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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길을 묻다 - 혁신은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다 

다이슨은 기술에 올인 … 영국 테크시티, 판 갈아 엎고 IT 중심지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7일 열린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가상현실 헤드셋을 체험하고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대기업 18곳이 각각 돈을 내 전국 18개 지역에 짓거나 짓고 있다. 보여주기식 혁신이라는 비판이 많다.
지난해 7월 제너럴일렉트릭(GE)이 26개국 3200명의 기업 고위 임원을 상대로 설문조사해 발표한 ‘글로벌 혁신 지표’를 보면, ‘자국의 혁신 환경’에 대해 한국 기업 임원의 42%만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이스라엘 94%, 미국 89%, 영국 81%, 일본 68%에 한참 못 미친다. 중국(44%)에도 밀렸다. 각 분야 리더들이 한결같이 ‘혁신’을 강조하는 데 우리는 왜 혁신적이지 않은가? 혁신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 영국 기업 다이슨과 런던판 실리콘밸리 테크시티를 찾아갔다.

대통령이나 그룹 총수 입에서 ‘혁신’ 얘기가 나올 때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 일단 정부 부처가 내는 거의 모든 정책 자료에 ‘혁신’이 들어간다. 서랍 속에서 케케묵은 자료를 꺼내 그럴듯한 혁신안처럼 꾸미는 데 특히 공무원들은 일가견이 있다. 기업은 각 부서별로 혁신 방안 보고서를 마련하느라 분주해진다. 주로 기획·마케팅부서가 이 일을 맡는다. 외부에 거액을 주고 컨설팅을 맡기기도 한다. 이렇게 나온 ‘혁신안은 혁신적일까?’

정부가 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추진한다는 비판을 받는 ‘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혁신센터)’가 하나의 예가 될 것 같다. 지난해 청와대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창조경제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전국 18개 지역에 혁신센터를 짓기로 약속했다. 이름은 창조경제혁신센터인데, 방식이나 내용 모두 창조적이지도, 혁신적이지도 않았다. 18개 대기업이 한 지역씩 맡아 돈을 내고 센터를 짓는다는 발상부터 구시대적이라는 비판이 많다. 대구는 삼성, 대전은 SK, 오창 LG, 포항 포스코 식이다. 정부가 탁상행정으로 내놓은 이벤트를 대기업이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간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는다. 대기업 역시 혁신센터를 혁신의 공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대부분 기업이 센터를 짓는 비용을 그룹 내 사회공헌 비용에서 충당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투자가 아닌, 기부로 여기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창조와 혁신이 가능할까?

R&D 투자 없는 혁신?

혁신은 껍질을 벗기는 일이다. 일회성 이벤트로 혁신은 결코 이뤄낼 수 없다. 혁신을 앞세운 슬로건을 만들고, 이미지 광고를 한다고 혁신적인 기업으로 변모하지 않는다. 많은 전문가는 기업 혁신의 요체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기술 혁신은 과감하고 지속적인 연구·개발(R&D)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기업 현실은 어떤가. 2월 중순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민간 연구개발 투자 동향’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우리나라 매출 상위 1000대 기업 중 406곳은 아예 R&D 투자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R&D 투자액 상위 1000대 기업이 전체 민간 연구·개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4.5%에 달할 만큼 쏠림이 심했다. 지역을 혁신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전국 10곳의 ‘혁신도시’를 보자. 공공기관 몇 개 내려보내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는다고 혁신도시가 되지 않는다. 땅값만 올릴 뿐이다. 지난해 전국 표준지 땅값의 공시지가는 4.1% 올랐는데, 10개 혁신도시는 29.3%가 뛰었다. 정부의 혁신 역시 보여주기 식이 아닌 판을 갈아 엎는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어야 가능하다.

혁신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 본지는 영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히는 다이슨, 그리고 런던판 실리콘밸리인 ‘테크시티’에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날개 없는 선풍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다이슨은 매년 이익의 30%를 R&D에 쓴다. 다이슨의 창업자이면서 수석 엔지니어를 자처하는 제임스 다이슨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혁신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업들이 말하는 혁신은 뭔가 새로운 것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마케터들이 만든 단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오로지 기술이 핵심”이라고 거듭 강조했다(30쪽 참조).

영국 정부가 정보기술(IT)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며 2011년 추진한 ‘테크시티’ 역시 ‘혁신은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대한 답을 주는 곳이다. 2011~2013년 런던에서 늘어난 일자리의 27% 정도가 테크시티에서 생겼다. 파격적인 창업 제도와 금융·기술 지원, 그리고 IT 생태계 조성이라는 본연의 취지에 집중한 것이 비결이다(34쪽 참조). 다이슨과 테크시티가 말해주는 또 하나의 혁신의 길이 있다. 혁신은 일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반짝 이벤트가 아니라, 생활 속에 혁신이 체화된 기업과 지역과 정부만이 비로소 껍질을 벗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와 기업이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1275호 (201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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