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해외 면세점은 지금] 일본→중국 관광객으로 눈 돌린 ‘면세 공룡’ 

공격적 투자 확대하는 DFS·듀프리 … 해외 면세점 입찰 경쟁 갈수록 치열 


▎미국 뉴욕 JFK국제공항 터미널 내 DFS 면세점. / 사진:DFS 제공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7월 23일 미국 괌 공항에 2250㎡ 규모의 대형 매장을 열었다. 롯데는 괌공항에 진출하며 국내 면세 사업자로선 최초로 외국 공항의 전체 면세 사업 운영권을 따냈다. 그 곳이 다른 곳도 아닌 최대 여행유통업체인 DFS(Duty Free Shoppes)그룹이 30년 넘게 독점 운영해온 괌 공항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글로벌 면세시장의 강자로 떠오른 롯데면세점이 전통의 강호 DFS를 제치고 괌 면세사업권을 따냈다는 점에서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노른자위를 빼앗긴 터줏대감 DFS는 괌공항 면세점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롯데면세점이 심사위원들에게 뇌물을 줬다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두 업체간 법적 공방이 1년 넘게 지속됐지만 괌 법원이 롯데면세점의 손을 들어주며 사건은 일단락됐다.

대규모 시내 면세점 별도 관리하는 DFS


세계 1~2위를 다투는 면세점 업체 DFS가 괌공항 운영권을 놓고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인 데는 이 회사의 역사적인 배경이 작용했다. 1960년 설립된 DFS는 당시 경기 호황기를 맞은 일본 여행객 덕분에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다. 여행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일본 관광객들은 전 유럽을 휩쓸며 명품을 사들이기 바빴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는 당시 매출의 20%를 일본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기염을 토했다. DFS는 일본인 관광객이 많은 미국 하와이와 괌,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면세점 운영권을 따내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 후 30여년간 괌에서 안정적인 사업을 벌여온 DFS그룹으로선 운영권 획득 실패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1980년대 말까지 승승장구하던 DFS는 1990년대 들어 일본 경제의 추락과 함께 위기를 맞았다. 이를 프랑스 명품 유통업체 LVMH(루이비통 모에 헤네시)가 1996년 인수했다. LVMH는 루이비통·크리스찬디올·펜디·셀린느 등 수많은 명품 브랜드를 거느린 글로벌 기업이다. 현재 15개 도시, 150여개 매장을 운영하는 DFS는 과거 일본 관광객에 집중했던 사업 타깃을 몇 년 전부터 중국 관광객으로 옮기고 있다. 200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본부를 홍콩으로 이전하고, 2007년 마카오에 면세점을 낸 것 역시 중국인의 잠재력을 파악해 대비한 결과다.

