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제임스 다이슨 다이슨 창업자 겸 수석 엔지니어 - 기술이 없는 혁신은 없다 

45년 간 R&D 이끈 발명가 … 2015년 신제품 25개 출시 

맘스버리(영국)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제임스 다이슨.
영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히는 다이슨의 본사가 자리한 영국 웰트셔주의 맘스버리. 인구 5000명의 조용한 소도시인 이곳에 올 들어 교통체증이 부쩍 늘었다. 다이슨이 1조6500억원을 들여 RDD(Research, Design and Development) 센터를 새로 짓기 시작해서다. 다이슨 본사 바로 옆 공사 현장 곳곳에선 건설용 중장비들이 땅을 고르고 있었다. 다이슨 관계자는 “연구원 3000명이 근무할 연구센터에는 식당과 카페, 체육시설 등 다양한 부대시설도 함께 들어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2월 17일(현지시간) 다이슨 본사를 찾았다. 이 회사는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날개 없는 선풍기 등 획기적인 제품을 출시하며 가전 시장을 뒤흔들었다. 특히 다이슨 청소기는 영국에서 진공청소기의 보통명사로 사용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회사에 도착한 다음 다이슨 관계자와 함께 회사 곳곳을 둘러봤다. 평일임에도 이곳은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분주했다. 본사를 방문한 해외 지사 직원들, 바이어들, 견학온 학생들이 무리 지어 다녔다. 직원 식당인 다이슨 카페엔 미슐랭 스타 출신의 주방장이 요리를 하고 있었다. 회사를 둘러 보던 중 주차장에 있는 전투기 ‘해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포틀랜드 전쟁 당시 실제로 사용했던 기체라고 한다.

지방 소도시에 자리한 혁신의 대명사


다이슨 직원의 평균 나이는 26세다. 대부분 영국에서 공대를 졸업하고 입사했다. 해리어는 도전정신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생각하라는 의미가 있다. 다이슨은 젊은 직원들에게 엔지니어링을 통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했다. 해리어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영국 엔지니어링의 상징이었다. 예컨대 전투기가 수직으로 날아 오를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이었다. 비행기는 당연히 활주로에서 속도를 높여야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고정 관념을 버리라는 것이다.

본사 1층 로비에 들어서자 양쪽 벽면 가득 전시된 청소기와 선풍기가 보였다. 두꺼운 종이로 만든 프로토 타입부터 최신 제품까지 다양했다. 오른쪽 계단을 통해 2층 사무실로 향했다. 가로막 없이 시원하게 열려있는 공간 오른편에 제임스 다이슨(68)의 사무실이 있었다. 그의 방은 다이슨 청소기와 선풍기, 각 제품에 들어가는 주요 부품으로 가득했다. 다이슨 최대주주인 그는 2012년 CEO에서 물러났다.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본인은 제품 개발에 나섰다. 현재 그의 공식 직함은 수석 엔지니어다.

그는 다양한 인생 경로를 거쳤다. 영국왕립예술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정원용 수레와 차량 운반선인 ‘시트럭’을 발명해 주목 받았다. 이후 다이슨을 설립해 가정용 청소기와 선풍기를 직접 설계하며 기업을 이끌었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발명가와 사업가를 두루 거친 셈이다. 그는 “우리 회사는 발명가들이 모여있는 집단”이라며 “발명이 경영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이라 CEO에서도 스스로 물러났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1970년대에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연달아 성공작을 내놓았지만 공동창업자들과 불화가 심해졌다. 1979년 그가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개발에 나서자 주주들이 이사회를 열고 해임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회사를 설립한 이후 경영권과 특허권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온 배경이다.

다이슨에게 인터뷰 취지를 설명하며 ‘당신을 혁신적인 기업인으로 소개하고 싶다’고 하자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그는 ‘혁신(Innovation)’이란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혁신은 기존 기술을 재포장한 다음 새로운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여 주기 위해 마케터들이 만들어낸 단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발명가(Inventor)라고 소개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렇게 다이슨과의 인터뷰는 시작됐다.

왜 혁신이라는 ‘인기’ 단어를 반기지 않는지 궁금해 하자 다이슨이 설명했다. “기술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를 발명하려면 기존의 벽을 넘어선 기술적인 도약이 필요합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구현해 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엔지니어입니다. 발명은 창의적인 엔지니어링과 행운이 합쳐진 결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와 끊임없는 질문에서 나옵니다. 혁신만으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발명이 경영보다 훨씬 흥미로워”


▎다이슨이 새로 짓는 연구센터 조감도.
그는 기술이야말로 제조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매년 세금을 낸 이후의 이익 30%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해왔다. 2014년 한 해 내내 매주 300만 파운드(52억원)를 R&D에 투자했다. 지난 4년 간 채용한 엔지니어의 수도 1000명에 달한다.

다이슨의 투자는 2015년 들어 더욱 늘었다. 다이슨 관계자는 “2015년 들어선 매주 R&D에만 400만 파운드(68억원)의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2월 사이 채용한 엔지니어도 50명에 달한다. 한창 공사 중인 RDD센터가 완공되면 3000명의 엔지니어를 추가로 채용할 계획이다. 그는 “기술이야말로 다이슨 성장의 원동력이고, 끊임없는 R&D를 통해서만이 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이슨은 45년 간 꾸준히 혁신적인 발명품을 내며 기업을 이끌었다. 영국과 미국, 일본의 주요 기업과 협력하고 때로는 반목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기업 경영자와 금융 투자자들의 한계를 많이 발견했다.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볍게 생각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는 사례를 수없이 경험했다. 이들은 발명가를 다루기 힘들고 현실세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이슨 역시 비슷한 취급을 받곤 했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다이슨 당신은 디자이너죠? 엔지니어링이나 마케팅에 대해 뭐 아는 게 있습니까?’란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더 큰 문제도 있습니다. 더 빨리 투자비를 회수하고 단번에 매출을 늘려 수익을 올리겠다는 단기 실적주의입니다.”

