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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안 통과] 한숨 돌린 이재용, 할 일 많은 삼성물산 

삼성의 미래에 베팅한 외국인과 소액주주 ... “배당 확대 등 주주가치 제고 약속 지켜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사진:중앙포토
#1. 7월 17일 제일모직과의 합병 안건 승인을 위한 삼성물산의 임시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양재동 aT센터. 많은 이들이 몰린 탓에 분위기는 초반부터 어수선했다. 주주명부를 대조하는 절차가 지연돼 주총은 예정보다 30분 늦은 9시 30분에 시작됐다. 주총 의장인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의 인사말이 끝나고, 제1호 의안인 합병계약서 승인안에 대한 심의가 시작되자 주총장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찬성 주주와 반대 주주의 의견 발표 때마다 고성과 박수소리가 오갔고, 이 과정에서 주주 한 명이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11시 시작된 찬반 투표와 개표가 끝난 뒤 오후 1시경 최 사장은 “합병계약서는 원안대로 통과되었음을 선포한다”고 발표했다.

#2.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 통과 소식이 전해지기 약 1시간 전 권덕철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총괄반장은 “즉각대응팀이 삼성서울병원의 부분 폐쇄 해제 시점을 검토 중”이라며 “특별한 사항이 없으면 20일 0시를 기해 해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6월 13일 신규 외래 진료와 응급환자 진료를 일시 중단하는 부분 폐쇄 조치를 내린 지 37일 만이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돼 국내 최고의 병원이란 명성에 금이 간 삼성서울병원으로서는 일단 큰 고비를 넘기게 됐다.

합병-메르스 논란 넘어 리더십 재확인


7월 17일 하루 동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안도의 한숨을 두 번 내쉬었을 터다. 경영권 승계 작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성사된데다, 직접 나서 대국민 사과까지 했던 삼성서울병원 부실 대응 건도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두 사안 모두 꽤 진통을 겪었지만 아버지(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재 속에 승계 작업을 진행 중인 이 부회장은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일단 실익이 크다. 잠시 멈췄던 승계 작업에 다시 속도가 붙게 됐다. 이번 합병을 통해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순환구조에서 일자구조로 바뀐다. 이 부회장에게 가장 중요한 계열사는 당연히 삼성전자다. 그러나 그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0.57%에 불과하다. 다른 계열사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꼭 필요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면 통합 삼성물산이 보유한 지분 4.1%를 흡수하게 된다.

게다가 제일모직은 삼성전자 지분 7.2%를 보유한 삼성생명의 2대 주주(지분 19.4%)다.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 16.5%를 보유할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지금보다 훨씬 커진다는 의미다. 통합 삼성물산을 만들어 사실상의 지주회사 역할을 맡게 하려던 이 부회장의 구상이 어느 정도 완성되는 셈이다. 삼성SDI가 통합 삼성물산에 갖게 될 지분 4.8%를 정리해야 순환출자 고리가 완전하게 끊어지겠지만 이번 합병에 비하면 비교적 수월한 과제다.

동시에 이번 합병은 국내 최대 그룹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역량을 입증한 계기이기도 했다. 이번 합병을 놓고 엘리엇과 벌인 전쟁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경영권 방어수단이 부족한 한국에서 국내 기업은 외국 투기 자본에 경영권이 흔들리는 경험을 수차례 해왔다. 이번 합병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삼성그룹 최고위 경영진이 총동원됐고, 삼성물산 임직원은 소액주주를 일일이 찾아 다니며 각개전투를 벌였다. 그럼에도 막판까지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에 실패한 상황에서 이번 합병마저 무산됐다면 이 부회장이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을 게 분명하다.

메르스 관련 사과를 통해 얻은 이미지 개선 효과도 크다. 지난 5월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이 맡고 있던 삼성생명공익재단(삼성서울병원 운영 주체)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돼 그룹 승계를 위한 상징적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이번 사과는 이 상징적 그룹 리더로서의 첫 데뷔 무대였다. 그로선 신중한 선택이었겠지만 삼성그룹에 집중됐던 메르스 책임론은 이 부회장이 고개를 숙인 6월 23일 이후 차츰 사그라졌다. 사과 이후 여론 조사(한국갤럽)에서 ‘이 부회장의 사과를 좋게 본다’는 입장이 응답자의 63%에 달한 것이 그 증거다. 정면돌파 작전이 먹힌 셈이다.

경영권 승계의 9부 능선을 넘고, 리더로서의 입지도 탄탄히 닦았지만 과제도 분명하다. 지배구조 개편에 따라 통합 삼성물산은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된다.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에 흡수되는 모양인데도 통합 회사명을 삼성물산으로 하기로 한 것은 삼성의 역사와 정체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 회사의 실적이 그룹의 미래를 판단하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합병과 함께 삼성물산은 매출액 34조원 규모의 거대 회사가 된다. 삼성전자에 이어 그룹 내 자산·매출 규모 2위 계열사다. 사업 분야도 크게 넓어져 건설·상사·패션·리조트·식품 등을 포괄한다. 이날 삼성 측은 통합 삼성물산의 매출을 2020년까지 60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려면 미래 성장동력으로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바이오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내야 한다. 이번 합병안 표결에서 상당수의 소액 주주와 외국인이 예상과 달리 삼성의 편에 선 이유도 이런 ‘삼성의 미래’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삼성에 대한 지지로 오해 말아야


삼성물산을 통해 이 부회장이 지금까지의 삼성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점도 명확해졌다. 삼성은 이번 엘리엇발 합병 반대를 삼성에 대한 투기 자본의 공격으로만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여론전 과정에서 ‘애국심’이란 수단까지 써가며 합병안 통과를 이끌어냈지만 이를 삼성에 대한 완전한 지지로 해석하긴 어렵다. 기저에 깔린 삼성과 재벌에 대한 거부감을 읽어야 한다. 과거에 비해 정도 경영, 주주가치 제고, 소액주주 권리 강화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제는 대기업도 이에 대한 사회적 해답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란 뜻이다.

이미 삼성물산은 약속을 했다. 7월 13일 삼성물산은 합병 뒤 삼성물산에 외부 전문가 3명을 포함한 6명으로 구성된 거버넌스위원회가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특수관계인 거래나 인수·합병(M&A) 등 주주 권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심의하는 기구다. 정기적으로 주주 간담회를 열고, 주주 소통 확대와 기업 시민의 역할 강화를 골자로 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위원회 운영안도 내놨다. 17일 주총이 끝난 후 최치훈 사장 등 양사 CEO 4인은 공동 성명을 통해 “약속한 주주친화 정책을 차질 없이 시행해 나가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경영과 사회공헌에도 더 애를 쓰겠다”고 밝혔다.

-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ins.com

1295호 (201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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