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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별 FTA 성과 분석해 보니 - 수혜 업종이라던 전자·자동차마저도… 

무역 흑자 기대에 못 미쳐 … 기계·섬유·건설업 FTA 효과도 미미 

함승민 이코노미스트 기자 , 이창균 이코노미스트 기자 최나영 인턴기자 lee.changkyun@joins.com

▎전자산업은 한국이 ‘FTA 효 과’를 톡톡히 누릴 대표적 업종으로 인식됐지만, FTA가 발효된 대상국들 대비 수출입 현황을 집계한 결과 기대에 현저히 못 미쳤다.
한국은 그동안 ‘FTA 선도국’을 자처했다. 11건의 FTA가 발효됐고, 4건이 타결됐다. 그때마다 우리 정부는 개념도 모호한 ‘경제 영토 확장’을 강조하며 낙관론을 제시하곤 했다. 그러나 막상 FTA 발효 이후 수 년 간 주요 산업별로 정확히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역효과를 본 산업은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분석을 내놓는 경우가 드물다. 내놓더라도 쉬쉬하는 분위기에서 FTA의 개선점을 재조명하는 데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매년 ‘제조업은 파란불, 농수산업은 빨간불’ 식의 두루뭉술한 보도자료와 이를 받아쓴 기사만 쏟아져 나왔다. 제조업 중에서도 어떤 업종이 이득을 봤고 손실을 입었는지 조명이 잘 되지 않았다.


본지는 산업별 FTA 성과를 분석했다. 전자·자동차·화학·철강 등 우리나라 주력 수출산업이 그 대상이다. 산업별로 어떤 실질적 성과가 따랐는지, FTA가 되레 약이 아닌 독으로 작용한 경우는 없었는지를 살폈다. 산업별 득실을 파악해 대안을 마련하고, FTA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해외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자와 자동차, 그리고 화학과 철강 등 중후장대 업종의 성적표는 농수산업 등과 비교해 표면상 나쁘지 않은 듯이 보인다. 그러나 현미경을 대고 조금 더 들여다보면 사정은 전혀 달랐다.

FTA 발효국과의 전자산업 무역 흑자 10년 전보다 줄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한국 전자산업은 FTA가 발효된 전체 대상국과의 교역에서 203억3500만 달러(약 22조4000억원)의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수출액이 384억2400만 달러, 수입액은 180억8900만 달러다. 언뜻 보면 괜찮은 성적표 같지만, 전자산업이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낙제에 가까운 성적표다. 같은 대상국과의 2004년 무역 흑자가 254억6600만 달러(약 28조원)였으니 10년 전보다 퇴보했기 때문이다. 더 압도적인 액수의 흑자가 났어야 애당초 기대에 부합했다고 볼 수 있다.

