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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의 로망 북유럽은 지금] 전문직은 덴마크, 유학생은 스웨덴 노릴 만 

노르웨이는 특수 직종, 가족 초청자로 이민 제한 ... 세금 부담 많아 개인사업 쉽지 않아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공원에서 시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복지국가로 알려진 북유럽 국가로의 이민을 꿈꾸는 사람이 늘고 있다. 외교부의 재외동포 현황에 따르면 북유럽 3국으로 불리는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의 재외동포 수(2013년 기준)는 각각 692명, 538명, 2510명이다. 앞서 조사가 이뤄진 2011년에 비해 노르웨이는 14%, 스웨덴은 22% 늘어난 수치다. 특히 덴마크에 거주하는 한국인 수는 2년 새 약 8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한덴마크대사관 측은 워킹홀리데이나 연구원 자격으로 덴마크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숫자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했다.

북유럽 3국으로 한국인 이민 늘어

덴마크는 전 세계 주요 선진국 가운데 현지 고용주 없이도 취업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현지 취업이 확정되기 전에라도 만 40세 미만 석사학위 이상의 전공자면 비자 접수가 가능해 기술이민을 떠나려는 젊은층에게 각광받고 있다. 현재 덴마크 기술이민에 유리한 분야는 엔지니어, 의사, 치과의사, 연구원, IT·정보통신, 헬스케어 등이다. 직종에 따라 학위 외에도 관련 자격증이나 어학능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박사학위 소지자의 경우에는 전공과 무관하게 이민 신청이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국내 대기업에서 IT 엔지니어로 일하던 이상원(가명·39)씨 역시 기술이민으로 덴마크에 정착한 경우다. 4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 반복되는 야근에, 눈코 뜰새 없는 회사 생활을 하며 어린 자녀와 함께 놀아줄 시간은 꿈도 못 꿨다. “40대 중·후반에 회사를 나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더군요. 어렵게 임원이 된다 해도 가정 생활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해야 하는 인생을 살긴 싫었어요.”

그래서 처음 이민을 생각한 나라는 캐나다와 호주·뉴질랜드 등 이른바 ‘이민 선진국’이었다. 일단 영어점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며 이민 정보를 모았다. 그러던 중 덴마크가 눈에 들어왔다. 영어권 국가는 아니지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기술이민자를 우대하는 이민 정책이 자신에게 적합했다. 임시비자 상태에서도 자녀들 공교육과 어린이집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양육비와 국가의료보험도 지원됐다. 같은 시기 오히려 캐나다와 호주 등의 이민 기준이 까다로워진 것도 계기가 됐다. 4개월가량 거주비자(그린카드)를 받기 위해 혼자 각종 서류를 준비했고, 접수 1년 만에 영주권이 나왔다. 6개월 안에 덴마크에 입국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2013년 초, 이씨는 아내와 어린 두 자녀(당시 6세, 4세)를 데리고 덴마크 코펜하겐에 발을 내딛었다. 첫 2개월은 현지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주거비를 포함해 초기 정착 비용으로 1000만원가량이 들었다. 알아주는 대기업 출신 엔지니어인 그에게도 현지 취업은 녹록하지 않았다. 6개월 간 10번 이상의 면접을 봤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주변 사람들은 “면접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그를 격려했다. 어지간해선 면접 기회조차 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게 교민들의 전언이다. 이씨는 “IT업종의 특성상 영어로 업무를 볼 일이 많아 영어 구사능력이 어느 정도 되면 취업이 가능하다”며 “영어 능력이 뛰어날수록 일자리도 많지만, 일부 기술 업종이 아닌 이상 덴마크어를 하지 못하면 사실상 취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구직활동 6개월 만에 현지 IT업체에 취직한 이씨는 “직장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개인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주당 근무시간만 지키면 출퇴근도 자유롭다. 상하관계가 없는 유연한 직장 문화도 만족도를 높였다. 월급의 약 40%를 세금으로 내지만 이는 각종 복지 혜택과 연금으로 돌아와 아깝지 않다. 특히 회사에서 개인연금의 일부를 지원해줘 이씨가 내는 세금의 15%가량이 개인연금으로 들어간다. 이씨는 “한국에서는 은퇴 후 생활이 늘 걱정이었는데 여기선 그런 걱정이 전혀 안 든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기술·투자이민 어려워


각종 복지에 대한 만족도도 높다. 덴마크에선 시민권이 없더라도 영주권(우리의 주민등록번호 개념의 CPR 번호 발급)만 있으면 국민과 동일한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매달 두 자녀 앞으로 2000크로네(약 31만원)가량의 양육비가 지급된다. 현재 첫째 자녀 유치원비로 한 달에 1000크로네(약 15만원)를 부담하지만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무료다. 각종 범죄율이 낮고, 이민자 출신이 많아 외국인에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도 이씨가 이민생활에 만족하는 이유다. 그는 “주거비와 각종 서비스에 대한 물가가 비싼 편이지만 식료품이나 생필품 등은 한국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며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의사·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직 이민자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만 일단 그린카드를 발급 받고 와서 다른 직종으로 진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면 정착에 큰 어려움이 없는 나라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덴마크와 이웃한 스웨덴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스웨덴 이민청에 따르면 스웨덴으로 이민이 가능한 예는 현지 취업이 확정됐거나 스웨덴인과의 결혼·동거, 혹은 난민 신분일 때만 가능하다. 그 외 기술이민이나 투자이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최근 중동 지역에서 온 난민이 크게 늘며 복지 부담을 느낀 스웨덴 정부는 전에 없던 엄격한 이민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이와 달리 미래의 고급 인력 확보와 선진 교육시스템 확대를 위해 스웨덴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려는 유학생에게는 관대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교민들은 학생·연구원 신분이나 현지 한국 법인으로 취업해 스웨덴에 왔다가 아예 정착하는 우회로를 택하기도 한다.

