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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 피플 (93) 류촨즈 레노버 창업주 - 中 최대 민간기업 이끄는 승부사 

지난해 세계 PC 부문 1위 고수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5위로 도약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류촨즈 레노버 창업주
물량 기준으로 세계 1위의 퍼스널컴퓨터(PC) 제조 업체인 레노버(Lenovo)가 2014년 463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 전년 대비 20%의 성장을 이룬 것으로 나타났다고 BBC방송이 지난 5월 21일 보도했다. 이 같은 매출 호조는 91억4000만 달러에 이른 모바일 단말기 매출 덕분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레노버의 2014 회계연도 총 매출은 463억 달러로 20% 늘었다. 특히 스마트폰을 포함한 모바일 부문의 매출은 71% 증가한 91억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2014 회계연도에 6000만대의 PC와 7600만대의 스마트폰을 팔았다. 모두 새로운 매출 기록이다. 이로써 레노버는 PC에서 글로벌 1위를 고수했으며,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세계 5위에 올랐다. PC 제조 업체를 넘어서 새로운 종합 IT기업으로 도약한 것이다. 2014년 세계 3위의 휴대전화 단말기 업체였던 모토롤라를 인수하면서 모바일에서 글로벌 진출을 본격화해 왔다. 총 순익은 전년 대비 1% 성장한 8억2900만 달러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세계적으로 불황이 계속되는데다, PC의 인기가 떨어지고 모바일 업계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선방한 것으로 평가된다. 레노버는 중국베이징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모리스빌에 본사를 두고있는 글로벌 컴퓨터 기술회사다. 중국 최대의 민간기업이기도하다.

글로벌 종합 IT기업으로 성장

레노버는 지난해 모토롤라에 이어 IBM의 서버 부문을 인수하면서 PC 부문을 넘어 사업 다각화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본격적인 사업 다각화의 원년’을 선언하고 공격적인 경영에 나선 결과 매출은 늘렸지만 서버사업 인수비용 지출로 순익은 감소한 것이다. 레노버 측은 “모토롤라 부문을 포함한 모바일 부분이 지난해 기록적인 판매를 기록했으며 전 세계 시장에서 균형 있는 영업을 했다”라고 자평했다. 레노버는 글로벌 PC 부문에서 20.9%라는 기록적인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PC로 유명했던 이 회사는 이번 결산을 계기로 비즈니스의 중심이 모바일로 바뀌었다.

이런 레노버의 패러다임 전환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레노버의 창업주인 류촨즈(71·柳傳志) 회장이다. 류회장은 레노버와 모기업인 레전드 홀딩스의 지분을 대거 소유한 대주주다. 류 회장의 창업과 성장의 역사는 중국 IT의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그의 IT 경력은 군 통신에서 시작한다. 1966년 시안(西安) 군사전신전문학교에서 통신 기술을 배우면서 IT분야에 입문했다. 이 학교를 마치고 쓰촨성 청두의 국방위원회의 통신기술 연구원으로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그 해 시작돼 1976년까지 중국 전역을 휩쓸었던 문화대혁명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문혁으로 인해 연구원이라는 지식 노동자의 자리에서 밀려났다. 지식인이라고 박해까지 받았다. 후난성과 광둥성으로 하방돼 농장을 전전해야 했다.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연구업무 대신 돼지치기에 종사하는 하급 농업 노동자로 일하며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문혁이 끝나고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펴면서 1979년 가까스로 본업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중국과학원 전산기술연구소 연구원이 된 것이다.

오랜만에 통신·전산 분야 업무로 복귀했지만 그의 과학기술지식과 눈썰미는 녹슬지 않았다. 연구원으로서 발달한 미국 기술을 접한 류 회장은 당시 서구에서 막 붐이 일던 컴퓨터에 주목했다. 이 첨단기기가 앞으로 엄청난 수요를 만들면서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개혁·개방으로 사기업 활동이 허용되는 분위기 속에서 컴퓨터 사업으로 창업에 나섰다. 문혁으로 하방돼 돼지치기를 하던 과학기술지식인이 중국의 벤처 창업 1세대가 된 셈이다.

