림하게 하는 이권성 자리가 아니라 출중한 능력이 있는 인물이 맡아 일하는 자리임을 인식한 것이다. 초대 석유장관인 압둘라 이븐 하무드 타리키(1960~62년 재임)는 베네수엘라의 후안 파블로 페레즈 알폰소와 손잡고 OPEC을 창설했다. 하지만 그는 사우디 왕자들의 부패를 비난하는 운동에 참가했다가 해임당한 뒤 레바논 베이루트를 거쳐 카이로로 망명했다. 그럼에도 사우디는 이 자리를 왕실에 맡기지 않고 다시 민간인에게 넘겼다. 미국 뉴욕대 법대와 하버드대 법대를 나와 영국 엑시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왕실 고문으로 일하던 아메드 자키 야마니가 그 후임이었다. 그는 1986년까지 24년 간 자리를 지키면서 OPEC을 통한 석유카르텔로 전 세계를 호령했다. 그의 재임 중 벌어진 1973년 석유파동 당시 전 세계는 그의 입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알-나이미 석유장관은 지난해 포브스가 뽑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0위에 올랐다. 2008년 타임에 의해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선정됐으며 2011년에는 블룸버그 마켓츠 매거진에 의해 ‘가장 영향력이 강한 50인’에 오르기도 했다. 20015년은 알-나이미에게 도전의 한 해가 될 수있다. 지금과 같은 생산 초과가 계속 돼 저유가가 유지되면 대부분의 산유국이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OPEC의 결속력도 흔들릴 수 있다. 2015년 산유국이 재정적인 문제를 겪지 않으려면 유가가 배럴당 100~130달러 범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상당수 전문기관의 전망이다. 하지만 감산으로 유가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OPEC에서 석유를 수입하는 나라의 경제가 타격을 입게 된다. 고유가로 경제가 나빠지면 이들 국가는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고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을 찾게 된다.

7500억 달러 외환보유액으로 버텨

사우디도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석유 판매 수입이 줄어 그 해 나라 살림이 적자가 된다. 하지만 사우디는 7500억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버텨볼 작정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극단적인 저유가에도 2년은 넉넉하게 버틸 수 있는 자금이다. 이와 달리 고비용의 셰일오일· 샌드오일·심해석유는 그 2년 안에 고사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더구나 과거 OPEC 회원국들이 합의를 지키지 않아 사우디가 피해를 본 적도 적지 않다. 그래서 알-나이미가 고비용 석유 업체가 아니라 다른 OPEC 회원국을 노린 게 아닌가 하는 관측도 나온다. 그가 주도하는 저유가 정책에 러시아·베네수엘라·이란 등 석유 의존도가 높은 산유국만 골병이 들고 있다. 그래서 진짜 승자는 이들 반미 국가의 고난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미국일 수도 있다는 추측도 있다. 하지만 결과에 상관 없이 알-나이미 석유장관의 엄청난 영향력을 확인하는 기회이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그가 주도하는 저유가 정책으로 전 세계는 불황에서 벗어날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얻고 있다. 저유가도 한국에도 경제 반등을 노릴 소중한 기회다. 과거 고유가로 고성장을 구가하던 시절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에너지 차르’로 불렀듯 저유가 시대 그 정책을 주도하는 알-나이미를 ‘에너지 석유 술탄(이슬람 전제군주)’으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1270호 (201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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