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가상현실 돈 되나?] 2020년 가상현실 콘텐트 시장 2조원 

게임·교육·레저 분야 응용 여지 많아 … 스마트폰 못지 않은 거대한 시장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직원들이 최근 개발한 '디지털 사파리'를 시험해 보고 있다.
가짜(가상)가 너무나도 진짜(현실) 같은 나머지 구분을 할 수 없으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진짜(현실)가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 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실제로 그럴 일이 없어서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질문은 우려가 됐다. 디지털 기술이 대부분의 것을 아주 쉽게 복사해 버리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다.

디지털 기술이 가상현실과 만나자 문제는 더 커졌다. 디지털이 만들어 놓은 그럴 듯한 복제품에 가상현실 기술이 생명을 불어 넣고 있는 것. 인간의 모든 감각과 연동해 현실처럼 느끼도록 만드는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대중이 ‘정말 그렇게 되면 현실과 가상현실을 어떻게 구분하느냐’며 우려 섞인 질문을 던지면, 기술은 ‘정말 그렇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답한다. 사회의 고민과는 무관하게 기술은 쌓여가고 자연스레 시장도 커가고 있다.

가상현실은 첨단기술로 중무장하기 전부터 우리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가상현실’이란 이용자가 가상의 공간에서 하는 행위를 진짜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기술을 말한다. 아주 옛날에 쓰여진 소설이 광의적 의미의 가상현실이다. 가상의 스토리를 제공해 독자가 소설 속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술은 여기에 몰입도를 더한다. 소설을 읽을 때 소리가 들리게 하거나, 촉감이나 향기가 느껴지도록 하는 시도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아예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의 플롯을 따라가게 만들면 완벽한 형태의 가상현실 체험이 이뤄질 수 있다.

최근 가상현실 시장이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는 관련 기술이 더욱 발달해서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가상현실 기술’이라고 불릴 만한 체험을 하려면 비싸고 거대한 장비가 필요했다. 지금은 비교적 간단한 장비들로 기술 구현이 가능해졌다. 대다수의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에, 안경이나 시계 같은 웨어러블 장치를 연결하면 현실과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 수준의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간단하고 저렴한 장비로 기술 구현


전문가들은 가상현실 업체들이 가장 치열하게 다투며 발전할 시장으로 ‘게임’을 꼽는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마켓츠앤마켓츠는 2020년 가상현실 콘텐트 시장 규모가 15억8800만 달러(약 2조1000억원)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중 26.8%가 게임 관련 콘텐트로 채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염보라 책임은 “가상현실 기술이 가진 특징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분야가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게임이 구동되는 공간 자체가 이미 지루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가상현실의 정의와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여기에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로 개발된 기술을 직접 적용해보기도 용이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국방이나 의료 분야에서는 완벽하고 오차가 전혀 없는 기술이 필요하다. 게임은 다르다. 기술적 완성도가 다소 떨어져도 게임적 흥미가 충분하다면 직접 적용해 가며 발전시킬 수 있다.

성공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사례도 존재한다. 일본 닌텐도가 개발한 게임기 ‘위(wii)’가 대표적이다. 가정에 있는 TV와 연결할 수 있는 게임기다. 이용자는 바(bar) 형태의 센서와 연동되는 리모컨을 들고 동작을 한다. 그러면 나의 동작이 TV 모니터에 구현된다. 리모컨을 들고 팔을 휘두르면 게임 속 캐릭터가 그 움직임과 동일하게 테니스 라켓이나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식이다. CD로 된 게임 타이틀만 바꾸면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가상현실을 체험하려면 특수한 공간과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다는 편견을 깬 사례다.

승승장구하던 ‘위’는 2010년을 기점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김익재 박사는 “닌텐도 위는 결정적으로 두 가지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첫 번째가 정교하지 못한 컨트롤이다. 위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내 동작에 따라 움직이는 게임 속 캐릭터에 흥미를 느낀다. 그러나 몇 번만 플레이를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센서가 정교한 동작이 아닌 속도로 움직임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를 눈치 채는 순간 가상현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몰입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또 하나는 한정된 콘텐트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은 열린 애플리케이션(앱) 시장의 형태가 큰 몫을 했다. 누구나 운영체제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었다. 매일 새로운 콘텐트가 앱 시장에 쏟아졌다. 이와 달리 위의 소프트웨어는 닌텐도와 계약을 맺은 업체만 개발할 수 있다. 당연히 새롭게 추가되는 소프트웨어의 양은 적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닌텐도는 소프트웨어 시장을 독점해 초기에 높은 수익을 올렸지만, 이런 형태의 운영구조가 결국엔 발목을 잡았다.

