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과 밭, 논이 어우러진 김애마을의 모습. / 2. 김애마을 마을회관에는 마을사람들의 인적사항과 각오가 담긴 그림과 글이 게시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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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금평리 김애마을은 38세대가 모여 사는 조그만 마을이다. 귀농·귀촌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홍성군에서도 아주 특별한 마을 중 하나로 꼽힌다. 마을 전체 가구의 40%가 넘는 17세대가 귀농·귀촌 가구다. 1997년 이곳으로 귀농한 이환의(50)씨는 “지금도 김애마을로 귀농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며 “탈농(귀농이나 귀촌한 사람들이 다시 마을을 떠나는 것)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니 들어오고 싶어도 집과 땅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풀 내음을 머금은 봄바람이 불던 5월 13일 김애마을을 찾았다. 초록으로 물든 고즈넉한 마을의 풍경에 긴 여정의 피로도 금세 달아난다. 이따금 편한 복장을 하고 농기구를 둘러맨 사람들이 하나 둘 기자의 옆을 스쳐간다. 낯선 자동차를 타고 나타난 외지인에 3초 정도 경계의 시선을 보낸 후 이내 무뚝뚝한 표정으로 일터를 향해 간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의 풍경이다. 귀농과 귀촌을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떠올려봤을 법한 평범한 시골이다. 하지만 김애마을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드러나지 않는다. 최고의 귀농·귀촌 마을이 되기에는 2%가 부족해 보인다.마을 초입에 위치한 마을회관에서 귀농인 이환의씨와 강승우(60)씨를 만나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강씨는 1년 반 전에 김애마을로 들어온 초보 귀농인이다. 나이는 강씨가 많지만 이환의씨는 하늘 같은 귀농선배다. 강씨가 김애마을에 터전을 구하고 정착하기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작게는 농사 짓는 법부터 크게는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생활하는 법까지 많은 조언을 구했다. 지금도 배우고 또 배우고 있다. 그리고 강씨는 지금 홍동면에 귀농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귀농지원연구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도 아직 초보지만 농촌이 더욱 낯설게 느껴질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탈농 인구 적고 귀농 희망자 많아이환의씨와 같은 귀농 1·2세대 선배들과 강승우씨 같은 귀농새내기들. 이들이 김애마을을 특별한 마을로 만들었다. 더 나은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 새로운 사람들을 돕는다. 새롭게 가족이 된 사람은 다시 후배를 양성하는 선순환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정착해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농민단체와 협동조합이다. 크지 않은 면 단위에 9개의 농민단체가 있고 5개의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별도로 시간을 내서 만나지 않아도 많은 활동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이 맺어지고 서로를 위해 돕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홍동면의 탈농인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적은 이유다.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마을의 다양한 활동을 민간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시골로 온 사람들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힘들게 정착을 했고 나중에 오는 사람들은 덜 고생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게 돼 여러 활동을 하게 된다”는 게 이환의씨의 설명이다. 홍성군 귀농·귀촌의 중심이 되는 곳은 홍성귀농지원센터다. 홍성으로 귀농하거나 귀촌하는 사람들을 돕는 기관이다. 정부의 지원금을 받지만 대부분 운영은 기존에 귀농한 사람들이 맡고 있다. 홍성귀농지원센터의 활동은 도시인들의 정착 성공 확률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집을 구하고 농사를 짓는 법 외에도 어떻게 마을 공동체에 흡수돼 시골에서의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홍성군 내에 3개의 ‘귀농·귀촌 게스트 하우스’도 운영한다. 실제 홍성군의 마을에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씩 머물며 자신이 거주할 마을을 정한다. 미리 마을의 여러 사정을 알고 관계도 맺어두니 실패할 확률도 줄어든다. 그 게스트하우스 중 하나가 홍동면에 있다.홍동면만의 자랑거리는 또 있다. 홍동면의 여러 협동조합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풀무학교’다. 1958년에 설립된 학교로 공식명칭은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다. 학교 이름에서 드러나듯 전문 농업인을 육성하는 학교다. 하지만 단순히 농사짓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생태계를 소중히 여기고, 그 속에서 공동체를 만들어 삶의 가치를 찾는 것에 의미를 둔다. 이학교에서 배출된 인재들이 지역에 머물며 특별한 홍동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풀무신용협동조합’ ‘풀무소비자협동조합’ ‘풀무생협’ ‘갓골어린이집’ 등의 협동조합을 만든 것이다. 이들 협동조합은 홍동면 사람들이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다. 지금은 홍동면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오리농법도 풀무학교에서 시작됐다. 오리를 이용해 농약을 쓰지 않고 친환경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말한다. 홍동면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농산물은 이 오리농법에 따라 재배되고 있다.
공동체 문화의 중심지 ‘풀무학교’이환의씨와 강승우씨의 인터뷰가 끝날 무렵 마을회관으로 마을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농번기를 맞아 5월 13일부터 보름간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점심을 먹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정에 따라 조금씩 낸 돈을 모아 점심을 만들고, 남는 돈은 마을 운영비로 쓴다. 기자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 퉁명스럽게 옆을 스쳐갔던 사람들도 다시 볼 수 있었다. 정갈한 시골음식과 막걸리가 곁들여지자 조금씩 표정이 풀어진다. “일이 많아서 안 오려고 했는데 마을행사에 얼굴이라도 비추려고 왔어” “별 것도 없는 마을 보러 서울에서 먼 길 오셨네” “나 오늘 화장 안 해서 사진 찍으면 안돼요”…. 저마다 사연도 말투도 다른 사람들이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한 상에서 밥을 먹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