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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판 실리콘밸리 ‘테크시티’를 가다 - 낡은 공단에서 ICT(정보통신기술) 일번지로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기업까지 1300여개 입주 … 런던의 새 일자리 27% 담당 


▎구글의 캠퍼스런던 지하 카페는 전 세계에서 모인 벤처기업인들이 의견을 나누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런던 올드 스트리트 역에서 내려 시티로드를 따라 남쪽으로 10분쯤 걸어 내려오면 붉은색의 7층 빌딩이 나온다. 건물 이름은 캠퍼스런던이다. 섬유공장이던 곳을 2012년 구글이 인수해 개조했다. 캠퍼스런던은 3년 만에 런던 스타트업 비즈니스 산업의 허브로 자리 잡았다. 건물엔 벤처 창업자를 지원하는 다양한 민간·공공 기관들이 입주해있다. 지난해 이곳을 통해 300개 기업이 각각 10만 파운드(약 1억7000만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곳에서 실제 비즈니스가 이뤄지는 공간은 사무실이 아니다. 건물 지하의 카페다. 이날에도 카페는 세계 곳곳에서 모인 벤처기업인들로 붐볐다. 개발자와 투자자가 격의 없이 만나 온갖 언어로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었다. 터키에서 숙박과 여행 사업을 벌이는 무스타파(21)는 “이곳에서 비슷한 업종에 있는 다른 사업가를 만나 정보를 나누며 우리 회사에 어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적용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곳을 찾은 방문객은 10만명에 달한다. 2013년 런던에 생긴 새로운 일자리의 27%가 이 거리에서 만들어졌다. 창업이 늘자 거리 곳곳에선 신축과 리모델링 공사도 한창이었다.

런던 동부 올드 스트리트와 올림픽 주경기장 일대는 한때 산업공단이 자리했다. 섬유와 기계부품 그리고 통조림 공장이 이곳에 있었다. 런던 사람들의 생필품을 제조해 공급하거나 유럽으로 수출했다. 과거 한국 구로공단과 비슷한 역할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공단이 있던 거리를 더 이상 올드 스트리트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곳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테크시티’로 변했다. ‘실리콘 라운드어바웃’이란 명칭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산업 구조가 바뀌며 공장은 하나 둘 문을 닫았다. 빈집이 늘며 슬럼화가 진행됐다. 집값이 폭락하자 의외의 손님들이 찾아 들었다. 배고픈 예술가들과 열정에 가득한 벤처기업인이다. 이들은 빈집에 자리를 잡고 성공을 향해 달렸다. 영국 정부가 이들을 주목한 시기는 2010년이다. 주인 없는 건물에 불법 체류하는 이들에게 아예 기회를 주자는 의견이 나왔다. 2011년 제임스 카메론 영국 총리는 테크시티 조성안을 발표했다. 옛 공장 부지가 정보통신기술(ICT)의 중심지로 변하기 시작했다.

런던 올드 스트리트의 상전벽해


영국 정부의 발표 이후 테크시티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11년 15개 기업이 모여 공식 출범한 테크시티에는 지금 1300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정보통신기술(ITC) 분야에서 거의 모든 업종을 이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직원 2명뿐인 스타트업을 시작으로 우버·에어비앤비 같은 신생 벤처, 그리고 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기업 사무실이 거리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2013년에만 10억 달러가 넘는 투자가 테크시티에서 성사됐다. 이에 힘입어 런던 소재 IT 벤처기업의 수도 2010년 4만9969개에서 2013년 8만8215개로 증가했다.

테크시티에서 회사를 차리는 방법은 정말 간단하다. 스타트업 신청서에 회사 이름과 주소, 자본금을 적는다. 회사 사무실이 없으면 우편함만 적어도 설립이 가능하다. 벤처 창업 비용은 15파운드(약 2만5000원)이다. 말이 자본금이지 0원이라고 적어도 문제가 없다. 다시 말해 누구나 언제든지 회사를 창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벤처업계에선 한때 패자부활전이란 말이 유행했다. 한국 벤처기업인 가운데 실패한 이들을 다시 구제하자는 주장이었다. 뛰어난 능력과 기업가 정신이 있었음에도 사업 실패 이후 신용불량자가 된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 개인은 물론 사회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다. 테크시티에선 아예 패자부활전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회사가 망해도 처음에 걸어 놓은 자본금에 한해서만 책임을 지면 된다.

정부도 적극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영국투자청 산하에 테크시티 전담 투자기관(TCIO)을 조직했다. TCIO는 투자자·창업자를 연결해주는 기관이다. 도움을 신청한 신생 벤처기업을 위해 다양한 행사를 주최하며 업계 전문가들을 소개해준다. 파격적인 세제 혜택은 물론이다. 애드리안 티퍼 영국투자청 홍보 담당자는 “단순한 자금지원보다는 업계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돕고 있다”며 “다양한 벤처인들이 네트워크를 쌓으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벤처 생태계 조성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이 결과 금융과 IT가 결합한 핀테크(Fintech), 건강과 IT의 융·복합 산업인 헬스테크(Healthtech), 문화와 IT가 결합한 컬테크(Cultech) 같은 융합산업이 속속 등장했다. 영국이 주도하기 시작한 핀테크가 좋은 예다. 금융과 IT의 융합을 의미하는 핀테크는 모바일 결제·송금, 온라인 개인 재정 관리 등 금융 서비스와 결합된 각종 신기술을 뜻한다. 런던은 국제 금융 시장의 중심지다.

핀테크 선두주자로 급부상


▎런던 동부의 공장지대 올드 스트리트는 IT 중심지로 변신했다.
영국 정부는 테크시티의 기술력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는 금융산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레벨39라는 유럽 최대의 핀테크 클러스터를 별도로 조성했다. 레벨39에 입주하는 IT기업에게 자금 조달과 경영자문을 지원하며 산업을 키웠다. 그 결과 JP모간, HSBC, 씨티, 크레딧스위스 등 글로벌 금융그룹들이 핀테크에 관심을 보였다.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새로 개발한 고유의 기술을 소개하며 글로벌 은행과 협업을 시작했다. 영국이 글로벌 핀테크 시장을 선도하게 된 배경이다.

테크시티의 성공은 열정적인 벤처 기업인과 정부 정책의 합작품이다. 빈 공장에 숨어든 벤처 창업가를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양지로 이끌었다. 젊은 벤처인들이 모이자 정부는 글로벌 IT기업을 유치하며 금융계의 투자를 이끌었다. 목표는 테크시티를 미국의 실리콘밸리 수준의 창업타운으로 키우는 일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사무실을 열었고, 맥킨지와 엑센추어가 기업 컨설팅에 나섰다. 런던왕립대학·런던시립대학 등 런던시내 주요 대학과 산학협력을 이끌어 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테크시티는 유럽의 젊은 벤처창업자가 모이는 허브로 자리 잡았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뉴욕에 이어 전 세계 3위의 창업클러스터로 도약했다. 제라드 그렉 테크시티 CEO는 “디지털 비즈니스는 영국 전체 국내총생산의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2020년 16%로 성장할 전망”이라며 “테크시티의 생태계를 보완하며 성장할 때 이는 어려운 목표가 아니다”고 자신했다.




1275호 (201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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