전자산업은 자동차와 함께 FTA의 수혜 대상이 될 것으로 꼽힌 분야다. 관세가 낮아지면 수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이런 수혜는 제한적이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2004년 이후 국내 전자산업의 전체 수출은 24.7% 증가했다. 하지만 이 수치에는 아직 FTA가 발효되지 않은 중국으로의 수출이 같은 기간 230% 증가했던 것이 포함돼야 한다는 함정이 있다. 지금껏 FTA가 발효된 국가로만 한정해 전자 부문 수출 규모를 살피면 2004년 425억 달러에서 2013년 384억 달러로 수출액이 줄었다. 특히 과거 전자산업 분야 주요 수출국이었던 미국과 EU에 대한 수출이 2008년 이후 감소했다. FTA 발효 이후 각국에서의 국내 전자 업체 시장점유율을 봐도 FTA의 긍정적인 영향을 찾기 힘들다. 싱가포르에서만 점유율이 상승했을 뿐 다른 국가에서의 점유율은 등락을 반복하거나 오히려 감소했다. 국내 전자업체 관계자는 “TV·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의 경우 관세가 철폐되면서 수익성은 다소 좋아졌지만 이미 국내 업체가 시장 우위를 점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FTA가 시장에서의 경쟁 우위를 좌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게다가 국내 전자 업체들은 FTA 전부터 해외 공장에서 만들어 바로 수출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가령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가입국인 멕시코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면 미국과 캐나다에는 관세 없이 수출할 수 있다. 국내 전자 업체는 아시아에선 중국과 베트남, 유럽에선 동유럽 국가에 세운 공장을 통해 제품을 공급했다. 그만큼 관세 영향을 덜 받는다는 얘기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자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이 강화되고 수출이 늘었지만 이는 국내 업체의 기술력 향상과 일본 업체의 부진이라는 시장구조 때문이지 FTA로 인한 무역 효과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대표적인 수혜 업종이라고 홍보한 자동차산업의 경우도 FTA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2004년 187억9400만 달러(약 20조6500억원)에서 2013년 266억4000만 달러(약 29조3000억원)로 무역 흑자 규모가 개선됐지만 마찬가지로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치다. 특히 FTA 대상국을 기준으로 2004년 대비 2013년의 수입 증가율을 보면 가장 빠르게 수입이 증가한 분야 중 하나가 자동차 산업이었다. 한국은 자동차산업에서 2004년 24억6100만 달러(약 2조7000억원)의 수입액을 기록했지만 2013년에는 79억6300만 달러(약 8조7500억원)로 223.5%나 수입이 급증했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수출 증가율은 62.8%(212억5500만 달러→346억300만 달러)에 그쳤다. 각국과의 FTA 발효가 이어지면서 수혜를 자신했지만 수입 규모만 커지는 역공을 당한 셈이다.

자동차산업에서도 수입량만 급증

국가별로는 미국산 자동차의 공습이 눈에 띄었다. 미국은 한국과의 FTA 체결로 제너럴모터스(GM)·포드·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빅3’의 수출을 늘리는 데 시동을 걸었고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 1월 미국산 자동차 수입량은 4442대로 월간 기준 역대 최고치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2039대)보다 117%나 증가했다. 미국산 자동차는 한·미 FTA 발효 직후 관세가 인하된 데 이어 현재 2.5%인 수입관세도 내년 1월부터는 완전히 철폐된다. 가격 경쟁력이 커지면서 수입량이 그만큼 더 증가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반해 국내 자동차 시장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올 2월 내수 판매량은 전년 대비 8.8% 감소한 4만6859대였다. 정부 예상과 달리 우리보다 미국이 FTA 효과를 더 누린 셈이다.

화학·철강업에서는 다소 실익 거둬


▎한국은 자동차산업에 서도 각국과의 F TA 발효 이후 별 재미를 못 봤다.
국가 산업의 또 다른 근간인 화학업과 철강업은 10년 동안 외형상 무역 흑자 규모가 커지면서 FTA 효과를 다소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에서 기대에 못 미쳤던 것을 감안하면 위안거리다. 화학·고무·플라스틱 분야에서는 2004년 22억9100만 달러(약 2조5000억원)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가 2013년 137억900만 달러(약 15조원)의 무역 흑자를 냈다. 철강업에서도 2004년 19억2500만 달러에서 2013년 95억3100만 달러로 무역수지가 개선됐다. 내실 면에서도 괜찮았다. 2013년 기준 화학·고무·플라스틱 분야의 2004년 대비 수출 증가율은 335.6%(112억300만 달러→487억9500만 달러), 철강 분야는 218.8%(54억8600만 달러→174억9200만 달러)였다. 같은 기간 수입 증가율이 각각 160.0%(134억9400만 달러→350억8600만 달러), 123.6%(35억6100만 달러→79억6100만 달러)였으니 수입 증가율보다 수출 증가율이 높았다. 김영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0년간 화학·고무·플라스틱 분야에서 수출이 약진하는 효과가 뚜렷했다”며 “화학업의 경우 수입량도 많았지만, FTA 체결 이전부터 EU와 미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업종이었기 때문에 FTA에 따른 수입 증대 효과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다만 철강업은 한·미 FTA의 경우 발효 이전부터 이미 무관세로 거래되고 있었고, 미국으로의 수출 물량도 적기 때문에 FTA 효과로 인한 긍정적 영향은 미미했다. 철강 원재료의 대부분은 호주나 브라질 등지에서 수입될 뿐더러 업황 자체가 세계적으로 침체한 상태라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밖에 기계 분야의 경우 2004년 56억7700만 달러(약 6조2000억원)에 달하던 무역 적자가 2013년 들어 9억8600만 달러(약 1조800억원) 적자로 개선됐지만 더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 섬유·직물 분야는 1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2004년 35억1000만 달러(약 3조8500억원) 규모였던 무역 흑자가 2013년에는 44억9400만 달러(약 4조9000억원)로 변화가 적었다. 의복 분야는 같은 기간 10억8900만 달러(약 1조2000억원) 흑자에서 22억9700만 달러(약 2조5000억원) 적자로 사정이 악화됐다.

