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삼성의 고위 임원이 일본 유명 기업에서 근무 중이던 한국인 엔지니어를 은밀히 만났습니다.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인재를 특별히 모셔오기 위해서입니다. 연봉이나 각종 복지혜택를 제안했답니다. 하지만 일본을 넘어 글로벌 업계에서도 충분히 잘나가던 촉망받는 엔지니어는 한국으로 돌아오길 머뭇거렸습니다.

삼성의 임원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던졌습니다. “삼성은 이제 보통 회사가 아닙니다. 나라를 위한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더 많은 돈을 벌고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것보다 국부를 키워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애국심 어린 말입니다. 세계 무대를 누비려던 한 엔지니어의 마음은 이 대목에서 크게 흔들렸습니다.

지난 7월 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제일모직과의 합병안이 통과됐습니다. 소액주주의 한 표가 아쉬웠던 삼성물산은 ‘애국심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먹튀자본’으로 규정하고 ‘나라를 위한 한 표를 위임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사진 아래 ‘투자의 목적은 수익을 올리는 것, 하지만 수익을 위한 투자가 국익을 해친다면?’이란 광고카피까지 동원했습니다. ‘몇 푼 벌자고 나라를 팔아먹을 수야 없지.’ 한국인 특유의 애국심이 발휘됐습니다. 소액주주들은 엘리엇이 주장한 현물배당·중간배당 등 달콤한 이야기마저 듣지 않았습니다. 엘리엇도 2002년 월드컵 당시 상암경기장 앞에서 찍은 폴 싱어 회장의 사진까지 공개하며 애국심에 맞불을 놨습니다.

결국 ‘삼성=한국=국익’이라는 도식 아래 국적이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기업이란 법인에 국적이란 없습니다. 언제든 더 유리한 기업 환경이 있다면 국경을 넘어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외국에 나간 삼성은 ‘우리는 한국 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기업’이라고 말합니다. 외국인이 본 삼성은 ‘한국계 먹튀자본’일 수 있거든요.

삼성은 대개 아쉬울 때 애국심에 호소해왔습니다. 그리고 국민(주주)은 그럴 때마다 삼성이 본사를 다른 나라로 옮기지 않을지 불안해 하며 애국심을 발휘했습니다. 이젠 삼성이 국민의 애국심에 답할 차례입니다. 참, 그 엔지니어요? 연기처럼 애국심이 사라지고 난 뒤, 미국으로 이민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답니다.

- 박상주 기자 park.sangjoo@joins.com

1296호 (201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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