창업은 초라했다. 1984년 연구소의 경비초소로 이용되다 방치된 20㎡의 자그마한 벽돌집에서 10명의 동료와 함께 창업했다. 차고에서 창업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게 한다. 중국 과학원이 보유하던 IBM 컴퓨터 500대를 사들였다. 이를 뜯어 역설계해 컴퓨터 제조를 시작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야 했던 시절이다.

당시 중국은 막 시장경제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독특한 중국식 자본주의 실험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경제활동 거의 전반을 국가가 중앙계획으로 통제하던 고전적인 사회주의 국가의 엄격한 민간 경제활동 규제가 풀리기 시작하던 체제전환의 시기였다. 모든 것을 관료가 권한을 갖고 조정하던 고전적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민간기업의 자율 활동을 허용하는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혼란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해본 적이 없는 자본주의 실험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시행착오는 흔했다. 흔한 시행착오에 타격을 입고 쓰러지는 기업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민간기업 운용도 큰 도전이던 시기에 그는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컴퓨터라는 분야에 도전을 했다. 벤치마킹할 기업도 하나 없던 시절이었다. 오로지 창의력과 의지만으로 버틸 수 밖에 없었다. 오로지 해외에서 기술을 입수하고 이를 적용해 좀 더 싼 컴퓨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민간기업 활동에 너무도 서투르다 보니 창업 초기에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놀라운 열정은 난관을 돌파하고 성공에 이르게 했다. 1988년 홍콩 증시에 상장됐다.

인수·합병으로 덩치 키워


▎류촨즈 레노버 창업주가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성화 봉송에 나섰다
그는 회사 자체를 키우는 한편 인수·합병으로 덩치를 불렸다. 1997년 베이징 컴퓨터회사를 인수해 중국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2000년 1월에는 포춘 선정 아시아 최고의 비즈니스맨이 됐다. 일선에서 잠시 물러나 있던 2005년에는 17억 5000만 달러를 들여 미국 IBM의 PC 부문을 인수했다. 이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저돌적인 류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류 회장의 레노버는 이 인수를 계기로 단숨에 세계 3위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으며 여세를 몰아 1위까지 올라섰다. 류 회장은 2004년 이처럼 거대한 글로벌 기업이 된 레노버의 경영을 전문 경영인인 양위안칭(51·楊元慶) 최고경영자(CEO)에게 넘겼지만 2008년 다시 복귀했다. 2012년에는 모바일 사업에 진출하면서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렸다. PC 중심 기업에서 모바일로 지평을 넓힌 것이다. 다양화 통해 본격적인 종합 글로벌 IT기업으로 도약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본토에서는 한때 최대의 모바일폰 공급업자로 떠오르기도 했다.

지난해인 2014년에는 인텔의 서버 비즈니스를 인수한 데 이어 1월 구글이 소유하고 있던 휴대전화 제조업체 모토롤라 모빌리티 인수에 나섰으며 그 해 10월 계약을 최종 성사시켰다. 사업 다각화를 통한 성장 지속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류 회장의 집념 어린 기업인 정신은 회사 이름에 잘 나타나있다. 그는 창업을 하면서 스스로 전설을 만들자는 의미에서 회사 이름을 영어로 전설을 뜻하는 레전드(Legend)로 지었다. 중국 이름은 거꾸로 이를 한자로 음차해 렌샹(聯想)이라고 쓴다. 뜻으로 보면 연합을 의미하는 한자다. 인간의 생각을 서로 결합해 창의성을 이룬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도 있다. 회사의 한자 이름은 처음과 그대로지만, 영문 이름은 초기 20년 정도만 쓰이다 바뀌었다.