제조업이 아닌 통신과 금융 등 서비스업 분야로 눈을 돌리면 FTA 효과는 더 미미하다. 국내 서비스업은 내수시장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에 비해 국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다. 또 관세율을 직접적으로 낮추는 제조업과 달리 비관세장벽을 낮추는 방식으로 무역장벽을 낮추기 때문에 이들 분야에서 FTA로 인한 가시적 성과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통신 분야에서는 해외로 진출하려는 국내 업체들의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는 점이 미미한 성과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강하연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센터장은 “기업들이 확고한 해외 진출 의지나 현지화 능력을 갖지 못해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업에서도 아직 이렇다 할 FTA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미국과 EU 등 선진국과의 FTA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증권·자산운용·보험 등 금융서비스 부문의 한국 진출이 더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이 한때 제기됐지만 우리나라의 금융시장 규모가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 금융사의 해외 진출에도 진전이 없다. 국내 금융사가 해외에 새로 개설하는 점포 숫자는 2007년 이후 매년 감소세다.

서비스업에서는 FTA 효과 거의 없어


다른 주력 산업인 건설업의 경우도 FTA 효과를 거의 못 봤다. 일반적으로 건설업에서 국가 간 무역 협약이 변수가 될 만한 부분은 각 정부가 조달하는 공공건설 시장이다. 정부가 시공에 참여할 건설사의 자격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자국 내 실적을 요구하는 등의 제한을 얼마나 풀 것인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들은 정부조달협정(GPA)를 통해 과거부터 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한 상태다. 빈재익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FTA의 조달 부문 협정은 추가된 것 없이 GPA의 내용을 반복하는 수준”이라며 “단지 다자간 협의 내용이 아니라 양자간 약속을 통해 해당 내용을 구체화한 계기 정도”라고 평가했다.

건설 부문의 민간투자 역시 ‘사회기반시설 민간투자법’으로 이미 개방돼 있어 FTA가 변수가 되지 못했다. 중동 지역의 플랜트 사업을 제외하면 국내 건설사의 해외 진출 사례는 많지 않다. 이마저도 FTA 체결국으로 따져보면 국내 건설사의 진출 사례도, 해외 건설사의 국내 진입 사례도 찾기 힘들다. 대기업 계열 건설사들이 제조업 공장 등을 짓거나 극소수 개발업체가 부동산 개발사업을 일부 수행하는 정도다. 그나마 기대됐던 건설기술자(기술사+특급기술자)의 진출 실적은 아예 없다. FTA 협정에는 건설기술자 자격을 상호 인증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한다는 조항이 마련돼 있다. 국내에서 획득한 자격증으로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과의 FTA 체결 당시 정부는 “1만4000여명의 국내 건설 기술자가 미국에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FTA가 체결된 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 진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1276호 (20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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