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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호 KAIST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장] 인간형 로봇 개발은 로봇 산업화 디딤돌 

관련 파생기술 산업계에서 즉시 활용 가능 ... 기초 연구의 상업적 성과 논의는 어불성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털어놓고 이야기 해보자. 우리나라에서 대학 연구팀이 정부 지원을 받아 기술을 개발했다. 그걸로 직접 벤처기업을 창업했고, 여기서 만든 제품은 개당 5억원선에 팔린다. 수십명의 고용창출도 했다. 이런 성공 사례가 국내에 도대체 몇 개나 되겠나?” 최근 화제를 불러 모은 우리나라 로봇 연구팀이 있다. 바로 KAIST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휴보센터)다. 휴보센터는 연구실 내에서 창업비용을 모아 로봇전문기업 ‘레인보우’를 설립했다. 그리고 회사와 함께 인간형 로봇 ‘DRC휴보Ⅱ’를 개발해 지난 6월 미국에서 개최된 ‘다르파 로봇 챌린지(DRC)’ 대회 1위를 차지했다. 200만 달러(약 22억원)의 상금을 거머쥔 것은 물론, 한국 로봇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췄다는 사실 역시 입증했다. 경쟁 상대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일본산업기술연구소(AIST), 미국방산업체 록히드마틴 등이었다. 이만한 대회에서 우리나라 로봇이 1위를 한 것이다.

최근 오 교수에게 미국·유럽 등 해외 연구기관으로부터 공동 연구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방송 출연 요청도 부쩍 늘었다. 일부에선 사람처럼 두 발로 걷는 ‘인간형 로봇’은 로봇 기술 발전을 위한 노력일 뿐, 산업적 가치는 거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KAIST에서 만난 오교수는 “기초 연구의 상업적 성과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NASA·록히드마틴 등 물리쳐

오 교수는 로봇 기술에 관한한 항상 자신에 찬 모습이다. 말끝에선 한국의 인간형 로봇 기술을 주도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는 “일본이나 미국 등 어느 나라 사람을 만나도 한국의 인간형 로봇 기술도 대단하다는 평가를 듣곤 한다”며 “이런 평가가 뭘 보고 나오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그의 말은 일견 타당하다. 그가 개발한 로봇 ‘휴보’ 시리즈는 11년 전인 2004년 처음 개발돼 꾸준히 성능을 높여왔다. 휴보는 해외에서 더 인기가 있다. 대당 가격이 5억원에 가깝지만 선뜻 구입해 간다. 미국의 대학과 연구소, 정보통신(IT) 기업, 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 연구기관 등에서 앞다퉈 구입했다. 로봇의 몸체를 사서 각종 제어프로그램을 바꿔 넣어가며 운동능력을 실험하는 ‘플랫폼’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이런 로봇은 일본의 HRP, 미국의 아틀라스 등 세계적으로도 몇 종류 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간형 로봇으로 일본의 ‘아시모’를 꼽는다. 하지만 혼다자동차가 독점 개발하고 있어 판매가 금지돼 있다. 오 교수는 ‘로봇 수준은 국력에 비례한다’는 지론도 내놨다. 로봇 기술력, 바꿔 말해서 뛰어난 기계 제어기술을 가진 나라가 세계적으로도 강한 힘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미국이 전반적으로 가장 앞섰고 일본과 유럽이 비슷한 수준”이라며 “그 다음으로 우리나라 정도를 꼽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고성능 인간형 로봇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몇 개 되지 않는다. 미국·일본·한국·독일·이탈리아 정도다. 중국은 아직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오 교수는 말했다.

