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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건보료 개혁 중단 논란 - 안 할 일은 하고 할 일은 안 해 

제2 연말정산 파동’ 우려에 2년 공들인 정책 보류 ... “저소득층 부담 줄어드는데…”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1월 2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 참석해 현안보고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연말정산 후폭풍에 시달리던 정부가 또 한 번 악수(惡手)를 뒀다. 건강보험료(이하 건보료) 개혁 작업을 중단하겠다는 건데 파장이 심상치 않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1월 28일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가진 기자 브리핑에서 “올해 안에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연말정산에 대한 불만이 사그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고소득 직장인과 피부양자에게 보험료를 추가로 물리는 개선안이 나올 경우 반발이 심상치 않으리란 우려 때문이다. 문 장관은 “(개편 후) 지역가입자의 건보료가 줄어드는 것에는 이견이 없겠지만, 추가 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나 피부양자의 부담이 늘어나면 불만이 있을 것”이라며 “(개선안 발표를) 연기하고 신중하게 검토하기로 결정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소득 없는데 더 내고, 부자는 덜 내는 건보료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인수위원회 시절 국정과제에 포함돼 2013년 7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이하 기획단)’이 출범했다. 이규식 연세대 명예교수를 단장으로 보건복지 전문가 상당수가 모였다. 1년 반 동안 11차례의 전체 회의를 가졌고, 기본 방향에 대해 어느 정도 의견을 모았다. 1월 9일엔 복지부 출입기자를 상대로 별도의 설명회를 가졌는데 기자들도 대체로 개선 방안에 공감했다고 한다. 우호적인 여론을 바탕으로 1월 29일 최종회의에서 그간의 결과를 발표한 뒤, 4~5월 중에 정부가 최종안을 결정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공식 발표를 하루 앞두고 전면 연기를 밝힌 것이다. 1월 27일까지만 해도 문 장관은 “보험료가 줄어드는 계층이 있으면 늘어나는 계층도 생길 수밖에 없어 여론이 어디로 흘러갈지 걱정”이라면서도 “개선안은 증세가 아닌 합리적인 정책이고, 임기 중에 꼭 추진하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럴 만했다. 건보료의 기본 부과체계는 약 40년 전에 설계 됐는데 큰 틀을 바꾸지 않고 미세 조정만 해온 탓에 담당 공무원도 모를 정도로 구조가 복잡해졌다. 워낙 모순이 많아 형평성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초 생활고에 시달리던 어머니가 주인집에 ‘죄송하다’는 메모와 밀린 공과금을 남기고 두 딸과 자살한 사건이다. 당시 세대주였던 어머니가 소득이 없는데도 지역가입자로 매달 5만원 가량의 건보료를 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김종대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퇴임하면서 “송파 세 모녀도 건보료를 내는데 퇴직 이후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로 자격이 바뀌는 나는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며 “현행 건보료 체계는 매우 불합리하다”는 내용의 글을 블로그에 올려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소득을 중심으로 동일한 보험료 부과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국제·보편적 상식”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지적대로 기획단은 ‘소득 중심의 단일한 보험료 체계를 구축한다’는 기본 원칙을 세웠다. 현행 건보료 체계의 문제점은 크게 ‘재산을 기준으로 한 부과체계’와 ‘무임승차’다. 고정 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는 별 고민이 없는데 지역가입자가 문제였다. 당장 소득이 없는데도 재산이나 자동차를 근거로 보험료를 매기니 당장 낼 돈이 없는 사람에게도 보험료를 부과했다. ‘직장 그만두고 나니 보험료가 더 늘었다’는 은퇴자의 불만도 그래서 나왔다. 직장에 다닐 땐 보험료를 회사와 반반씩 부담하지만 직장을 나와 지역가입자로 전환하면 전부 본인이 내는데다, 아파트와 자동차에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보험료를 매기니 황당할 만하다. 심지어 빚을 내 집을 사도 건보료를 더 내야 한다.

이와 달리 돈 좀 있다는 사람은 피해갈 여지가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의 피부양자가 되는 것. 자식이든 아내든 관계없다. 재산이 9억원 이하거나 연금과 금융소득이 각각 연 4000만원 이하면 건보료를 한 푼도 안 낸다. 직장가입자 중에서도 무임승차자가 적지 않았다. 근로소득만 있는 경우는 월 소득의 6.07%를 개인과 회사가 절반씩 부담하면 끝이다. 근로 외 소득이 있는 경우엔 기존 건보료에다 추가로 더 내도록 설계돼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 오피스텔 등 임대업으로 돈을 벌거나 부업을 하는 경우다. 문제는 근로 외 소득으로 평가하는 기준이연 7200만원으로 매우 높다는 점이다. 근로 외 소득을 버는 사람은 217만명(2011년)이나 되지만 이 중 건보료를 추가로 내는 사람은 약 1.5%인 3만2000명 밖에 안 된다.

‘구조개혁 산으로 가나’ 반발에 청와대도 움찔

개선안이 도입되면 이런 불합리한 문제를 크게 개선할 수 있었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생활수준·경제활동참가율 점수제를 폐지하고, 재산에서 동일한 금액(최소 1100만원~최대 5400만원)을 공제해 부담을 줄이기로 했다. 산정 기준에서 성별이나 연령, 자동차 등은 제외하고, 재산에 대한 보험료도 인하할 계획이었다. 재산이 적고, 소득이 없으면 최저 건보료를 부과하고, 고액 재산에 대한 건보료는 인상하는 안도 담겨 있다. 직장가입자의 근로 외 소득 기준 역시 연 2000만원으로 낮추려 했다. 근로 외 소득이 2000만~7200만원인 고소득자가 추가로 건보료를 내야 한다는 얘기다. 무임승차 논란이 컸던 피부양자 기준도 현행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출 계획이었다. 대략 고소득 임금 근로자와 재산이 많은 피부양자의 건보료 부담을 늘리고, 저소득층의 부담을 경감하는 방향이다. 이걸 안하겠다고 하니 2년 가까이 머리를 맞댄 기획단 위원도, 받아들이는 국민도 황당할 수밖에 없다.

무책임한 후퇴라는 반발이 거세지자 청와대가 수습에 나섰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문 장관의 연기 발언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 확보를 위해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적으로 장관이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결정 이면에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었다. 이와 함께 민 대변인은 “백지화가 아니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황은 이미 꼬였다. 강한 국민적 반발이 부딪히자 복지부는 30일 연 소득 500만원 이하 저소득 지역가입자에게 보험료를 매기는 기준을 올해 상반기 중에 조정하기로 했다. 1단계로 취약계층의 보험료 부담을 덜어주고, 내년에 부과체계를 전면적으로 손 본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을 감안할 때 ‘사실상 개편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건 변함이 없다. 이‘ 른 시일 내에 추진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해도 곤란한 건 마찬가지다. 연말정산으로 불과 열흘 전 홍역을 치른 정부가 다시 또 입장을 바꾸면 그야말로 신뢰는 땅으로 떨어진다. 무슨 일을 해도 일처리가 깔끔하지 않다. 집권 3년차 개혁의 속도를 높이겠다던 정부가 연초부터 수렁 속을 헤매고 있다.

1272호 (201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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