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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 피플(80) 살만 빈 압둘 - 유가 향방 좌우할 석유왕국의 신임 국왕 

세계 4위 예산의 국방장관 출신으로 IS 대항 수도 리야드를 대도시로 키워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압둘라에 이어 사우디 국왕에 오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 사진:중앙포토
사우디의 새 국왕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80)는 지난 1월 23일 국왕에 오르자마자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그날 90세로 세상을 떠난 전임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의 조문과 신임 국왕 알현을 위해 전 세계에서 국빈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1월 27일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대규모 조문단을 이끌고 사우디를 찾았다. 3박4일 계획으로 인도를 방문 중이던 그는 일정을 하루 줄이면서 조문단을 이끌었다. 미국에 사우디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국제사회에서 신임 살만 국왕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오바마의 파격적인 조문에 화답하려고 했던지 80세의 살만 국왕은 이례적으로 공항까지 영접을 나왔다.

눈길을 끄는 것은 존 케리 국무장관,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30여명의 정부와 의회의 주요 인사들까지 동행하며 대규모 조문 외교를 벌였다는 사실이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등도 함께했다. 지난 1월7일 프랑스 파리에서 샤를리 에브도가 테러를 당한 직후 각국 정상들이 모였던 테러 규탄 집회 때 주프랑스 대사만 보냈던 것과 비교된다. 오바마 외에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 이집트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 파키스탄 나와즈 샤리프 총리 등 수많은 국가원수가 조문외교를 위해 앞다퉈 사우디를 찾았다. 군주가 있는 나라에서는 군주가 조문에 나섰으며, 군주가 연로한 경우 왕세자가 조문을 위해 날아갔다.

세계 각국의 특급 조문단 맞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이 1월 27일(현지시간)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과 회담을 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오바마를 비롯한 각국 정상과 정·관계 지도자들은 세상을 떠난 압둘라 국왕과 작별인사를 위해 먼 길을 왔다기보다 새로 왕위에 오른 살만 국왕과 왕실 관계자를 보려고 왔다고 하는 게 더욱 정확할 것이다. 사실 살만 국왕 앞에는 해결할 일이 산적해 있다. 미국과 서방 각국과 걸린 현안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과 서방 국가는 유가 안정을 위해 러시아에 이은 세계 2위의 산유국인 사우디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생산량 유지 때문에 국제 유가는 배럴당 5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반미 국가인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는 돈줄이 말라 심각한 재정난과 금융위기를 겪고 있다. 이는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의 숙적 시아파 국가 이란에도 큰 고통을 주고 있다. 2~3년을 버틸 외화를 쌓아두고 있는 사우디의 살만 국왕으로서는 지금 같은 저유가 기조를 더 유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동부의 내전 지원 등 으로 러시아와 관계가 좋지 않은 미국과 서방으로서도 러시아의 유가 하락으로 러시아를 압박할 수 있는 지금 상황이 여간 반가운 게 아닐 것이다. 그 열쇠를 사우디의 새 국왕 살만이 쥐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중동 한복판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는 급진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서도 사우디의 협조가 절실하다. IS는 이라크에서 시작해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에서 터전을 잡은 뒤 이라크 북부 유전지대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IS에 대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지상군 파병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공습으로 대응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과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지상군을 파병했다가 막대한 전비만 날린 채 별다른 이익을 보지 못했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공습을 위해선 인접 국가인 사우디의 협조가 절실하다. 홍해와 지중해, 페르시아만의 항공모함에서 전폭기를 띄워도 되겠지만 아무래도 지상 기지가 있는 편이 한결 수월하기 때문이다. 전투기 추락 등 만일의 사태를 위한 기동구조대가 가까운 지상에 주둔하는 일도 도움이 된다. 사우디가 공급에 직접 참가해주면 미국으로선 더더욱 고마운 일이다. 사우디는 이런 일을 해주고 있다. IS의 발호는 자국 안보에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살만 국왕의 아들인 할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는 사우디 공군 조종사로서 지난해 9월 미국이 주도하는 IS 공습에 참가해 시리아로 출격하기도 했다. 출격 뒤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자 IS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는 일도 생겼다.

사우디판 만리장성 건설 주도

사우디는 이라크와 814km에 걸쳐 국경을 맞대고 있다. 대부분 황량한 사막지대라 국경이 열려있다시피 한다. 사람과 물자가 얼마든지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테러분자의 침투도 그만큼 쉽다는 이야기다. 보안문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 사우디·이라크와 접경한 사우디 서북부를 IS 소속으로 추정되는 무장대원들이 공격해 사우디 군인 3명이 숨지고 자살테러범 4명이 사살되기도 했다. 수도 리야드 부근에서는 IS 소행으로 추정되는 인질극이 발생해 경찰 1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에 따라 사우디는 IS의 침투를 막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이라크와의 국경을 따라 길이 1000km에 가까운 방호벽을 설치하고 있다. 단순한 방호벽이 아니다. 벼랑길 등 지형지물을 이용해 침입자가 이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할 5중 벽을 설치한다. 3만명 규모의 국경 경비대가 배치될 감시시설은 물론 20km마다 감시 레이더를 설치하고 벽에 감지센서까지 부착해 물샐 틈 없이 침입자를 잡을 수 있게 할 계획이다. 하늘에는 정찰기와 무인감시기가 항시 정찰활동을 벌이도록 할 예정이다. 이 방호벽 건설 계획은 지난해 와병 중인 압둘라 국왕을 대리해 당시 왕세제였던 살만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살만은 사우디를 건국한 압둘아이즈 초대 국왕의 25번째 아들이다. 그는 19세 때 수도 리야드의 부시장으로서 행정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1955년 장관급 시장을 거쳐 1963년 리야드 주지사가 된 그는 2013년까지 48년 간 자리를 지켰다. 그동안 그는 리야드를 세계적인 대도시로 키운 공적을 인정받았다. 그러면서 사우디 역대 국왕의 유능한 고문으로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호한 점도 있었다. 그는 2011년 1월 ‘사람들의 자비로움을 이용해 사익을 취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리야드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모두 체포해 외국인은 추방하고 사우디인은 사회복지부의 재활 프로그램에 등록시켰다. 과학연구와 장애인 복지 연구도 주도했다.

