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면세점 열풍 왜?] 불황에도 면세점만 나홀로 성장 

올해 국내 시장 규모 10조원 넘어설 듯 … 과잉 투자 경계론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된 면세점 사업을 둘러싼 재계의 각축전이 치열하다. 유통업과 호텔업 전반이 불황으로 실적이 예전만 못한 가운데 면세점 시장은 해마다 급성장하면서 관련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특히 한국을 찾는 유커(遊客, 중국인 관광 객)가 해마다 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새로 주어지는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 티켓을 따내려는 재계 거물들이 한치 양보 없는 경 쟁을 벌이고 있는 배경이다. 해외에서도 면세점 입찰 경쟁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지나친 투자가 독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당장 면 세점 만한 투자처가 없다는 판단이다. 국내외 면세점 열풍의 이모저모를 짚어봤다.

▎서울의 한 시내 면세점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산 화장품을 고르고 있다. / 사진:전민규 기자
최근 재계는 ‘서울 시내 면세점 대전(大戰)’으로 떠들썩하다. 올해 정부가 15년 만에 서울에서 시내 면세점 3곳의 신설을 허용할 예정이어서다. 기업 입장에선 면세점 사업에 새로 뛰어들거나 기존 사업을 키울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는 한편, 특정 기업의 시장 독과점을 막기 위해 5년마다 경쟁 입찰을 실시해 우수 기업에 신규 면세점 사업권을 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꿨다. 관세청은 6월 1일까지 서울에서 시내 면세점 운영을 희망하는 업체들의 신청을 받고, 전문가 심사를 거쳐 7월 중 서울 시내 신규 면세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이번 신규 사업권은 대기업 2곳과 중소·중견기업 1곳이 가져가게 된다. 관세청은 제주시내 면세점 사업권도 기업 1곳에 줄 예정이다. 이에 따라 재계는 너도나도 신규 면세점 사업권 확보에 열을 올리고 나섰다. 그간 국내 유통 업계는 전통적 수익 창출원인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역량을 집중했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이들로부터 얻는 수익이 나날이 줄어들었다. 거꾸로 면세점만은 나홀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기업들로서는 면세점 사업에 그만큼 집중할 수밖에 없다. 호텔 업계 등도 마찬가지다. 서울을 중심으로 국내에서 면세점 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다.

시내 면세점 성장세 두드러져


면세점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사실은 각종 지표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면세점 시장은 2010년 4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8조3000억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이 기간 매년 20%를 넘나드는 고성장을 이어갔다. 올해도 비슷할 전망이다. 오린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면세점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20.5% 증가해 1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며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유통 업계로서는 중요한 기회의 장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지난해 유통 업계 전체적으로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의 매출 증가율이 2~3%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면세점은 명실상부한 ‘뜨는 시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유통업 전체 매출은 몇 년째 지지부진하지만 면세점 사업만이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우리로서는 면세점을 불황 타개책의 하나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면세점은 브랜드 이미지 고급화에도 기여하는 만큼 메리트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정철진 경제평론가는 “호텔 업계도 호텔 자체로 거두는 매출은 전체의 10% 정도로 많지 않다”면서 “이들에게 면세점은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황금알 낳는 거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특히 시내 면세점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시내 면세점 매출은 약 5조4000억원으로 공항면세점 매출(2조9000억원)의 두 배 수준에 가까웠다. 외형만 눈부신 것이 아니다. 증권가는 이번에 서울 시내 신규 면세사업자로 선정된 기업들이 연간 700억~1000억원의 짭짤한 순이익을 거두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내 면세점의 경우 사업자가 대부분 자기 소유 건물을 활용해 운영하므로 0.05%의 매출수수료 외에는 별도의 임차료가 들지 않는다. 이에 반해 공항면세점은 면적 3.3㎡당 연간 1억원가량의 임차료를 내야 해서 시내 면세점보다 관리·운영비가 훨씬 더 든다. 시내 면세점의 수익성이 큰 이유이자, 기업들이 시내 면세점을 새로 확보하는 데 공을 들이는 이유다.

시내 면세점의 무서운 성장세 뒤에는 유커(遊客)라 불리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한국행 러시가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유커는 약 613만명에 달했다. 이들이 서울 시내 주요 면세점의 주요 소비층으로 급부상하면서 시내 면세점의 매출 증가를 주도하고 있다. 유주연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중국인은 국내 면세점 시장의 ‘큰 손’으로 자리매김했다”며 “이들은 공항면세점보다 시내 면세점에서 주로 쇼핑을 한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오는 2020년이면 한국을 찾는 유커가 1500만명에 이르고, 이들의 지출 규모도 3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포함 아시아권이 세계 시장의 태풍의 눈

세계적으로도 면세점산업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전 세계 면세점 시장 규모는 2011년 460억 달러(약 50조원)에서 2012년 542억 달러(약 60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올해 이 규모가 600억 달러(약 66조원)로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DFS그룹, 스위스의 듀프리(Dufry), 프랑스의 LS트래블리테일 등이 세계적인 면세사업자로 꼽히며 한국의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도 규모 면에서 세계 10위권이다. 지난해 기준 롯데면세점은 4조2170억원, 신라면세점은 2조5376억원의 매출을 각각 기록했다. 세계 면세점 업계는 앞으로 중화권과 한국 중심의 아시아권이 세계 면세점산업의 중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 한국의 면세점 시장 규모는 2위 영국(4조원대)의 두 배라는 압도적 차이로 세계 1위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가득한 건 아니다. 면세점산업에도 다른 산업들처럼 호황기와 불황기가 따로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호황이지만, 한국에서 1980년대에 잘나가던 면세점산업이 1990년대 들어 구조조정기를 거쳤듯 앞으로 다시 구조조정기가 찾아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최근 재계의 면세점 투자가 수년 후엔 과잉 투자로 돌변할지도 모른다. 관광공사 전망과 달리 지금과 같은 한류 열풍이 식으면서 유커들의 한국 방문이 급감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과도한 투자를 경계하되, 지금 갖고 있는 면세점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서비스 강화 등 질적인 개선에도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288호 (2015.06.08)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