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제품+서비스’ 파는 프로바이스 전성시대 

품질 못지 않게 매력적인 구매 요인 ... 선진국형 소비로 가는 과정 

전미영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서는 생선을 즉석에서 구워 판매한다.
한국 사회에서 ‘서비스’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중국집에서 공짜로 내주는 군만두를 두고 서비스라고 부를 땐 공짜란 뜻이다. 사람이 제공하는 인적 서비스란 의미도 있다. 종업원이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할 때 “이 가게는 서비스가 좋다”고 평가하는 것과 같다. 어느 경우든 서비스라는 단어에 공통으로 포함된 의미는 바로 서비스가 가지고 있는 비(非)정형성과 비(非)물질성일 것이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매번 동일하지도 않지만, 서비스 때문에 특정 브랜드를 반복해 선택할 만큼 매력적인 구매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한국 소비사회의 수준이 점차 선진화되면서, 서비스가 다시 한 번 강화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기업이 주력으로 판매하는 제품 이외에 추가로 주어지는 부가 서비스가 한층 더 중요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서비스 업종인 유통업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눈에 들어온다. 가령, 백화점은 원래부터가 일종의 서비스 업종이다. 고객들을 직접 만나고, 설명하는 대면 서비스가 판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제는 단지 소비자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서비스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외의 무엇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의 발표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 백화점을 방문한 사람 2명 중 1명만이 상품 구매를 위해 백화점을 찾았고, 나머지 1명은 맛집 탐방이나 문화센터 이용 등 다른 이유로 방문했다. 물건을 사러 백화점에 가는 것이 아니라, 문화센터 강좌를 들으려고 백화점을 찾고, 방문한 김에 쇼핑도 한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최근 백화점에서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현대백화점 본점 지하에 위치한 ‘키친 바이 H’는 생선을 즉석에서 구워 판매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격도 구운 생선과 생물 생선 가격이 같아 생선냄새가 집안에 퍼지는 것을 질색하는 주부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제품을 구매할 때에도 부가 서비스가 구매의 필수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구매할 때 디자인·가격·기능·견고함 등 제품 자체를 중요하게 평가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떤 부가 혜택이 추가로 주어지는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변화 때문인지 최근 통신사들은 다시 한 번 멤버십 혜택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2000년대 초, 고객 유치를 위한 주요 전략이었던 멤버십 전략이 2000년대 중·후반 잠시 주춤하더니 다시금 부활을 예고하는 것이다.

생선 구워서 파는 현대백화점

SK텔레콤은 2015년 1월 멤버십 고객의 할인 한도를 상향하는 등 멤버십 혜택을 대폭 강화한다고 밝혔다. VIP 및 가족 결합 고객에는 무한 멤버십 혜택을 제공하며, 다른 고객들의 할인 한도도 대폭 상향됐다. 멤버십 제휴처도 업계 최다인 90여개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제품과 서비스를 묶어 새로운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전략도 눈여겨볼 만하다. 제품(product)과 서비스(service)의 합성어인 ‘프로바이스(provice) 전략’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해당 제품과 연관된 서비스를 결합해 팔아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글로벌 의료기기 회사인 오므론은 이를 잘 활용하고 있는 기업이다. 주력 상품인 혈압계를 정밀하게 잘 만들어 판매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혈압 데이터를 의료기관에 자동 전송해 전문가의 자문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패키지로 묶어 판매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 전문가가 자신을 대신해 부모님의 건강관리를 지속해주길 희망하는 자녀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서비스와의 결합이 다소 낯선 영역에서도 부가 서비스 때문에 구매가 발생하는 경우가 발견된다. 최근 짓고 있는 중소형 아파트의 경우, 대형 아파트와 차별화를 위해 ‘호텔식 서비스’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2013년 공급된 삼성물산의 ‘래미안강동팰리스’는 전체 중 99%가 전용면적이 약 59∼84㎡인 중소형 아파트로 구성되어 있지만, 수십억 원대의 대형 주상복합에서나 제공하던 우아한 호텔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략으로 분양에 성공했다. 두산중공업이 2014년 상반기 공급한 ‘트리마제’ 아파트 역시 조식서비스·발렛파킹·포터 서비스 등 특급호텔에서나 볼 수 있는 호텔식 서비스를 도입해 눈길을 끌었다.

다양한 산업의 다양한 기업에서 ‘서비스 강화 전략’을 채택하는 현상에 대해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일시적인 전략으로만 해석해선 안 된다. 한국 소비시장이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되고 브랜드간 경쟁이 품질적 측면에서 차별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향 평준화되면서, 부가 서비스가 새로운 경쟁 요인으로 부상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제품 간 경쟁이 불붙다 못해 서비스 간 경쟁으로 확대된 것이며, 이런 변화는 선진국형 소비시장에서 발견되는 필연적인 결과로 요약된다.

앞서 소개했던 일본의 헬스기기회사 오므론에서는, 제품과 특별한 추가 서비스를 결합한 프로바이스 전략이 일본의 장기 불황기를 극복하며 기업의 새로운 신성장 동력을 찾는 주효한 돌파구였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제품의 가격을 올리기 위해 새로운 신기능을 추가하는 데에는 막대한 예산이 추가되지만, 서비스를 강화하는 전략은 작은 노력으로 큰 부가가치를 생성해 낼 수 있다. 심지어 고객을 우리 기업에 묶어두는 ‘록인(lockin) 전략’이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적은 비용으로 소비자 묶는 스마트한 전략

그동안 서비스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기업들도 서비스를 새롭게 인식하고 이를 판매의 대상으로 확대하는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 기술이 일상화될수록 제품 위주의 시장에서 서비스가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의 범위가 확대되게 마련이다. 세탁기나 냉장고를 제조하는 회사의 경우에, 위생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청소 서비스’를 유료로 판매할 수도 있다. 이처럼 매력적인 서비스가 증가한다면, 그걸 누리고 싶어서 거꾸로 해당 브랜드를 선택하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다. 장기 저성장기 시대, 서비스의 개념을 단순한 부가 서비스가 아닌 새로운 수익창출을 위한 플랫폼으로 확대 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미영 -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겸 소비트렌드분석 센터 수석연구원. 2010년부터 매년 [트렌드코리아]를 공저하며 한국의 10대 소비 트렌드를 전망하고 있다. 2013년에는 [트렌드차이나]로 중국인의 소비 행태를 소개했다. 한국과 중국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를 산업과 연계하는 컨설팅을 다수 수행하고 있다.

1276호 (2015.03.16)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