국내에서는 스크린골프 시장에 주목할 만하다. 지금까지 게임에 적용된 기술은 움직임과 구현에 한 번의 변환을 거쳤다. 예를 들어 내가 손가락으로 특정 버튼(input)을 누르면 가상공간 속 캐릭터가 발차기(output)를 하는 식이다. 스크린골프는 내가 공을 치는 행위 자체가 입력(input)이고, 그 결과가 바로 화면에 나타난다. 거기다 화면 속 공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골프장을 그대로 옮겨왔다. 진짜 필드에서 공을 치는 것과 같은 착각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센서 역시 정교하다. 공이 날아가는 속도와 궤적, 결과가 현실과 유사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기술·콘텐트 한계 드러낸 닌텐도 ‘위(wii)’


▎닌텐도 위(왼쪽)는 가상현실 체험을 일반 가정에서도 할 수 있게 만들었고, 스크린골프는 수준 높은 기술로 실제 시장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스크린골프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많은 제약을 무너뜨렸다. 넓은 골프장을 2평 남짓한 방에 옮겨 공간의 제약을 없앴다. 골프장을 도심 가운데로 옮겨 시간과 비용의 제약을 줄였다. 그러면서도 골프가 주는 게임·운동·타격감 등의 요소는 그대로 살렸다. 기술적 수준을 떠나 경험적으로는 가장 진일보한 형태의 가상현실을 구현했다. 다만, 아직까지도 완벽한 형태는 아니다. 스크린골프를 즐기기 위해서는 업소를 방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시장은 형성했지만 더 폭발적으로 보급이 늘기는 힘들다.

닌텐도 위와 스크린골프의 사례는 가상현실 게임시장의 가능성과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줬다. 닌텐도는 가상현실 체험을 저렴한 가격으로, 그리고 가정에서 구현할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무르익지 않은 기술과 콘텐트의 부재로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다. 스크린골프는 높은 수준의 가상현실 기술을 구현해 시장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하나의 킬러 콘텐트로 많은 이용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 스크린을 일반 가정 혹은 개인까지 끌어올 수 있다면 더 폭발적인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용자들은 닌텐도 위와 스크린골프의 장점이 결합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등장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염보라 책임은 “수많은 게임 개발사가 어느 정도 준비를 마치고 시장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디어는 다양하다. 실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 같은 레이싱 게임, 전쟁터에 와 있는 느낌을 주는 슈팅 게임, 다양한 스포츠와 접목된 게임이 개발 중이다. 하지만 이 소프트웨어를 넣을 하드웨어 시장은 안정되지 않았다. 스마트폰처럼 비교적 획일화된 형태의 장비와 다수의 이용자가 있는 운영체제가 있다면 개발사들도 거기에 맞춰 기하급수적으로 콘텐트를 늘릴 수 있다.

디지털 테마파크 시장 열리나?


▎디지털 콘텐트 제작업체 '스마트한'이 개발한 교육용 증강현실 콘텐트. 종이책에 스마트폰을 대면 관련 내용이 3D 입체 화면으로 나타난다.
게임과 함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큰 축을 이루는 영화산업에서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등장할 수 있다. 이미 화면을 입체로 표현하는 3차원(D) 기술이 보편화됐다. 최근에는 의자를 움직이거나 향기·물 등을 이용해 촉각까지 자극하는 4D 영화까지 등장했다. 전자통신연구원 최진성 부장은 “조금 더 나아가서는 영화관과 테마파크가 결합하는 형태(디지털 테마파크)로 발전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실존하는 놀이기구를 가상의 공간으로 옮겨오는 것이다. 영화관 형태로 된 좌석에 앉아서 실제 롤러코스터나 범퍼카 등을 타는 경험을 상상할 수 있다. 동물원 사파리나 패러글라이딩을 가상의 공간에서 즐길 수도 있다. 미국 유니버설스튜디오나 디즈니랜드도 이런 류의 놀이기구가 있다. 하지만 아직은 넓은 공간이 필요한 형태다. 가상현실 기술이 발전한다면 도심 속에서도 이런 장치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운영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훨씬 더 경제적이다. 기본 장치만 깔고 소프트웨어만 업그레이드하면 영화관처럼 운영할 수 있다. 이용객들은 놀이공원이 있는 곳까지 멀리 이동하지 않고 도심에서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실제 국내에서 디지털 테마파크 빌딩 건설을 희망하는 업체가 있으며 실제 공사에 들어간 곳도 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도 관련 사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최진성 부장의 설명이다.

