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관광 수요 편중 문제 없나] 어느 날 갑자기 유커가 발길 돌리면… 

엔저에 일본으로 건너가고, 씀씀이도 줄어 … 중동·러시아 등으로 시장 다변화해야 


▎4월 30일 판다 복장을 한 연기자 20여명이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행진하고 있다. 신세계그룹과 남대문시장이 중국인 관광객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마련한 행사다. / 사진:중앙포토
면세점 매출이 늘어나려면 한국에서 외국으로 나가는 관광객이 늘어나거나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해야 한다. 이들의 구매력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매출과 영업이익이 좌우되겠지만 일단 오가는 사람이 많아야 뭐라도 팔 수 있다. 현 추세로 보면 전망은 나쁘지 않다. 둘 다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로 관광을 떠나는 한국인(내국인 출국자)은 2012년부터 3년 연속 8%대의 증가율을 기록하며 지난해 처음으로 1600만명을 넘어섰다. 올 3월까지도 전년 동기 대비 19.4% 늘어난 470만명이 해외로 나갔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는 18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관광객 역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마다 늘어 지난해 처음으로 1400만명 고지에 올라섰다. 2013년을 제외하면 2010년 이후로 매년 두자릿수의 가파른 증가세다. 올해도 3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12.1% 늘어난 321만명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지나친 쇼핑·옵션 관광에 불만 안고 돌아가는 유커


뭐가 문제냐 하겠지만 늘 그렇듯 편중엔 부작용이 따른다. 최근 관광 업계는 ‘중국만 바라보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에 온 외국인 관광객의 43.7%(613만명)는 유커(遊客, 중국인 관광객)다. 홍콩·대만을 합하면 중화권 관광객이 52.3%다. 2009년까지만 해도 관광산업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은 일본인 관광객이었다. 비중이 39%를 차지할 정도였는데 양국 관계가 악화되면서 2012년 정점(352만명)을 찍은 뒤 해마다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올해는 200만명 선마저 붕괴할 것으로 보인다. 이 빈자리를 채워준 게 바로 유커다. 2009년 134만 명에 불과했던 유커는 2011년 222만명, 2013년 432만명으로 급증해 올해는 700만명을 넘어설 게 확실시 된다. ‘일본인이 떠난 명동을 중국인으로 채웠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물론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경제 성장과 중산층의 확대는 해외 여행객의 증가와 연결되고,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은 중국인에게 매력적인 여행지 중 하나다. 한류 열풍의 반영 효과 또한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여러 유통기업이 면세점 투자에 열을 올리고, 서울과 수도권 지역 호텔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유커가 지금보다 더 오고, 더 많이 쓸 것이란 가정 하에 하는 투자다.

그러나 언젠가는 유커의 증가세 역시 정점을 찍는다. 최근 관광 업계에선 ‘그 시점이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조금씩 조짐이 보인다. 일단 유커의 한국 여행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14 외래관광객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의 3년 내 재방문 의향 비율은 85.4%다. 유커의 재방문 의향은 평균치보다 약간 높은 85.9%지만 ‘매우 그렇다’고 답변한 비중이 14.7%로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낮다. 타인에게 한국 관광을 추천할 의향이 있는 관광객 비중 역시 91.6%로 평균(89.5%)을 상회했지만 ‘매우 그렇다’고 답변한 비중은 전체 평균(25.6%)보다 10%포인트 가량 낮은 15%에 그쳤다. 이태섭 나비투어 대표는 “초저가 여행의 부작용 등이 부각되면서 실망감을 안고 돌아가는 유커가 적지 않다”며 “중국인 관광객을 은근히 무시하는 분위기도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유커가 늘었다는 얘기는 곧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의미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국인 대상의 관광상품을 취급하는 국내 여행사 300곳 중 57%는 “유커 증가보다 업체 간 경쟁 심화가 더 빠르다”고 답했다. ‘공격적 마케팅(45%)’이나 ‘신규 업체 급증(32%)’이 주 원인이다. 이태섭 대표는 “경쟁이 심해지니 중국 현지 여행사에 수수료를 더 많이 주게 되고, 심지어는 원가 이하로 관광객을 유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자연히 쇼핑·옵션 관광으로 손실을 회수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유커 사이에 불만이 누적되고 ‘다시 오기 싫은 나라’라는 정서가 확산되면 재방문율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달리 일본은 최근 엔저(엔화 약세)를 무기로 빠르게 중국인 관광객을 흡수하고 있다. 올해 1~4월 사이 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133만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처음으로 한국인(125만명)마저 추월했다. 얼어붙었던 중·일 관계가 해빙 모드에 접어든 효과인 동시에 엔저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중 44.7%(2014 외래관광객 실태조사)가 여행지를 선택할 때 일본 방문을 동시에 검토한다. 이들이 여행지를 최종 결정할 때 환율이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그런 면에서 얼마 전까지 한국은 강점이 있었다. 그러나 엔저 효과가 누적되면서 매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심지어 명품 가격도 얼마 전 역전됐다. 우리나라 면세점에서 파는 루이비통 가방 가격이 일본 긴자 매장보다 비싸다. 엔저 지속이나, 중·일 관계 개선 등이 우리 관광산업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시 오기 싫은 나라’ 정서 확산 우려

이런 와중에 유커의 씀씀이는 예전보다 줄었다. 롯데백화점 본점(명동)을 방문한 유커의 1인당 평균 구매액은 2013년 90만원에서 지난해 65만원, 올해 58만원(1~4월)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 와서 쓰는 1인당 평균 경비는 2014년 기준으로 1606달러다. 2013년보다 42.7달러 줄었다. 유커는 여전히 중동(3056달러) 다음으로 많은 2095달러를 쓰고 있지만 2013년 2272달러에 비해 10%가량 감소했다.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떨어지는 젊은 유커(1980년대 이후 출생한 바링허우 세대)의 개별 여행이 늘고 있는데다, 주요 쇼핑 품목 역시 화장품과 의류의 비중이 커진 반면 가격이 비싼 명품 비중은 줄었다.

이처럼 ‘중국 특수의 축소’가 우려되는 시점이지만 대비책은 마땅치 않다. 중국만큼 한국과 가깝고, 인구가 많은 나라는 없다. 과도한 투자가 나중에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상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정책연구실장은 “당장 유커가 급감할 우려는 적지만 길게 보면 중동이나 러시아 등으로 수요를 다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최근 정부가 콘텐트 강화 등을 통해 장기적인 준비를 시작한 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1288호 (2015.06.08)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