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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의 보석 필리핀] 엘도라도 아니지만 기회는 있다 

교민 상대 식료품점·식당 시대 저물어 ... 아이디어와 창업 비전 있어야 


천혜의 환경을 자랑하는 필리핀은 제 2의 인생을 설계하기에 제격인 나라다. 실제로 1990~2000년대 낮은 물가와 높은 경제성장률 덕에 많은 이민자가 성공을 거뒀다. 요즘은 좀 다르다. 2000년대 들어 인건비와 물가가 동반 상승하는 바람에 새로 터전을 닦기 어려워졌다. 또 한국인 이민자가 빠른 속도로 늘면서 경쟁도 치열해졌다. 이제는 근면성과 반짝이는 아이디어 없이는 새로운 스타팅포인트가 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필리핀의 이민 조건도 꽤 까다롭다. 투자이민(4만 달러 이상, 현지인 10명 이상 고용)이라고 하더라도 이민자 수를 1년에 5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배우자가 필리핀 사람인 경우에도 배우자는 영주자격을 1년으로 제한한다. 은퇴 비자는 만 35 세 이상이면 본인을 포함해 동반 2명까지 신청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은퇴 비자를 받으면 필리핀에서 무제한 체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복수 출입국까지 허용된다. 은퇴 비자는 예치금 사용 가능 여부에 따라 클래식과 스마일로 나뉜다. 클래식은 5만 달러의 예치금이 필요하며, 투자 목적으로 인출해 사용할 수 있다. 스마일의 예치금은 2만 달러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데 비해 인출해 사용할 수는 없다.

프렌차이즈 등 현지인 대상 사업 유망


이민을 떠난다고 다가 아니다. 현지에서 자리를 잡는 게 중요하다. 한국인 이민자가 필리핀 현지 기업에 취업해 직장에 다니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한국인 상대의 식료품점·식당·여행사·레저·스포츠숍 등을 운영한다. 적게는 1억원에서 많게는 3억원 정도의 자본금이 필요한 사업이다. 수입은 가게 규모나 입지에 따라 다르지만 매달 생활비에서 조금의 여윳돈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업종별 전망은 다소 갈리지만, 대부분은 앞으로 성장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1990년대 이민자 증가에 발맞춰 이들 가게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바람에 경쟁이 치열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수익이 발생하지 않아 권리금을 받고 파는 경우도 하나 둘 생기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분식·카페 등 프렌차이즈 사업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30~40대 젊은 이민자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해, 현지 교민은 물론 필리핀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마닐라 최대 쇼핑몰인 SM몰에 입점한 분식집 ‘미스터 김밥’이다. 최근에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 누워서 쉴 수 있는 커피숍도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필리핀은 날씨가 덥고 스콜이 잦은데다, 공원 등 여가 인프라가 발달해 있지 않아 대형 쇼핑몰은 항상 인산인해. 필리핀 사람이 쇼핑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한국이 앞서는 게임·문화 등 취미·여가 활동과 관련한 사업 전망이 밝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유희석 YHS유학컨설팅 대표는 “필리핀은 지난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경제성장률이 높을 정도로 경기가 활력이 넘친다”며 “젊은 나이에 필리핀에 없는 아이템을 가져간다면 그만큼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자금력이 있다면 어학원·병원·스파·마사지숍·자동차 렌트업 등 비교적 경쟁이 덜한 업종에 도전할 수 있다. 적게는 3억~5억원, 많게는 10억원 이상의 자본금이 필요한 사업들이다. 어학원의 경우 미국·영국·호주 등에 비해 낮은 비용으로 영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늘면서 유망한 아이템으로 꼽힌다. SMEAG 등 필리핀 내 대형 어학원 상당수가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학생이 줄고, 경쟁은 치열해졌지만, 지난 몇 년 새 중국·일본인 학생 수가 급증하고 있어 이를 공략한다면 아직 가능성 있다는 평가다. 통조림 등을 생산하는 수산 유통업이나 배를 이용한 해운업도 한국인들이 많이 뛰어드는 업종이다. 몇 년 전부터 필리핀 내 도로·항만 등 사회기반시설(SOC) 공사가 늘고, 신축 건물도 늘고 있어 이와 관련한 경험이 있다면 부대 사업도 노려볼 만하다. 제조업 등과 관련한 사업을 하기에는 산업이 발전한 마닐라가 유리하고, 어학원이나 유통, 레저와 관련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치안이 상대적으로 좋은 세부가 적합하다는 평가다. 박병대 필리핀 한인회 수석부회장은 “과거에는 1차원적인 비즈니스를 한데 비해, 지금은 깊이 있는 쪽으로 많이 바뀌었다”며 “철저한 준비와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필리핀은 외국인에게는 법인 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에, 사업을 하려면 현지인과 지분을 나눠 출자해야 한다. 또 관료사회의 부패가 아직 만연해 촌지 등의 관습이 남아있다는 점도 참고해야 한다.

필리핀에서 소요되는 생활비는 매달 250만~300만원(4인 가족 기준) 정도로 한국의 4인 가족 최저생계비(166만8000원)보다 30%이상 비싸다. 주거비와 자녀 교육비, 수도·광열비·식비·교통비·차량 유지비 등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필리핀의 기본 물가를 감안하면 높은 수준이지만 한국보다 훨씬 고급스런 생활을 한다. 일반적으로 필리핀 교민들은 치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장한 사설 경비원이 지키는 단독 빌라촌에 모여 산다. 대개 2층 이상 규모에 수영장이 달린 고급 주택으로, 연면적은 330㎡ 이상이다. 필리핀은 개인이 땅과 주택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주택에 거주하려면 임대료를 매달 지불해야 한다. 임대료는 집의 크기와 지역, 위치 등에 따라 50만원에서 400여 만원까지 다양하다. 또 가정부 1명당 인건비는 월 15만원 안팎. 여기에 자녀 교육비로도 월 30만~100만원 정도 든다. 현지 한국인 학생들은 주로 국제학교에 다닌다. 최상급 학교의 경우 연 등록금이 1000만원, 싼 곳은 연 300만원 정도다. 가격은 시설과 안전, 미국·영국인 선생의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

불안한 치안이 아킬레스건

필리핀 이민의 최대 불안 요소는 치안이다. 필리핀은 빈부격차가 큰데다, 총기류의 불법 유통이 많아 돈을 노린 강도·살인 등 강력 범죄가 자주 일어난다. 이에 비해 정부의 방범·치안은 느슨한 편이라 언제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이민자나 관광객의 경우 범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지에서 한국인 사업가가 사망하거나 납치되는 일은 1년에 10건 정도 발생한다. 올해에만 사업가와 유학생 등 5명이 총에 맞아 숨졌고, 납치됐다 풀려난 사례도 2번이나 됐다. 이들 사고는 한국인간 이권다툼에서 비롯된 사례도 있으나, 현지인들이 몸값을 노리거나 우발적으로 저지른 경우도 늘고 있다.

- 김유경 기자 kim.yukyoung@joins.com

1299호 (201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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