중국은 다양한 로봇을 개발하면서 ‘인간형’이라는 간판을 내 걸길 좋아하지만 기술력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몇 해 전엔 탁구를 치는 로봇 ‘우’와 ‘쿵’을 개발해 발표했다. 걷지 못하고 두 팔만 움직이지만 외형은 인간형으로 꾸며 기술력이 뛰어난 것처럼 포장한 경우다. 반대로 미국은 아틀라스, 일본은 아시모, 이탈리아는 워크맨 등 자랑할 만한 인간형 로봇이 존재한다. 제각기 특성이 있지만 모두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오 교수는 6월에 열린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휴보가 세계 최고의 인간형 로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오 교수는 “우리도 미국·일본 등 로봇 선진국과 겨룰 수 있는 로봇 플랫폼을 갖췄다는 뜻”이라며 “로봇 분야에서 원천기술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 성과가 하나씩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형 로봇 기술은 공학기술로 만들지만 사실 기초 과학에 가깝습니다. 로봇으로 뭘 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모든 기술력을 동원해 실험하는 자리죠. 이 로봇 연구를 놓고 ‘상업성이 없다’고 평가하는 건 사실 넌센스라고 봐요. 꾸준한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한 거죠.”

오 교수팀도 십수년 이상 꾸준히 로봇을 개발해왔기에 이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사실 국내에는 휴머노이드 프로젝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서 “2004년부터 7년간 평균 5억원을 여러 가지 명목으로 지원받았고, 실험실 창업을 통해 수익을 내서 비용을 충당해 여기까지 독자적으로 끌고 온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로봇대회 출전 등을 위해선 정부의 투자를 일부 받기도 했다. 지난 6월 대회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3개 팀에 35억원을 지원했고 팀 카이스트가 그중 13억 5000만 원을 받았다.

그는 인간형 로봇 개발에 꾸준히 투자할수록 산업 발전에 영향을 미칠 각종 기술도 저절로 생겨날 거라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실제로 휴보 개발 과정에서 얻은 기술력을 응용해 여러가지 발명품을 개발한 전례가 있다. 가수 김장훈씨의 로봇 무대 ‘스튜어트플랫폼’의 제어기술도, 현재 한국천문연구원이 운영하고 있는 ‘광학 우주물체 추적시스템’도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오 교수는 “인간형 로봇을 개발하면서 우리 연구팀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이 적지 않다”고 자랑했다. 인간형 로봇 기술이 로봇 산업화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는 포석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오 교수는 기계장치를 실시간으로 조종할 수 있는 ‘제노마이’ 로봇을 비롯한 각종 자동화 장치 제어를 위해 리눅스 운영체제 위에 얹어 사용하는 운영환경 포도(PODO) 시스템 등을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그는 또 “독자적인 고출력모터 제어기술, 힘감지 및 제어(포스토크센서) 기술, 자세 안정화 기술, 전력운영기술 등도 모두 휴보팀의 독자적인 연구성과가 숨어있다”면서 “모두 산업계에 가져다 놓으면 즉시 응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사람과 간단한 상호작용 가능한 로봇 각광 받을 듯

물론 이런 기술은 꼭 인간형 로봇을 개발하지 않고도 별도로 연구가 가능하다. 다만, 인간형 로봇을 꾸준히 개발하면서 얻을 수 있는 파급효과가 투자한 자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오 교수는 기초 기술의 발전과 산업화 성과를 구분해서 생각해 줄 것을 요구했다. “아직 인간형 로봇이 실용화 수준에 도달할 거라고 장담하긴 무리가 있습니다. 로봇이 문고리 하나 비틀어 열고, 밸브 하나 잠그는데 5분, 10분씩 걸려요. 가정에서 누가 몇억원씩 주고 이런 로봇을 쓰겠습니까? 하지만 방사능이 가득 찬 재난현장 복구, 우주탐사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이런 로봇이라도 개발하고 투입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물론 이 기술의 파급효과는 덤이지요.”

그는 로봇이 발전할 것은 분명하지만 앞으로 5년 안에 어떤 로봇이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소로봇처럼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단순한 로봇이 먼저 각광받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다. 오 교수는 마지막으로 “최근 인간형 로봇이 주목받고 있지만, 제약산업으로 치면 치료제 후보물질을 발굴한 것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10년, 20년의 시간을 갖고 동물실험과 임상연구를 계속한다면 어떤 현장에서도 쓸 수 있는 첨단 재난, 구조로봇이 상업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1298호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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