대중에게 잘 공개되진 않았지만 가상현실과 관련해 가장 높은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분야는 국방산업이다. 가상현실이 대중에 소개되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중이 소비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격이 떨어질 시간이 필요해서다. 국방은 이야기가 다르다. 전투기·탱크·잠수함 등 첨단 군사장비의 가격은 수조원에 달한다. 훈련을 위해 이를 조작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훈련을 위한 가상현실 시뮬레이터가 일찌감치 도입됐다. 현재 가상현실 게임에 적용된 기술의 출발점은 대부분 군사기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방 분야에서 가상현실 시장은 더욱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만큼 안전 때문에라도 필연적으로 가상현실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진보한다면 군인은 가상현실 속에서 무선으로 전투기와 탱크 등을 조작하고 실제론 포탄만 오가는 전쟁이 펼쳐질 수도 있다. 강원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상품전략팀장은 “앞으로 예비군 훈련도 일반 가정에서 가상현실 기기를 통해 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얼마 전 예비군 훈련장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고가 일어났던 점을 고려하면 완전히 불가능한 시나리오도 아니다.

가상현실은 교육산업에서도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1990년대 수백만원 하는 PC가 폭발적으로 보급됐다. PC의 주 사용자인 10대는 주로 게임을 했다. 그럼에도 부모는 아이에게 PC를 사줬다. ‘최신 기계가 아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 그랬다. 최신 기술을 탑재한 기기의 주 사용자는 10~20대다. 하지만 그 기계를 살 수 있는 구매력을 갖춘 세대는 30~50대다. 아이에게 100만원 전후의 게임기를 사주는 부모는 많지 않다. 그 기계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다양한 시도 역시 이뤄지고 있다. 과거의 교육 콘텐트가 텍스트와 이미지 위주였다면, 가상현실 기술을 담은 콘텐트는 오감을 자극한다. 동물을 설명하면서 동영상·소리·냄새·촉감을 동원해 사실감 넘치는 자료를 만든다. 텍스트로 배운 도형 수학공식을 입체 그래픽을 통해 눈으로 보고 이해할 수도 있다. 영어문장을 익히면 친근한 만화 속 캐릭터가 홀로그램으로 등장해 영어로 대화를 나눠볼 수도 있다. 실제로 개발 중인 교육 콘텐트의 예다.

어설픈 기술은 되려 몰입도 떨어뜨려

가상현실은 상상하는 모든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파급력을 지녔다. 한 번 개발된 기술은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적용할 수 있다. 국방의 목적으로 개발된 사격 시뮬레이터가 슈팅 게임에 적용된다. 슈팅 게임을 이용한 낱말 맞추기 형식의 교육 콘텐트로도 변환할 수 있다. 상상력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낯선 곳에 여행을 갔을 때 스마트폰의 홀로그램이 입체 지도를 보여준다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 처음 가는 식당의 메뉴판에 실제 음식 모습을 담은 홀로그램이 뜨고 향기까지 전달된다면 메뉴 선택이 훨씬 쉬울 터다. 아니면 아예 여행을 가지 않고 현지의 느낌을 맛보는 것도 가능하다. 에펠탑 꼭대기에 올라간 사람의 시각에서 360도 입체 영상을 찍어 특수 기기로 보면 에펠탑에 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이 기술을 고스란히 야구장으로 옮겨 온다면? 관중석에 앉은 시각에서 야구경기를 관람하고 현장의 소리까지 그대로 듣는 콘텐트가 탄생하게 된다. 열거한 사례 중, 메뉴판과 에펠탑 관광 콘텐트는 실제로 존재하는 아이템이다.

물론 극복할 문제도 많다. 정부 산하의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대중의 관심이나 대기업의 움직임은 두드러지는데, 막상 물밑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기업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직 가능성만 있고 뚜렷한 형태가 보이지 않아 작은 기업이 나서기에는 부담이 큰 시장이라는 지적이다.

기술적으로도 더 발전해야 한다. 김익재 박사는 “어설픈 기술은 오히려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역효과가 난다”고 지적했다. 많은 사람이 2D로 구현되는 스마트폰 앱 게임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느낀다. 여기에 추가되는 가상현실은 더 박진감 넘치고 사실적인 느낌이 나도록 도와야 한다. 가상현실 기술에만 몰두한 나머지 게임의 재미가 떨어지거나, 교육적 요소가 퇴색된다면 유명무실한 기술이 될 수 있다.

사회적인 합의도 필요하다. 가상현실 기술이 지향하는 최종 목표는 결국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 역시 이런 요소를 강조한다. 가상현실이 주는 감각적 쾌락에 매몰돼 돈을 쓰도록 만드는 게 기업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현실의 삶에 충실하지 않게 된다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인터넷에서 제2의 삶을 살아라’는 게임 ‘세컨드 라이프’가 대표 사례다. 척박한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 또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게임이란 호응을 얻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긍정적 에너지를 현실의 삶으로 가져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현란하게 치장된 세컨드 라이프 속 캐릭터의 삶을 살고, 무기력한 현실에 떨어지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여러 논의와 가능성을 뒤로하고 가상현실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어떤 요리를 만들지에 대한 아이디어는 많다. 멋진 그릇만 나온다면 근사한 식탁이 차려질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에 이은 또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열리고 있다.

1290호 (2015.06.22)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