2011년 동복형인 술탄 왕세제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가 맡았던 국방부 장관직을 승계했으며 제2 부총리와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직도 맡았다. 그가 사우디 왕실의 가족문제를 담당하는 가족위원회의 대표를 맡으면서 갈등 조정 능력을 보여줬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국방예산이 2013년 기준으로 650억 달러로 세계 4위다. 영국·프랑스·일본보다 많다. 국방장관으로서 그는 미국이 주도하는 반 IS 폭격에 주도적으로 참가했다.

2012년 6월 동복형인 나예프 왕세제가 세상을 떠나면서 왕세제 자리를 이었다. 제1부총리도 함께 맡았다. 이는 사우디가 압둘라 국왕 이후에도 압둘라가 펴왔던 점진적인 개혁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2013년 2월 트위터 계정을 여는 등 SNS 문화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소말리아 수단, 방글라데시, 아프가니스탄 등 가난한 무슬림 국가를 지원하는 데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살만 국왕이 압둘아지즈 초대 국왕의 제8왕비인 하사 빈트 아메드 알 수다이리(1900~69)의 여섯때 아들이라는 점이다. 5대 국왕 파드가 동복형이기 때문에 한 왕비 아래에서 처음으로 두 명의 국왕이 나온 기록을 세웠다. 수다이리 가문은 창업주 압둘아지즈의 외가이기도 하다. 하사의 아들 중 7명이 성인까지 성장했는데 모두 능력이 뛰어나 ‘수다이리 7형제’로 불렸다. 이들은 오랫동안 왕실과 정국을 주도해왔다.

눈여겨볼 점은 그의 후계구도다. 살만을 이을 왕세제 자리는 부왕 세제였던 무크린 빈 압둘아지즈(69) 정보국장이 즉시 승계했다. 무크린은 성인까지 성장한 압둘아지즈의 아들 중 막내다. 압둘아이즈 아들 세대의 마지막 왕위 계승자인 것이다. 살만은 사우디 왕조에서 처음으로 3세대 왕위 계승 예정자를 지정했다. 조카인 모하메드 빈 나예프(55)를 차차기를 이을 부왕세질(Vice Crown Prince)에 지명한 것이다. 압둘아지즈 손자 세대의 첫 왕위 계승권자다. 모하메드는 살만 국왕의 동복형제로 2012년 세상을 떠난 나예프 전 왕세제의 차남이다. 동부 주지사와 주스페인 대사를 지낸 형 사우드를 제쳤다. ‘수다이리 7형제’의 다음 세대 대표주자다.

전임 압둘라 국왕은 누구든 사망 24시간 이내에 장례를 치르는 이슬람의 장례 문화에 따라 지난 1월24일 간단한 장례식 뒤 수도 리야드에 있는 알오드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들어온 순서대로 자리를 잡는 공동묘지에 이름 없는 평민의 곁에 묻혔다. 시신은 관도 없이 흰 천만 한 장 둘렀으며 묘소에는 흙바닥에 얕게 자갈만 깐 간단한 무덤 표식을 남겼을 뿐이다. 이는 사우디의 이슬람 신학적인 바탕을 이루고 있는 와하비즘에 의한 것이다. 와하비즘은 18세기에 시작된 수니파 이슬람의 종교개혁 운동으로 정통파, 초보수파, 엄격파, 근본주의자, 이슬람 청교도 등으로도 불린다. 일체의 이단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순수 유일신 숭배라는 이슬람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개혁운동이다. 18세기 이슬람 신학자 무함마드 이븐 암드 알와하브가 주창해 이슬람 세계에서 와하비즘으로 불린다.

점진적인 개혁정책 펼 듯

하지만, 정작 추종자들은 자신들을 초기 무슬림 또는 선조를 가리키는 ‘살라프’의 정신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의 살라피라고 불리기를 원한다. 무와히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18세기 당시 무슬림 사이에서 만연했던 성자 숭배나 유명 사원과 묘지 방문 등을 우상숭배 또는 불결하게 변형된 이슬람이라고 비난하고이를 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체의 격식이나 미신적인 요소를 추방하는 엄격한 정화를 통해 ‘타위드’, 즉 하나님과의 일체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알와하브는 리야드가 있는 아라비아 반도 중앙부의 고원지대인 네지드 지역에서 활동했다. 그는 1744년 이 지역을 지배하던 부족장 가문과 협정을 맺고 정치적인 복종을 하는 대신 와하비즘에 대한 보호와 보급 지원 약속을 얻어냈다. 이 가문이 바로 지금 사우디 왕가인 알사우드 가문이다. 알사우드 가문은 1801년 이라크 남부인 카르발라를 점령해 시아파 성지를 파괴했다. 이곳은 이슬람 창시자 마호메트의 외손자로 시아파의 정신적인 지주인 성인 후세인의 무덤과 유적이 있는 곳이다. 와하비즘에서 이슬람 유일신 사상에 어긋나는 다신교 풍습이라고 비난해온 곳이다. 이런 종교적인 배경이 있는 사우디는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철천지원수일 수밖에 없으며 지금도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 이는 살만 국왕은 물론 사우디를 이해하는 열쇠다.

1272호 (201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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