전 세계 면세점 업체가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하고 있는 시점에서 DFS 역시 중국으로 사업 방향을 틀면서 경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DFS는 규모가 큰 도심형 면세점을 ‘갤러리아(Galleria)’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관리하고 있다. 모기업인 LVMH가 쟁쟁한 명품 브랜드를 소유한 덕분에 갤러리아는 고가 품목을 많이 구비한 시내 면세점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이랜드가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에 뛰어들며 손잡은 업체는 DFS그룹과 함께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는 듀프리(Dufry)다. 듀프리는 전 세계 2000여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 면세점 중 하나다. 이랜드는 듀프리와 글로벌 상품 소싱 및 운영 지원 협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랜드는 듀프리에 판매수수료를 주고 핵심 콘텐트인 명품과 화장품 브랜드 공급 등을 지원 받는다. 첫 면세 사업에 뛰어든 이랜드는 선진화된 면세점 업체와 협력해 물류와 유통 운영의 약점을 극복한다는 전략이다.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스위스 면세 업체 듀프리는 2004년 국제컨소시엄에 인수되면서 면세 업계에서 선두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스위스를 비롯해 미국·싱가포르·러시아·프랑스 등에서 공항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파나마 콜론, 크로아티아 등에서는 크루즈 내 면세점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지중해 연안과 라틴아메리카 캐리비안해안 등 대규모 관광지에 면세점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줄리안 디아즈 듀프리 CEO는 지난 10년 간 12번의 인수·합병(M&A)을 통해 회사의 몸집을 키워왔다. 지난 3월에는 패션 브랜드 베네통이 운영하는 면세 업체 월드오브듀티프리(WDF)를 인수했다. WDF 인수전에는 롯데면세점과 중국 선라이즈듀티프리도 참여했으나 듀프리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이번에 인수한 WDF 역시 면세 시장에서 ‘글로벌 톱 10’에 드는 업체로, 전 세계 19개국의 495개 점포와 98개의 공항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듀프리는 WDF의 지분 50.1%를 주당 10.25유로에 매입하기로 합의했다. 책정가는 WDF의 6개월 주가 평균에서 22%가량 프리미엄이 붙은 수준이다. 이에 따른 총 인수 규모는 13억 유로(약 1조5582억원)로 추산되며, 부채 포함 인수액은 36억 유로(약 4조3151억원)에 이른다. 인수는 올해 3분기 중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WDF 인수로 듀프리는 한 해 90억 달러(약 9조9650억원) 이상의 추가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듀프리는 이미 지난해 6월 같은 스위스 면세 업체인 뉘앙스(Nuance)그룹을 15억5000만 유로(약 1조7155억원)에 인수했다. 인수되기 전까지 이탈리아 식품 유통 업체 그루포와 프랑스 사모펀드 PAI가 소유했다. 스위스항공과 크로스항공을 대상으로 면세사업을 시작해 취리히·런던·카디프·글라스고·맨체스터공항 등 주로 유럽 지역 공항을 장악해왔다. 이를 너머 캐나다를 비롯한 미주 지역과 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까지 세를 확장해 약 320개 매장을 갖고 있었다. 뉘앙스는 특히 홍콩을 기반으로 한 왓슨그룹과 제휴해 아시아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듀프리가 뉘앙스를 인수한 배경 역시 아시아 시장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분석이다. 올들어 WDF까지 인수에 성공하며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듀프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1위 자리를 굳힐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년 새 업계 6~7위 업체 집어삼킨 듀프리


면세기업 3위를 고수하는 프랑스 LS트래블리테일은 듀프리, DFS처럼 면세·여행유통 전문 기업이다. 백화점이나 호텔법인이 면세사업부를 운영하는 국내 면세점과 달리 독자적인 운영 능력을 갖춘 면세점 전문 기업이라는 점이 LS트래블리테일의 가치를 높이 사는 이유다. 실제로 신세계그룹은 이 같은 약점을 의식한 듯 4월에 면세점 별도 법인인 신세계디에프를 설립했다. 신세계그룹은 신세계디에프를 세우면서 “면세점 부문을 독립 법인으로 운영해 성장 가능성이 큰 면세사업을 글로벌 기업처럼 전문화해 그룹 전략사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라며 “글로벌 면세시장 1~3위 사업자가 모두 전문 기업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빠른 의사결정과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LS트래블리테일이 세계 3위로 급부상한 데는 모기업인 프랑스 미디어그룹 라가르데르의 공격적인 매장 확장 덕분이다. 현재 유럽 주요 공항과 아시아 신흥국에 진출해 있으며 전 세계 130개 공항에 매장을 두고 있다.

글로벌 면세시장에서 4위(2013년 기준)를 차지한 롯데면세점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하이네만(Heinemann)도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독일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가족기업으로, 독일의 모든 공항과 오스트리아·스페인·포르투갈 등 주요 공항에 입점해있다. 특히 폴란드·헝가리 등 동유럽과 터키·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엔 롯데·신라면세점을 따돌리고 호주 시드니 공항 면세점 운영권을 따냈다. 기존에 운영을 맡은 뉘앙스에 이어 지난 2월부터 영업을 시작한 하이네만은 2022년 8월까지 시드니공항 내 5개 면세점에서 향수와 화장품 매장을 운영한다. 시드니 공항 면세점 연매출이 2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이전까지 국내 기업들은 운영권 확보에 공을 들였다.

특히 롯데면세점은 호주 진출을 통해 글로벌 업계 4위에서 3위로 뛰어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결국 시드니 공항 면세점의 새 주인은 하이네만에게로 돌아갔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 업체들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시드니 공항 등 면세점 입찰에는 출혈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며 “국내 면세점 업체뿐 아니라 해외 업체들 역시 해외 진출에 발빠르게 나서고 있는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라고 내다 봤다.

1288호 (2015.06.08)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