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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인 美·中의 파워게임 - 뭉칫돈 쥔 중국 미국의 텃밭 갈아엎다 

오락가락 美 유가정책에 중국 영향력만 커져 ... 중동·중남미 끌어안고 AIIB로 세력 과시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오바마 미 대통령.
미국의 살림이 팍팍하다 보니 아무래도 외교 전략에 조금씩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중국이 세계의 석유를 ‘폭풍흡입’ 하도록 방치한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미국은 중국에 세계 석유수입국 1위 자리를 넘겨줬다.

셰일석유의 상업화에 성공한 미국은 에너지 자급국으로 샴페인을 터뜨리는 형국이다. 덩치 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시장에 훈풍이 불고 증시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최근 셰일석유 개발 사업이 유가 하락의 여파로 또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있어 미국으로선 내심 경기가 불안해지는 것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석유 시장에서 달러화 힘 잃어

아무튼,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지금껏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천문학적인 정부 부채에도 채권을 팔고 마음 내키는 대로 달러를 찍어 낼 수 있었던 힘이라면 힘도, 석유 덕이 크다. 1970년대부터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중동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결제통화로 달러를 채택해준 덕에 지금껏 석유 결제 통화로서의 혜택을 누린 것이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석유 수입국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던 미국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논리와 상황으로 이제 석유 시장에서 미국 달러는 점차 위상을 잃어 가고 있다. 실례로,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에너지 국영기업인 가즈프롬은 중국과 천연가스 공급에 합의하고 계약을 했다. 공급가격은 대략 4500억 달러(약 410조원)가 넘는 규모로 알려졌다. 특기할 점은 미국 달러로 거래하지 않기로 알려진 것이다.

이미 유럽은 유로로, 영국은 파운드로 지불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경제적 지원을 묶어 위안화로 지불하기도 하고, 이란의 경우 심지어 물물거래 방식으로도 지불수단을 다양화 하고 있다. 달러 사용을 점차 줄여나가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거래 수입국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경우, 노골적으로 매력적인 경제·군사 지원까지 해준다. 살림이 빠듯한 산유국으로선 중국이 싫든 좋든 놓쳐선 곤란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선 안 되는 VVIP 거래처가 된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명줄 틀어쥐고 있는 사람 얘기 잘 듣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본적인 생존 전략이다. 이를 통해 중국은 석유만 수입한 게 아니라, 중국 위안화가 세계 결제통화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중국의 입김을 미국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만들어온 것이다.

또한 중국의 전체 석유 수입 물량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생산분은 20%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중국은 대부분의 석유를 러시아·이란·앙골라 등 친미 성향이 덜하거나 반미인 국가로부터 수입한다. 유가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마저 중국의 위안화 결제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미국 달러는 더욱 급격히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달러가 더 이상 지금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나라도 석유 결제 대금으로 중국의 위안화를 쓸지도 모른다.

미국과 달리 중국은 자금 사정도 넉넉한 편이다. 중국의 외환 보유액은 4조 달러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벌어들이는 돈도 상당하지만, 동시에 중국의 미래 성장을 신뢰하는 전 세계의 투자 자금이 중국으로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2015년 말 미국 정부의 총부채는 21조70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그중에 연방정부 부채가 18조6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민 1인당 부채가 약 5만6000달러에 이른다. 1인당 국민소득이 4만6000달러 수준임을 감안할 때, 미국인 전체가 1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하고 아무것도 안 먹고, 안 입고 숨만 쉬어도 나라 빚을 못 갚는 지경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경제상식으론 미국은 이미 도산상태(Bankruptcy)나 다름없다. 돈을 찍어낼 수 있는 미국이니까 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곳간이 상대적으로 넉넉한 중국은 이미 실질적인 G1의 위치를 인정받고 있다. 적어도 조만간 더욱 가시화될 전망이다. 사실 중국이 지금처럼 경제적·군사적 강대국을 강력하게 표명하게 된 데는 미국의 자극이 상당히 도움이 됐다. 특히 석유 중심의 미국의 적대적인 에너지 수급과 가격 조절 전략은 중국에게 뼈 아픈 기억을 갖게 만들었다. 미국은 2000년대 들어 해마다 1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가파르게 커가던 중국의 경제 대국화를 우려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성장을 멈추게 하긴 어렵겠지만 늦출 수는 있어야 한다며 경제 성장에 필수인 에너지 비용, 특히 석유 가격 조절에 들어갔다. 산유국의 이해와도 맞아 떨어진 석유 가격 상승은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석유 공급 확대가 필수불가결했던 중국으로선 큰 부담이 됐다. 국민총생산(GNP) 1달러당 가장 높은 에너지 비용 부담국으로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중국은 2003년 GNP 1달러당 32센트의 에너지 비용 부담률을 기록했다. 당시 미국의 GNP 1달러당 에너지 비용 부담률은 18센트였다.

