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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김훈 <칼의 노래>의 ‘파레토 법칙’ 

소수가 전체를 이끌게 마련 ... 메르스 사태에서 리더의 중요성 재인식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6월 14일 오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동호흡기증후군 (MERS·메르스) 선별진료소와 격리병동을 방문해 의료진을 격려했다. 그러나 메르스가 갈수록 확산되는 이면에는 ‘컨트럴 타워’가 없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반만년 한반도 역사에서 최고의 리더를 찾을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이순신 장군이다. 이순신이 빛나는 것은 임진왜란 당시 싸우면 이기는 혁혁한 전과 때문만은 아니다. 삼도수군통제사라는 높은 자리에 올랐다 무고를 당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기적 같이 일어선 끈기와 항상 흐트러짐 없었던 바른 몸가짐,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꼿꼿함은 모든 시대를 걸쳐 필요한 리더십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시대의 리더, 이순신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담고 있다. 2001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기자 김훈을 소설가로 만든 작품이다. 간결한 문체, 날카로운 심리묘사는 기존 한국 문학에서 접하기 어려운 글쓰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배경은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하는 정유년(1597년)부터 세상을 떠난 무술년(1598년)까지 2년간의 이야기다. 이순신의 나이 쉰 셋과 쉰 넷 때다. 두 번의 걸출한 전투가 있다. 하나가 12척의 배로 133척의 배를 물리친, 세계 해전사상 유례없는 승리를 거둔 명량대첩이다. 또 하나는 일본으로 철수하는 적의 주력을 노량앞바다에서 맞아 싸우다 전사한 노량해전이다. 노량해전에서는 적선 200여척을 깨부순다.

80대 20의 법칙으로 유명

선조는 이순신이 두렵다. 임진왜란의 영웅으로 백성들의 추앙을 받는 이순신은 이미 신하의 위치를 넘어선 것 같다. 그 두려움은 왜장 가토 기요마사를 칠 것을 주문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현장의 판단은 달랐다. 겨울철 높은 파도를 뚫고 적의 진지가 잘 구축된 부산포로 출격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았다. 멀리 떨어진 조정에서 보내준 정보는 불확실했다. 오너들은 종종 자신의 요구를 거부한 임원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경질’이다. 원균의 조선수군이 칠전량 앞바다에서 전멸당하면서 이순신은 기적적으로 복원된다. 선대부터 꾸려온 그룹이 망할 지경에 이르자 오너가 스타 CEO를 다시 채용한 셈이다. 하지만 주리를 몇 번이나 틀린 이순신은 안다. 전쟁이 끝나면 자신은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이때부터 이순신의 바람은 하나다. 잘 죽는 것이다. 어줍잖게 살아남아 선조의 손에 죽을 수는 없다. 전쟁에서 ‘자연사’하듯 칼로 베이기를 이순신은 바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투에서 이순신은 수많은 죽음을 생각한다. 아들 면과 자신을 따랐던 여종 여진, 그리고 수많은 조선 백성과 심지어 왜군 포로들의 죽음도 떠오른다. 이순신은 밤마다 그 두려움과 외로움과 고통에 가위 눌리고 코피를 쏟는다. 조선 수군은 절멸했으니 수군을 포기하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선조의 교서에 이순신은 답한다. ‘신의 몸이 아직 살아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임진왜란의 해전은 ‘이순신’이라는 희대의 천재 장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데 이견을 달기 어렵다. 경제학으로 보자면 ‘파레토 법칙’이다. 파레토 법칙이란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80대 20 법칙’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경제학자인 빌프레도 파레토는 소일거리로 자신의 텃밭에 완두콩을 심었다. 어느 날 완두콩 전체의 80%가 20%의 콩깍지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고민해 보니 세상의 많은 일은 소수가 만들어내고 있었다.

예컨대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전체 부의 80%를 가지고 있다. 주가 상승률의 80%는 상위 20% 기업에서 발생한다. 운동선수 상위 20%가 전체 상금의 80%를 차지한다. 즐겨 입는 옷은 자신이 가진 옷의 20%에 불과하다. 내가 전화한 통화량의 80%는 통화한 사람의 20%와 한 것이다. 내가 평생 얻은 소득의 80%는 내 인생의 20% 기간에 번 것이다. 20%의 상위 고객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따지고 보면 세상 많은 것이 편중돼 있다. 신발은 항상 닳는 부분만 닳고, TV도 보는 프로그램이 한정돼 있다. 심지어 야구나 축구도 전체 경기 시간의 일부에서 승부가 갈린다. 그러니 하이라이트 편집이 가능하다.

파레토 법칙은 ‘소수가 전체를 이끈다’로 요약할 수 있다. ‘한명의 천재가 99명을 먹여살릴 수 있다’도 여기서 나왔다. 스티브잡스의 애플, 빌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건강에 주목하거나 이재용 체제에 관심을 갖는 것도 파레토 법칙이다. 한 명의 스타 CEO가 기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시장의 기대는 ‘CEO 주가’로 반영된다. CEO 주가란 믿을만한 CEO가 기업의 수장으로 오면 주가가 뛰고, 그렇지 않으면 떨어지는 현상이다. 잡스가 애플로 복귀했을 때 미국 주식투자들은 애플의 주식에 ‘묻지마’ 베팅했다.

파레토 법칙은 선택과 집중의 논리로 쓰인다. 잘 나가는 제품은 제일 좋은 진열대에 전시돼 더욱 잘 팔렸다. 방송국은 자신들의 대표 ‘킬러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홍보한다. 제과회사도 잘 나가는 한두개 제품을 끊임없이 반복 광고한다. 그게 효율이라고 봤다. 정치적으로는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의 민중을 이끌어가는 것도 당연시됐다. 그런 면에서 엘리트의 책임은 막중했다. 서울에서 평양으로 도피했던 선조가 다시 의주로 떠나려 할 때 군신들은 우려한다. 좌의정 윤두수의 말이다. “온 평양 백성이 전하와 더불어 죽기로 이 성을 지키기를 원하나이다. 민심이 이만하니 성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행차가 또 평양을 떠나시면 일시에 무너질 것입니다.”

선택과 집중의 논리 뒷받침

이순신은 전투에서도 파레토 법칙을 이용한다. 적을 깨부술 땐 적의 중심부터다. 거북선이 돌진해 적의 중심을 깨버리면 적의 대열은 일시에 무너졌다. 우왕좌왕하는 적은 더 이상 숫자가 중요치 않았다. 명량에서 적의 수장인 구루지마의 목을 잘라 밖에 매다는 순간, 싸움은 끝났다.

메르스가 갈수록 확산되는 이면에는 ‘컨트럴 타워’가 없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초기에 대응을 했으면 쉽게 극복할 수 있었던 문제를 우왕좌왕하다 보니 겉잡을 수 없이 문제가 확산됐다는 것이다. 2003년 사스 당시 한국 정부는 고건 총리를 중심으로 발 빠른 대처를 했고, 그 덕에 한국은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사스 모범국’이라는 칭찬까지 받았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컨트럴 타워가 대통령이었는지, 총리였는지, 혹은 질병관리본부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나 ‘리더’가 없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파레토 법칙’을 생각한다면 리더를 선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1291호 (201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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