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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소비자가 이끄는 홈메이드 발효 열풍 

슬로푸드 대명사로 발효식품 인기 ... 막걸리 반짝 인기 전철 밟지 말아야 

전미영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사진:중앙포토
발효 제품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주부들이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를 들여다보면 ‘티벳버섯 유산균’을 나눠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 이 배양액에 우유를 붓고 실온에 하루 정도 보관하면 ‘홈메이드 요거트’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만들기도 쉽고 특별한 기계가 추가로 필요하지도 않아 매력적이라고 한다. 천연 발효 식초가 건강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과일과 채소·곡물을 활용해 직접 식초를 담그는 주부들도 있다. 홈메이드표 발효 제품 열풍이 불고 있다.

먹는 것뿐만이 아니다. ‘유용한 미생물’로 알려진 ‘EM 발효액’을 직접 만드는 주부도 있다. 원래 EM 용액은 미생물이 나쁜 성분을 분해하는 원리를 활용해 하천의 수질오염과 악취를 제거하는 용도로 쓰이던 것인데, 최근에는 그 용도가 확대돼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집 안 청소를 할 때에도 사용되고 있다. 청소나 세척의 용도를 넘어 구강 구취제나 무좀 치료제로 사용되기도 하고, 좀 더 발전해 화장품이나 비누 형태로 활용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식단에서 화장품까지 발효제품 선호

집에서 직접 제조하는 천연 화장품 영역에서도 발효가 이슈다. 2011년 즈음, SK2·숨·미샤 등 유명 화장품 브랜드가 발효라는 키워드로 인기몰이를 하던 것이 잠시 시들해지더니, 최근엔 다시 한 번 화장품 영역에서 발효 키워드가 부상하고 있다. 식재료인 콩·녹두·쌀 등을 발효한 콘셉트가 다시 주목받는 것이다. 특히 국내 한방화장품 영역에서 발효와 자연주의 콘셉트가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부상 중이다. 대표적으로 아모레퍼시픽은 여주쌀을 빨간 누룩으로 발효해 만든 성분을 함유한 ‘한율 진액 스킨’을, 코리아나화장품은 발효 녹두를 활용한 ‘순한베베’를 출시했다.

베이커리 분야에서도 발효가 화두다. 발효빵을 전문으로 하는 소규모 베이커리에서는 빵을 만들 때 들어가는 버터와 설탕량을 줄이는 대신, 천연 발효종을 이용해 빵을 만든다. 이스트를 이용해 빵을 부풀리는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만들기 어려운 만큼 가격대가 높지만 건강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이들이 늘었다. 단맛도 덜한 편이라 기존 빵 맛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오히려 소비자들은 ‘유럽 스타일’이라며 발효빵을 선호한다.

최근 시장에서 불고 있는 발효 열풍은 몇 년 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당시에 불었던 발효 열풍은 화장품 등 완제품을 판매하는 기업 주도로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이와 달리 지금의 발효 열풍 중심에는 소비자가 있다. 소비자 스스로 ‘발효’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갖고 이를 바탕으로 근본적인 신체 면역력을 증진시키거나 좀 더 청결한 생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소비자 주도형 발효 열풍은 이색적인 특징이 있다. 우선, 사람들은 ‘집에서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발효’에 관심이 많다. 시장에서 완제품을 사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면서, 이를 지원하는 간편한 제품들이 시장에 경쟁적으로 출시되고 있다. 집에서 요거트나 치즈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형 가전류가 이에 해당한다. 홈쇼핑에서 큰 인기를 얻은 요거트 제조기 ‘요거베리’는 물론이고, 가정에서 직접 치즈와 낫토 등의 발효식품을 만들 수 있는 각종 제조기 판매량도 증가하고 있다. 홈메이드 요거트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우유 제품류나 유산균 발효유의 판매량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발효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먹는 것과 관련된 음식 문화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이는 최근 대장암처럼 식생활과 관련된 질병의 발병 사례가 증가하면서 건강한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과도 관련 있다. 만드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그만큼 건강에 좋은 슬로푸드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발효식품이다. 각종 매스컴에서 발효식품류의 효능 정보 등을 지속적으로 다루면서 이러한 정보를 접한 소비자들이 이를 직접 만들고, 먹고, 확산시키고 있다.

기업 역시 이러한 발효제품의 열풍을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오뚜기 사과식초는 배우 김희애씨를 광고모델로 내세워 식생활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살림 레시피 광고를 선보였다. 자사에서 판매하는 발효식초를 단지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과일을 씻거나 빨래 헹굼에 활용하는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음을 광고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생활 속에서 면역력·치유력 회복하려는 열망 꿰뚫어야

좀 더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라면, 시장의 발효 열풍에 힘입어 좀 더 세분화된 성분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시행해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2012년 인플루엔자를 예방하는 ‘1073R-1 유산균’ 성분을 가진 유산균 음료가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복잡한 이름을 줄여 ‘R-1’이란 이름으로 판매된 이 제품은, 매일 한 병씩 마신 초등학교 학생들의 경우 독감 발병률이 현저하게 줄어든 결과를 실험을 통해 입증하면서 일본 열도에서 히트상품으로 등극했다.

발효라는 특성은 그동안 한국인의 식단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우수성에 대해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식단이 점차 서구화되면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우리 전통 식생활의 핵심 속성인 ‘발효’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 불고 있는 발효 열풍은 사람들이 이젠 좀 더 자연적이며, 좀 더 일상적인 건강에 신경 쓰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이러한 열풍이 일시적인 현상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 때 큰 인기를 얻었던 막걸리 열풍이 차갑게 식어버린 사례에서 보듯, 하나의 현상이 지속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지향성에 기본을 둔 제품 개발과 마케팅이 필수적이다. 인위적인 것을 넘어 생활 속에서 면역력과 치유력을 회복하려는 소비자의 열망을 제품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미영 -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연구교수 겸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수석연구원. 2010년부터 매년 [트렌드코리아]를 공저하며 한국의 10대 소비 트렌드를 전망하고 있다. 2013년에는 [트렌드차이나]로 중국인의 소비 행태를 소개했다. 한국과 중국의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를 산업과 연계하는 컨설팅을 다수 수행하고 있다.

1286호 (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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