그는 전문경영인과 금융 투자자들이 단기 실적에 매달린 결과 제조보다 영업과 판매가 중요해졌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기보다 기존 상품을 더 많이 파는 데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영국이 전 세계에서 광고산업이 가장 발전한 국가로 성장하는 동안 제조업 기반이 취약해졌습니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 누가 새로운 제품 개발에 나서겠습니까?”

일반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일에는 리스크가 따르게 마련이다. 제품 개발은 실패를 수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값싼 제품을 대량 생산한 다음 광고 마케팅에만 의지해 판매를 늘리는 전략도 위험천만하다.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스스로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멀리 바라보며 성장 계획을 잡아야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기업이 장수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포기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다이슨은 영국 내 최고의 대학들과 향후 20년을 위한 기술 파이프라인 개발을 위해 협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봉책으로 모면하거나 쉽게 이기는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전략입니다.”

다이슨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믿는다. 그의 인생이 그랬다. 다이슨은 1979년 봉투 없는 청소기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하지만 공동창업자들은 그의 아이디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결국 동업자들과 불화로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다. 아내가 미술 교실에서 강사를 하고 잡지에 그림을 팔아서 생활비를 대는 동안 그는 집 뒤 낡은 창고에서 청소기를 만들었다. 도안을 그린 다음 종이 상자를 오려 진공청소기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어느 정도 아이디어가 잡히자 플라스틱과 전기 모터를 장착한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5년의 개발 기간 동안 그가 만든 모델은 무려 5127개에 달한다. 그는 “고통스러운 기간이었지만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두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다이슨 본사 주차장에 전시한 해리어 앞에 모인 제임스 다이슨과 직원들.
1990년대 들어 다이슨은 커다란 성공을 거둔다. 영국에선 다이슨 제품이 없는 가정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일본에 가전을 수출하는 유일한 영국 기업으로 자리잡았고,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미국 주요 기업들과 협상을 벌였다. 당시에도 그는 연구원들과 함께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을 즐겼다. 이를 통해 엔지니어링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됐다. 설계 도면을 실제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배웠다. 그가 지금도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R&D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하는 배경이다.

다이슨은 “대부분의 R&D는 목표에 이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세상은 이를 실패라고 하지만 그는 이를 경험이라고 해석했다. 2002년 다이슨은 세탁기를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하지만 세탁기를 제작하는 데 사용된 여러 부품에 대한 비용 대비 가격이 제대로 책정되지 않아 적자를 봤다. 하지만 드럼의 방향을 바꾸는 변속기 기술을 얻었다. “연구·개발 과정은 결과에 상관 없이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실패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세탁기는 다이슨 엔지니어들의 지식 기반을 확장시켜주었습니다.”

그는 실패가 성공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히트 상품인 날개 없는 선풍기가 좋은 예다. 드라이기를 연구하던 다이슨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발견을 한다. 드라이기에서 배출된 공기가 주변의 공기 흐름을 끌어들여 증폭시킨다는 사실이다. 재미있는 현상에 흥분한 연구팀은 드라이기 연구를 중단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아이디어를 모았다. 날개 없는 선풍기가 탄생한 배경이다.

“개발자의 삶은 좌절과 실패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시제품이 곧 제 기능을 못하는 실패작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는 우리 제품을 계속해서 발전시키는 반복적인 개발 과정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물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에 대한 강한 확신과 이를 위해 끈질기게 노력하는 인내심은 기업인이 지녀야 할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이슨 본사를 둘러보면 사람들이 참 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직원 대부분이 20대였다. 다이슨은 “젊은이들의 열정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선호하기에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들 중심으로 채용해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궁금한 점을 거침없이 물어본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도 적다. 기성 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한다. 동시에 날카로운 통찰력도 지니고 있다. 발명가에게 필요한 요소를 두루 갖춘 세대다.

그는 독특한 방식으로 경영철학을 젊은 직원들과 공유한다. 다이슨 직원의 출근 첫날 업무는 다이슨 청소기 조립하기다. 자신이 만든 청소기를 집에 들고 가서 사용한다. 고장 나면 직접 수리해서 사용하거나 문제점을 개발팀과 공유한다. 업무 사항을 메시지나 e메일로 전하기보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문화도 있다. 대화를 통해 아이디어를 나누고 함께 이를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 연구 개발팀에 적용되는 원칙도 있다. 본인이 직접 설계도를 그리고 종이로 프로토 타입을 만들어야 한다. 다이슨이 창업 초기에 겪은 과정이다. 그는 제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소비자가 인정하는 제품이 탄생한다.

대학 갓 졸업자 채용에 적극적


▎다이슨 시제품의 성능검사 모습.
올해 다이슨은 25개의 신상품을 소개할 계획이다. 내년에도 25개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RDD센터가 완공되고 엔지니어 수가 더 많아지면 더 많은 제품을 세상에 내놓겠다고 한다. 그는 다이슨이란 브랜드 가치에 대해선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기술이었다. 앞선 기술이 있어 사람들의 일상을 더욱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제품. 그것이 다이슨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내가 처음 발명한 듀얼 싸이클론 기술에서 시작한 청소기는 지금 54개의 싸이클론을 탑재한 모델로 발전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기술을 무너뜨리는 것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다이슨이란 브랜드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제품 로고가 아니라 성능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술에 집착하며 R&D를 멈추지 않는 이유입니다. 기술은 경쟁에서 앞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1275호 (2015.03.09)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