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Letter] 쥬라기 월드보다 내용 엉성한 추경 편성 

 


영화 역사상 최단 기간인 개봉 13일 만에 전 세계 수익 10억 달러를 돌파한 쥬라기 월드.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3D 효과 덕분에 오랜만에 짜릿하게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다만, 스토리만 놓고 보면 엉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엔딩 장면은 결론을 정해두고 스토리를 끼워 맞췄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9번 방사장에서 뛰어나온 티라노사우르스가 인도미누스렉스를 물리치고 난 뒤 주인공들을 털끝하지 건드리지 않고 떠나거든요.

이런 부자연스런 장면은 정부종합청사에서도 있었습니다. 기획재정부가 ‘2015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정부는 중동호흡기증후군(이하 메르스) 사태로 인한 경기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을 포함해 15조원 이상의 재정을 보강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문제는 긴급 편성된 15조원이란 ‘결론’은 나왔지만, 이 돈을 어느 분야에 어떻게 쓴다는 용도(‘스토리’)는 미지수라는 겁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어디에 돈을 쓸지 정하지도 않고 (추경) 총액을 먼저 정하는 건 일의 순서가 거꾸로 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더구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메르스 사태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추경을 검토하고 있어, 지금 시점에서 (추경) 규모가 정확히 얼마라고 말하기는 힘들다”고 밝혔습니다. 추경이 필요한 곳을 모아보니 15조원이란 금액이 나온 게 아니라 ‘경기가 나쁘니 일단 15조원의 재정 보강을 한다고 발표부터 하고, 어디에 돈을 쓸지 찾아보자’라는 식의 의사결정이 이뤄진 게 아닌지 걱정스러운 대목입니다.

이렇게 될 경우 ‘15조원’이라는 숫자에 묶여 굳이 투입할 필요가 없는 곳에 돈이 흘러갈 수 있습니다. “경기 부양 효과는 ‘어느 부문’에 ‘어느 정도’ 투입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한 경제연구원 박사급 연구위원의 따끔한 지적입니다. 정부의 추경 편성은 영화가 아닙니다. 스토리가 엉성하면 국가 디폴트(국가부도)라는 공룡보다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정말 필요한 항목에,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추경을 편성해야 합니다.

1293호 (2015.07.1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