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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북팔 대표] 반걸음 앞선 ‘창업 속도’가 경쟁력 

스마트폰 보급 주시하며 웹소설 제공 앱 만들어 … 중국 시장에도 진출 


▎“스마트폰 붐이 불기 전 시장을 선점한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해 엔지니어로서 사회에 첫 발을 디뎠다. 삶은 무료하기만 했다. 겨우 2년을 채우고 퇴사했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광고·콘텐트 분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작은 광고대행사에 취직한 것. 엔지니어 일보단 흥미로웠다. 하지만 마음 속에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7년간의 경력을 쌓은 후 퇴사했다. 2007년 동료 2명과 함께 아예 회사를 차렸다. 많은 사람이 개인 블로그에 올린 게시물을 엄선해 모아 하나의 온라인 잡지처럼 만들어 팔면 잘 될 것 같았다. 지금은 그런 일을 ‘큐레이팅’이라고 부르지만, 당시에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사업은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접어야 했다. 웹소설 콘텐트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운영하는 ‘북팔’ 김형석(46) 대표의 이야기다.

대출 받은 1000만원으로 북팔 창업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을 맺었다면 진부한 실패담이 됐을 터다. 김 대표는 “한고비만 넘겼어도 뭔가 결실을 맺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과 후회가 계속해 남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함께 창업했던 동료들은 다른 회사로 돌아갔다. 그만 혼자 남아 도전의 기회를 엿봤다. 때마침 2010년 스마트폰이 등장했다. 웹 기반의 콘텐트를 모바일 환경에서 제공하면 관심을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과거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 회사를 창업했다. 대출을 받아 마련한 1000만원이 유일한 재산이었다. “어떻게든 끝을 봐야 다른 일을 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웹소설 앱 ‘북팔’이 탄생한 계기다. 현재 450만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35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100억원 매출 돌파를 목표로 순항하고 있다. 사업 모델은 간단하다. 수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이 글(소설)을 쓴다. 북팔은 그중 뛰어난 작품을 골라 앱에 연재한다. 글의 이미지에 맞게 표지를 만들고 모바일 환경에 적합하게 편집도 한다. 북팔에 가입된 회원(독자)들이 돈을 내고 그걸 읽는다. 작가에게 고료를 주고 남는 돈이 곧 북팔의 수익이다.

김 대표는 “스마트폰 붐이 불기 전에 일찍 시장에 뛰어든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사실 아마추어 작가들이 쓴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사이트는 많았다. 과거 PC통신 시절부터 있던 개념이다. 인터넷에 글을 올려 인기를 끈 사용자가 정식 작가로 등단하거나, 그 글을 원작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제작되는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컴퓨터로 소설을 읽는 것과 스마트폰으로 읽는 것은 차이가 있었다.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글의 양부터 다르다. 많은 사람은 “작은 스마트폰으로 소설을 읽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컴퓨터는 시간을 정해두고 특정 장소에서만 쓰는 반면, 스마트폰은 출퇴근 길, 화장실, 침대 등 어디서도 사용할 수 있다. 오히려 더 많은 독자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 대표는 스마트폰에서 최적화된 소설 읽기 앱을 만들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비교적 경쟁자가 적었던 시절, 많은 사람이 북팔에서 콘텐트를 소비했다. 자고 일어나면 회원 수가 늘었다. 스마트폰 보급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쓸 만한 앱은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개의 앱을 다운받아 이용했고, 그중에 하나가 북팔이었다. 북팔에서 콘텐트를 소비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비슷한 앱이 나와도 북팔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북팔이 시장 선점의 효과를 톡톡히 누린 셈이다.

잘 나가던 북팔은 성공에 취했다. 골방 같았던 사무실을 버리고 서울 강남에 더 크고 근사한 사무실을 얻었다. 직원 수도 늘렸다. 그러자 회사에 위기가 찾아왔다. 좋은 앱을 개발하고 회원 수는 늘렸는데 정작 그 인기를 매출로 연결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2010년 전후로 성장한 수많은 앱 개발 회사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북팔의 수익 모델은 지금과 달랐다. 앱 상의 모든 콘텐트는 무료로 제공하고, 앱에 광고를 넣어 매출을 유지했다. 그 비즈니스 방법에 한계가 찾아온 것이다. 2012년 중반을 넘어가면서 매달 1000만원 이상의 적자가 났다. 30개가 넘는 엔젤투자자를 만났지만 자금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수익이 나지 않는 회사에 투자를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회사는 문을 닫기 직전까지 몰렸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했다. 비싼 임대료의 사무실부터 정리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벤처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사무실을 싸게 임대했다. 그리고 승부수를 던졌다. 북팔이 제공하는 여러 콘텐트를 정리하고 웹소설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무료 서비스를 유료로 바꿨다. 무료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해 성공을 거둔 회사는 드물었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다. “손 털 타이밍만 보고 있던 시기였다. 유료화 후에도 적자가 나면 회사는 그냥 망하는 거였다.”

2013년 1월 결산을 했다. 모든 비용을 내고 직원들의 급여를 주고 나니 회사 통장에 1만7000원 정도가 남았다. 처음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기적이 일어난 것. 당시 국민게임으로 인기를 끌었던 ‘애니팡’의 힘이 컸다. “이 게임을 기점으로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앱에서도 돈을 쓰는 것이 익숙해 졌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이후부터는 꾸준히 수익이 늘었다. 매출은 매달 50~100%씩 올랐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6월이 되자 김 대표 앞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창업투자사에서 북팔에 투자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투자를 해 달라고 애원할 때는 꿈쩍도 않던 창업투자사 들이 서로 투자를 하겠다고 달려드니 꿈인가 싶었다.”

광고 의존 버리고 무료→유료로 서비스 전환

최근 북팔은 창업투자사로부터 35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이 자금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해외 진출에 나서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의 우수한 콘텐트를 해외에서도 파는 것이다. 마침 한류 열풍으로 한국 소설에 대한 관심이 커져 사업 성공 확률이 높은 편이다. 작가들은 해외에서도 자신의 작품을 팔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김 대표는 ‘속도’ 때문에 망했고, 또 흥했다. 2007년 처음 창업을 했을 때는 개념조차 낯선 큐레이팅을 아이템으로 정했다가 망했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창업해 겪은 어려움도 많았다. 2012년 북팔이 인기를 끌었을 때도 너무 빨리 외형을 늘리다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빨리 시장을 선점해 회사를 키웠고, 이른 시점에 유료화에 도전에 성공을 거뒀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의 벤처 지원도 빠르게 신청해 받을 수 있었다(북팔이 지원한 해 2대 1 정도였던 경쟁률은 이듬해 100대 1 정도로 뛰었다). 또 조금 빠른 타이밍에 해외 진출을 선언했다. “IT·벤처 환경에서 창업을 할 때는 결국 속도가 중요합니다. 자고 나면 수백 수천 개의 회사가 생겨나요. 머리 속에 아무리 좋은 개념을 담아둬도 먼저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최종적으로 승자가 됩니다. 시장 변화 속도보다 무조건 빨라야 해요. 물론 너무 빨라 위태할 때도 있지만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도태되는 것보다 뭐라도 해보는 게 나중에 후회도 덜 남지 않을까요?”

1289호 (201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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