7년째 스웨덴에 거주하는 정재욱(35)씨는 2008년 학업 때문에 스웨덴을 찾은 이후 지금까지 디자이너로 일하며 살고 있다. 정씨가 석사 과정을 시작하던 2008년까지만 해도 자국민과 마찬가지로 학위를 취득하는 데 학비가 들지 않았다. 다만, 스웨덴 학생들이 학비 외에 생활비까지 국가의 지원을 받는 데 반해 정씨는 그런 혜택을 받을 순 없었다. 학비 부담이 없는 것만으로도 스웨덴 유학은 큰 메리트가 있었다. 그러나 2011년부터 관련 법이 바뀌어 유럽연합(EU) 이외 국가 출신의 유학생은 1년에 3000만~4000만원의 학비를 내야 한다. 이런 변화 탓에 ‘유학→이민 정착’으로 이어지던 과정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게 현지 유학생들의 설명이다. 정씨는 “스웨덴뿐 아니라 유럽 지역 경기가 어렵다 보니 이민제도를 점차 강화하고 있는 분위기”라며 “스웨덴은 내수 시장이 작아 일자리 자체가 적은 탓에 현지인들도 취업이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민자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라고 덧붙였다. 특히 취업 때 대부분 스웨덴어 능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해 추가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기본적으로 외국인이 유학이나 취업 등으로 스웨덴에 거주해도, 4년이 지나야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그 후 또 1~2년이 지나야 시민권 취득이 가능한데, 시민권이 없어도 현지 취업은 가능하지만 자국민에 비해 복지 혜택이 줄어든다. 정씨는 “한국에서 스웨덴을 비롯해 북유럽 이민이 유행처럼 번진다고 하는데 스웨덴의 경우 이민을 오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고 조언했다.

각종 어려움에도 스웨덴은 북유럽 3국 가운데 인구나 경제 규모 면에서 가장 큰 나라다. 한국 기업들의 북유럽 주재 법인 역시 주로 스웨덴에 자리해있다. 이 때문에 북유럽 국가 내에선 이민의 기회 역시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한국내 대기업의 주재원 자격으로 스웨덴에 왔다가 정착한 사업가 김성모(가명·49)씨는 “예전에 비해 줄어들긴 했지만 사업이민은 여전히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직접 사업체를 설립해 이민 자격을 얻는 것으로, 한국에서 약 7000만원(4인 가족 기준)의 재정 요건만 충족하면 일단 요건이 된다. 물론 구체적인 사업계획과 실행준비 과정, 학력, 경력, 어학능력 등이 수반돼야 한다. 사업자에게 높은 세금을 매기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김씨는 “스웨덴의 과중한 세금 탓에 현지인조차 동유럽 등으로 사업체를 옮기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말했다. 북유럽 내에선 가장 큰 규모이긴 해도 스웨덴 인구 역시 970만명에 불과해 내수 시장이 여전히 작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노르웨이는 현재 이민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지금은 가족 초청 이민을 제외하면 방법이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40여년전 노르웨이로 삶의 터전을 옮긴 노용일(64)씨는 당시 노르웨이의 한 선박회사에서 근무한 것이 인연이 됐다. 당시에는 노씨처럼 취업이민으로 북유럽행을 택한 이들이 종종 있었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는 이민법이 강화돼 이젠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가 됐다. 현재는 특수 직종 취업이나 가족 초청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노씨는 “최근 들어 의사나 간호사 등 특수취업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부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유학이나 근무 경험이 있는 노르웨이인과 인연이 닿아 결혼이민을 온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정착을 위해서 노르웨이어 구사는 필수다. 영어만 구사해도 일상생활에선 문제가 없지만 직장을 구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한국과 전혀 다른 자연환경도 변수

노르웨이는 북유럽에서도 보수적인 나라로 통한다. 관계에서 원칙과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1980년대부터 현지에서 개인사업을 해온 노씨조차 “사업하기 쉬운 나라는 아니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민자에 대한 차별은 없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이 높다는 얘기다. 그러나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노르웨이 역시 이민자에게 자국민과 동등한 수준의 복지 혜택을 제공한다. 의료비와 교육비 등이 무료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가족 초청으로 이곳에 와 자영업 등 사업을 하면 일반 회사원보다 높은 세금을 매긴다. 노씨는 “소득에 따라 평균 30%에서 최대 75%까지 부과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임금 수준이 높은 편이지만 살인적인 물가도 고려해야 한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4인 가족이 살 만한 집 월세는 최소 200만원 이상이다. 술과 담배가 특히 비싼데, 담배 한 값에 2만원 수준이다.

노씨는 “외식 비용 역시 비싸고, 대부분 저녁 5시면 퇴근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삶을 살기 때문에 한국처럼 유흥 문화를 즐기는 일은 거의 없다”며 “단란한 가정이 와서 살기엔 좋지만 젊은층이 오기에는 다소 지루하고 우울한 곳이 북유럽”이라고 설명했다. 자연환경이 깨끗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노르웨이지만 길고 어두운 겨울은 이민자로서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난관이다. 일반적으로 10월경부터 해가 짧아져 4월까지 눈이 내리기 일쑤다.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현상도 일어나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 변화도 감수해야 한다.

- 허정연 기자 hur.jungyeon@joins.com

1299호 (201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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