2002년 전문경영인으로 CEO를 맡고 있던 양위안칭 대표가 해외 시장 개척에 걸림돌이 된다며 회사 영문명을 바꾸었다. 일반적인 영어 단어인 레전드로는 중국 밖에서 브랜드 등록이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2004년 3월 회사 영문 이름을 레노버로 바꿨다. ‘전설’을 뜻하는 레전드(Legend)와 라틴어로 새로움을 나타내는 노버(Novo)의 음을 결합한 이름이었다. 그러면서 전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광고로 브랜드 이름 알리기에 나섰다. ‘탁월함은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라는 매력적인 카피도 그 때 나왔다. 이름 교체를 계기로 브랜드와 회사 이름을 더욱 대대적으로 알렸다.

레노버는 현재 전 세계 60개국 이상에서 활동 중이며 160개국에서 영업하고 있는 글로벌 IT기업이다. 베이징과 모리스빌, 싱가포르에는 생산기지와 연구센터를 함께 두고 글로벌 기지로 쓰고 있다. 중국 상하이, 선전, 샤먼,청두와 일본 가나가와현 야마토에서도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해외의 디자인과 연구인력, 중국의 생산인력을 제대로 결합해 글로벌을 시장으로 삼고 있는 명실상부한 중국의 글로벌 기업인 것이다.

중국의 생산인력해외의 연구인력

레노버는 PC와 태블릿, 스마트폰, 워크스테이션, 서버, 전자기억장치, IT 관리소프트웨어, 스마트 TV 등 IT제품을 디자인,개발, 생산, 판매하는 통합시스템을 갖춘 종합 IT업체다. 디자인 따로, 개발 따로, 생산 따로, 판매 따로 하는 아웃소싱 시스템이 유행인 시대에 그리 많지 않은 종합 IT업체다. 싱크(THINK)라는 브랜드의 제품들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노트북 브랜드인 싱크패드(ThinkPad)와 데스크탑 브랜드인 싱크센터( ThinkCentre)로 잘 알려졌다. 특히 싱크패드는 20여 년 가까이 PC업계의 아이콘이 됐다. 지금까지 1억 대이상 판매된 베스트 셀러다. 뛰어난 내구성으로 유명한데,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군용 환경에서 사용 시험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레노버의 지분 구성은 복잡하다. 34%를 레전드 홀딩스가 보유하고 있으며 58%는 일반 투자가 지분이다. 중국과학원이 레젠드 홀딩스 지분의 36%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레노버가 국영기업 이라는 설이 한때 서방에 파다했다. 실제로 2006년 미국 국무부는 1만6000대의 레노버 컴퓨터를 구입했다가 “중국 국영기업의 제품을 미국 정부에서 쓴다”며 비난을 받았다. 게다가 레노버 제품에는 중국이 정보 수집활동을 활용할 수 있는 스파이웨어가 심어져 있다는 소문까지 났다. 영국의 감청기관인 정보통신본부(GCHQ)는 2000년대 중반 레노버 제품의 하드웨어와 펌웨어 등에서 이런 문제를 찾아 레노버 PC의 사용을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노버는 2015년 2월 20일 자사의 노트북에 슈퍼피시(SuperFish)라는 악성코드를 설치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미국의 시스코도 중국에 수출한 IT제품에 백도어로 불리는 비밀 소프트웨어로 중국의 정보를 수집했다는 의혹이 있다. 하지만 중국이 수출하거나 현지 생산한 IT제품에 이런 소프트웨어나 장치가 발견된 적은 한 번도 없다. G2로 떠오르는 중국의 강력한 IT업체인 레노버에게 부가되는 힘든 정치환경이다.

레노버는 1984년 창업 당시 류 회장이 창업 경비 20만 위안을 융통하면서 중국과학원에서 약간의 투자를 받았다고 밝혔다. 과학원이 자신들의 특허를 기업의 제품개발에 사용할 권리를 얻기 위해 지분을 약간 확보했는데 그것이 세월이 지나다 보니 이렇게 커졌다는 것이다. 중국만의 특유한 기업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 차지한 PC 1위, 모바일 5위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기에 류 회장은 더욱 감격스러울 것이다.

1287호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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