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박수진 알씨케이 대표] 당장 회계 공부 시작하라 

촉망 받던 업계 최연소 임원에서 창업의 길로 … “청년의 마음으로 겸손해져야” 


▎박수진 대표는 “중장년 창업자들이 ‘인맥에 대한 과신’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대학에서 기계설계학을 전공했다. 여성 공학도를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었다. 세계적인 기업용 솔루션 업체(PTC)에 들어갔지만, 유리천장을 뚫는 건 쉽지 않았다. 지기 싫었다. 그래서 그는 독종의 길을 택했다. 30대 초반에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책임자가 됐고, 마흔이 채 되기 전에 임원의 자리에 올랐다. 실력은 이미 인정받았고, 그에겐 보장된 미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MBA를 마친 그는 창업을 결심했다. 스스로도 불안했고, 주변의 만류도 있었지만 결국 마음이 가는 길을 따라갔다. 박수진(47) 알씨케이 대표 얘기다.

“돌아보면 정말 정신이 없던 시절이었죠. 낮밤 없이 뛰었던 것 같아요. 한창 일이 많았던 시기에 아이들 사춘기가 겹쳤어요. 시간이 늘 부족했죠. 딸에게 미안한 마음에 매일 밤 늦게, 아이가 좋아하는 치킨을 먹었어요. 그때 참 살이 많이 쪘죠(웃음). 아이와 조금이라도 대화를 나누려면 그 방법 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열심히 산 덕분에 회사에서 인정받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임원이 된 거죠. 당연히 더 높은 곳으로 가야겠다는 꿈을 꿨어요. 그러다 생각하지 못한 다른 길이 열렸고, 예정에 없던 선택을 했죠. 회사에 남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공학 전공한 당찬 여성 임원 출신


박 대표가 2012년 창업한 알씨케이는 3D 솔루션 개발 업체다. 쉽게 말해 종이 도면이나 기술 문서를 3D로 대체하는 일이다. 아주 작은 로봇의 조감도부터 대형 플랜트의 전체 설계도까지 3D로 구현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룬다. 최근 기업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스마트 팩토리’ 관련 솔루션도 제공한다. 조선 업체 등 대기업은 물론 많은 중견 제조기업이 알씨케이의 고객이다.

“이미 3D는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 있어요. 앞으론 더욱 가까워 지겠죠. 어려워 보이지만 제겐 20년 넘게 해온 일이니까요. CAE·CAD·PLM 등 기업용 솔루션 분야에 3D라는 옷을 입히는 일이죠. 예전에 함께 일했던 외국 동료가 괜찮은 제품이 있는데 한국에서 사업을 진행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어요. 가능성이 크다고 본 영역이라 제가 직접 나서게 된 거죠. MBA 과정을 통해 많은 글로벌 기업인들과 교류하게 된 것도 영향을 미쳤죠.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장에선 승승장구했지만 창업은 달랐다. 시작부터 끝까지 변수의 연속이었다. 그 역시 신생 기업이 늘 겪는 시스템의 문제에 봉착했다. 경영관리·인사·재무 등 파트별로 모든 걸 새로 구축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실수도 많았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전 직장에서 지금보다 10배 큰 조직을 이끌었기 때문에 인력 관리엔 나름 자신이 있었어요. 하지만 팀장으로서의 조직 관리와 사장으로서의 조직 관리는 전혀 달랐어요. 1년 전 대형 프로젝트가 3개나 겹친 때가 있었는데 회사에게는 좋은 일이었지만 일손이 부족했죠. 직원들은 최선을 다했겠지만 어쩔 수 없이 퀄리티는 떨어지고, 시간에 쫓기니 결국 사업이 지연됐어요. 사장인데 조급해질 수 밖에 없죠. 자연히 직원들에게 안 하던 싫은 소리도 하게 되는 거죠. ‘조직이 흔들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보면 아찔한 생각이 들지만 그 때 참 많이 배웠어요.”

최근 박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기관에서 청년 창업 멘토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청년 창업과 달리 중장년 창업은 ‘자제’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험이 있고, 직장에서 큰 사업도 진행해봤기 때문에 처음부터 규모를 키우려는 분들이 꽤 많아요. 하지만 인력이든 설비든 늘리는 건 쉬워도 줄이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성과를 반영해서 조금씩 늘려가도 되는데 욕심을 부리는 거죠. 덩치가 커진다는 건 그만큼 관리도 힘들어진다는 의미죠. 그러면 결국 어딘가에서 균열이 생기고요. 청년 창업과 달리 실패하면 회복하기도 어려운데 처음부터 그 큰 리스크를 안고 갈 이유가 있을까요?”

그가 강조한 또 하나의 키워드는 ‘겸손’이다. ‘안다’보다는 ‘모른다’가 낫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경험이나 지식이 많으니 그럴 수 있지만 ‘안다’는 건 늘 위험한 거라 생각해요. 그만큼 유연성이 떨어지고, 자기 확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니까요. 기업의 구성원일 땐 위든 아래든 자연스럽게 제어가 되지만 사장이란 타이틀을 달면 누구도 제어하기 어렵거든요. ‘인맥에 대한 과신’ 또한 버려야 합니다. 직장 시절 맺은 인맥이 사장님이 돼서도 통할 거라 생각한다면 단언컨대 틀렸습니다. 그건 기업이라는 울타리가 안겨준 일종의 혜택이었을 뿐 ‘내 것’은 아니거든요. 백지부터 처음 그린다는 청년의 마음으로 한없이 겸손해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창업자에게 신규 사업은 일종의 ‘자기개발’

박 대표는 최근 본격적으로 회계 공부를 시작했다.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뒀었다. 실제로 그의 책장엔 회계 관련 서적이 꽤 많이 꽂혀 있었다.

“MBA에서 케이스 스터디를 할 때도 배운 거지만 대기업 임원 출신이라고 창업에 늘 성공하는 건 아니에요. 사업 아이템은 매우 훌륭한데 다른 곳에서 문제가 터져 실패하는 경우가 꽤 많죠. CEO에겐 현금 흐름을 잘 알고, 이걸 융통성 있게 조절해 나갈 능력이 꼭 필요한데 사실 상당수 창업자들은 회계를 전문가에게 그냥 맡겨 두죠. 당장 얼마를 투자할 건지, 몇 명의 인력을 더 채용할 건지, 어느 정도를 쌓아둘 건지 등 실제로 사업이란 걸 해보니 핵심은 결국 ‘돈’인 것 같아요. 창업을 생각하는 분이라면 미리 회계 공부를 해두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최근 경기 침체의 여파는 알씨케이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객인 기업들이 사업 규모를 축소하거나 정지시키는 분위기여서다. 최근엔 일본 진출도 시도했지만 반한 감정에 밀리기도 했단다. 쫓길 만한데 박 대표는 이 참에 다른 사업으로도 눈을 돌릴 생각이라고 했다.

“요즘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생뚱맞아 보일 수 있지만 화장품 브랜드 론칭을 준비 중이에요.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여기서 또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창업자에게 신규 사업은 일종의 ‘자기개발’이기도 하니까요. 어차피 이 길로 들어섰으니 ‘안정’ 대신 ‘도전’으로 계속 달려야죠.”

1289호 (2015.06.15)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