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기업가정신에 대한 세 가지 오해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생산적 기업가정신은 개인의 발전과 국민경제의 발전을 견인하는 원동력이다. 우리보다 앞서 성장 한계에 봉착하고 청년실업에 시달리던 유럽에서 기업가정신을 해법으로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럽위원회는 2000년부터 회원국의 기업가정신 실태를 조사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2012년에는 ‘기업가정신 2020 실행계획(Entrepreneurship 2020 Action Plan)’까지 만들었다. 기업가정신의 재점화 없이는 정부가 아무리 빚을 내서 재정지출을 하고, 민간 투자를 아무리 독려해도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기업가정신의 의미와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가 많지 않다. 말하는 이마다 생각이 다르고 오해도 많다. 두산백과사전을 보면 기업가정신을 ‘기업의 본질인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의 수행을 위해 기업가가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자세나 정신’으로 풀이하고 있다. 기업가정신은 기업가(起業家, entrepreneur)를 회사를 소유, 경영하는 기업인(企業人)과 같은 말로 본 것이다. 그러나 기업가(起業家)는 기업인(企業人)과 동의어가 아니다. 이윤기회를 기민하게 포착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실천에 나서는 사람, 바로 그가 기업가이다. 기업가는 직업이 아니다. 종업원도 혁신적 아이디어로 새로운 상품과 시장을 창출하면 그 또한 사내 기업가(intrapreneur)다. 따라서 기업가정신을 벤처 창업과 같은 창업가 정신과 동일시하는 것도 잘못된 해석이다.

주변에서 접하는 또 다른 오해는 기업가정신은 많으면 좋다고 보는 경향이다. 기업가적 활동은 기업가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는 행위다.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한 일에 기업가정신을 발휘하기 때문에 모든 기업가적 활동이 꼭 사회적으로 바람직할 수는 없다. 예컨대 비리와 부패·유착을 통해 사적 이익을 챙기는 것도 기능적으로는 기업가정신이다. 각종 규제를 만들어 정치권, 규제관료, 이익집단이 규합해서 이익을 챙기는 지대추구 행위도 기업가정신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의 경제학자 윌리암 보몰은 기업가정신이 반드시 생산적인 것은 아니며, 때로는 비생산적이고 심지어는 파괴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돌아보면 지금 우리나라 기업가정신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양적으로 그렇다는 말일까, 아니면 예전에는 생산적 기업가정신이 우세했는데 지금은 비생산적 또는 파괴적 기업가 정신이 범람한다는 뜻일까? 국제투명성기구에서 평가한 한국의 부패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로 하위권이다. 이것을 보면, 후자의 관점이 지금의 상황에 더 맞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듯하다.

세 번째 오해는 기업가정신을 개인의 성향과 역량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말이 기업가정신이니까 ‘정신’에 관한 것이려니 지레 짐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가정신은 ‘실천’의 문제다. 피터드러커가 기업가의 역할은 이윤의 극대화보다는 기회의 극대화이며 기업가정신은 실천임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천의 측면에서 기업가적 활동은 개인의 소양과 태도보다는 그 나라의 법령과 정책·문화·가치관과 같은 제도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우리도 경제회생을 위해 기업가정신을 되살리겠다면, 국민 개개인의 소양과 태도를 논하기에 앞서 나라의 제도와 정책에 문제가 없는지 먼저 살피고 고쳐야 할 것이다.

-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298호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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