곳간 넉넉한 중국, 부채에 시달리는 미국


그러나 미국의 고유가 유도 정책은 뜻밖의 적을 키웠다. 바로 러시아다. 러시아에는 별다른 제조산업이 없다. 푸틴은 대부분의 유전을 국유화하는 정책을 펼쳤다. 때마침 유가 상승이란 순풍이 불어왔고, 파탄지경이던 러시아 경제는 불과 10여년 만에 개발도상국 수준으로 급격히 살아나는 결과를 낳는다. 그후 오일달러 덕에 자신만만해진 푸틴이 크림반도 복속 사태를 일으키게 되었고, 미국은 푸틴의 러시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유가 하락 정책으로 급선회했다. 미국의 유가 조절 정책은 러시아의 루블화를 침몰시켜 러시아를 경제적 파탄지경에 빠뜨리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중국은 무서운 기세로 값이 싸진 세계의 석유를 빨아들였다. 동시에 유가 인하에 따른 재정 악화로 고심하던 중동과 중남미의 산유국들에게 단비와도 같은 수백억 달러의 급전을 선심 쓰듯 뿌려대며 적극적인 외교를 펼쳤다.

예전에 미국이나 유럽은 경제 지원을 해줄 때마다 예외 없이 반대급부의 조건을 제시했다. 경제·외교, 내정 간섭 등을 일삼았다. 심지어 굴욕적 종속관계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와 달리 중국은 표면적이고 일시적일지는 몰라도 시진핑 주석의 푸근한 미소처럼 별다른 조건 없이 지원했다. 특히 아프리카·남미·중동 지역은 이미 중국의 돈에 중독됐다. 미국과의 관계는 점차 약화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역사적 동맹관계인 유럽마저 미국과 소원해지고 있는 상황인데 뭘 더 얘기하랴. 중국은 미국의 텃밭을 돈뭉치를 뿌려 갈아 엎은 것이다.

그리고 결정타 한방. 세계 경제에서 중국의 위상과 자신감을 대외에 천명한 것이 바로 500억 달러의 종잣돈을 들여 만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AIIB)이다. 중국은 AIIB로 세계 경제기구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뒤흔들고 있다. 영국이 AIIB 참여 의사를 밝히니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의 G7 국가들까지 속속 참여의사를 밝히는 성과를 거뒀다. AIIB는 이제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경제기구로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시동소리만 요란한 채 별 진전이 없는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중국 주도의 AIIB 화려한 출범


기실 의외의 상황도 아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통화기금(IMF)·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등이 경제 지원을 할 때마다 ‘긴축재정을 실시하라’ ‘부채를 줄여라’ ‘구조조정을 하라’ ‘문제점과 성과를 낱낱이 보고하고 추가 지시사항을 준수하라’면서 거의 내정 간섭에 가까운 관리(?)를 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지 않았던가? 우리도 1997년 외환위기 때의 수모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21조 7000억 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부채(연금·의료보험 등 드러나지 않은 부채까지 포함하면 100조 달러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게 미국 경제 전문가들의 견해다)를 갖고 있으면서도 경제위기 때마다 미국이 보여준 위기극복 방법은 ‘무제한 달러 인쇄’였다. 정부가 통화를 발행한다고 하지만 미국 정부는 마음 내키는 대로 ‘인쇄’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더구나 더 큰 문제는 더 이상 미국의 경제적 리더십이 예전처럼 절대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AIIB에 전 세계가 앞다투어 참여하는 반면 TPP 는 파리를 날리는 상황이 바로 그 방증이다.


계주가 확실해야 쌈짓돈 들고 계꾼이 모이듯, 전주(錢主)가 누구인가는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세계는 지금 중국을 새로운 전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좀 있으면 미국도 AIIB에 가입할 것이란 전망이 전혀 턱도 없는 얘기는 아니라고. AIIB는 결국 IMF·IBRD·TPP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차라리 미국과 일본이 나란히 손잡고 AIIB에 가입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도 미국으로선 그다지 나쁜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이왕 가입할 바에야 한 자리 차지 하는 게 실속 있지 않을까?

박상기 -현대모비스·삼성SDI 등에서 해외 영업·마케팅을 수행하며 국제 비즈니스 협상을 경험했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국내 주요 기업의 해외 분쟁 해결 및 수출 확대 협상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 뉴욕주립대 협상학 겸임교수로 [영화는 협상처럼 협상은 영화처럼] [성공하려면 협상가가 되라] 등의 저서가 있다.

1283호 (2015.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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