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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실록으로 읽는 사서’] 아무리 성군이라도 독단은 금물 

“감히 왕에게…”는 삼가야 할 말 ... 종국엔 간신만 남아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전통사회에서 지식인들의 필독서였던 사서(四書, 논어·맹자·중용·대학)는 지금도 동아시아의 소중한 고전이자 인문 교양서다. 그러나 원문이 한문인데다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다 보니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이 시리즈는 사서의 내용과 구절이 구체적인 현실, 특히 정치 현장에서 어떻게 읽혔는지를 다룬다. 왕과 신하들이 국가 비전을 논의하고 참된 리더의 자격을 되새기고 올바른 삶의 원칙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사서가 어떤 방향성을 제시했는지 실록을 토대로 살펴본다. 사서가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고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만일 어진 임금이라면 반드시 경들의 말을 따르겠지만, 나는 덕이 없는 임금이니 따르지 않겠다” “정승 1000명이 말한다 해도 들어줄 수 없다” “나를 신하들의 제재를 받는 임금으로 만들어 홀로 결정 하나 내리지 못하게 하는가” “대신의 말도 듣지 않았는데 너희의 말을 들을 것 같은가” “너희들이 나를 위협하려 드는 것인가”….

여기서 퀴즈. 이 말을 한 왕은 누구일까? 폭군으로 악명이 높았던 연산군? 아니면 독선적인 성격이 강했던 태종? 의외지만 정답은 세종이다. 1448년(세종30) 7월 17일, 불당(佛堂) 설치 지시에 대해 신하들의 반대가 빗발치자, 세종은 위와 같은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물론 당시 세종은 시력을 거의 잃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고, 아들 평원대군과 광평대군, 부인 소헌왕후가 연이어 사망하는 등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매우 피폐한 상황이었다. 하여 불교를 통해 종교적 위안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세종 “나를 위협하려 드는가”

하지만 성리학을 국시로 하는 조선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왕이 불당을 짓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불교는 척결해야 할 이단에 불과했다. 영의정 황희를 위시하여 하급 관료, 젊은 유생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 같이 세종의 뜻에 맞선 이유다. 세종 입장에서야 병든 임금의 소원 하나 들어주지 않는 신하들이 각박하게 느껴졌겠지만, 당시로서는 체제질서와 국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런데 세종은 끝내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불당 설치를 강행하고야 만다. 물론 이 문제가 세종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거나, 세종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요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강압적으로 여론을 묵살하고, 자신의 뜻만 고집한 세종의 태도는 분명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집현전 직제학 신석조가 올린 상소는 이를 잘 지적하고 있다.

“일찍이 공자는 정공(定公)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임금 노릇한다고 해서 즐거운 것은 없지만, 오직 아무도 내 말을 거역하지 않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 이가 있는데, 만약 임금의 말이 옳지 못한데도 이를 거역하는 이가 없다면, 이 한마디 말이 결국 나라를 망하게 만들지 않겠습니까?’라 하였고, 자사(子思)는 위후(衛侯)에게 ‘임금이 자신의 말을 스스로 옳게 여기면 신하들 중에 그 잘못된 점을 바로 잡는 이가 없을 것이니, 그 임금의 정치는 갈수록 잘못될 것입니다’라 하였습니다. 예로부터 국가가 잘 다스려지느냐 못하느냐, 흥하느냐 망하느냐의 조짐은 임금이 신하의 간언을 따르느냐 거절하느냐의 여하에 따라 결정되어 왔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중략)…지금 신하들이 간하기를 더욱 간절히 하나, 전하께선 거절하기를 더욱 굳게 하시니, 스스로를 옳게 여기심이 이보다 더 심할 수 없습니다. 크게 그릇된 것을 고집하시어 간언을 물리치심이 이처럼 극도에 이르렀으니 이는 종사의 크나큰 불행입니다.”(세종30.7.20).

여기서 신석조가 인용한 공자의 말은 [논어] ‘자로(子路)’ 편에 나온다. 노나라의 임금 정공이 공자에게 “한마디 말로 나라를 흥하게 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러한 것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말만 가지고 그와 같은 효과를 기약할 수는 없습니다만, 사람들의 말에 ‘임금 노릇하기가 어렵고 신하 노릇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임금 노릇하기가 어려움을 안다면, 이 한마디 말로서 나라를 흥하게 함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공이 다시 “한마디 말로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러한 것이 있습니까?”라 묻자, 공자가 다시 답한다. “말만 가지고 그렇게 될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의 말에 ‘나는 임금 노릇이 즐겁지 않지만, 내가 말을 하면 어기지 않는 것이 즐겁다’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 임금의 말이 선한데 아무도 거역하는 이가 없다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임금의 말이 선하지 못한데도 이를 거역하는 이가 없다면, 바로 이것이 한마디 말이 나라를 잃게 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이 중에서 특히 자주 인용되는 것은 뒷부분인데,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은 단종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임금이 오로지 자기의 말대로만 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이 절대 이를 어기지 못하도록 한다면 아첨하는 무리들은 거짓된 미사여구로 임금의 마음을 어지럽힐 것이니, 정치에 있어 잘못된 점과 인재 등용에서의 실수 등에 대한 비판을 모두 들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빠져도 임금이 알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곧 한마디 말로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단종1.7.7).

그러나 임금으로서는 사람들이 반대하더라도 ‘왕이 돼서 이거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느냐’는 마음을 갖기가 쉽다. ‘감히 왕의 말을 거역하려 하느냐’는 불쾌감도 생겨난다. 그래서 고집을 부리고, 역정을 내며 신하들과 충돌하는 경우가 잦는데 현종 때 박세당은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이를 강력히 비판했다. “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신 지 몇 년이나 지났지만, 전하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는 삼사(三司)의 간언을 대부분 물리치셨지, 겸허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신하들이 모두 충직하지 못해 국가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면 어쩔 도리가 없지만, 단지 신하들이 아뢰는 말이 전하의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것이라면, 전하께선 간언을 막고 스스로를 어질게 여겨 ‘내 말을 사람들이 어기지 않는 것이 즐겁다’는 공자의 경계를 크게 범하고 계신 것입니다. 더욱이 전하께서 매번 노여운 음성으로 신하들의 말을 꺾으시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무릇 일의 가부는 이치에 달려 있을 뿐이지 목소리가 크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서계집).

물론 임금이 “내 말을 거역하지 말라” “내 말에 토를 달지 말라”고 했다 하여 이 말로 인해 바로 나라가 망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고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임금이 과연 좋은 정치를 펼칠 수 있을까?

내 장점이 내 눈을 가린다

무릇 완벽한 사람은 없다.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이라도 그의 생각이 항상 옳고 그의 판단이 무조건 맞는 것은 아니다. 흔히 지위가 높고, 경험과 연륜이 많은 사람은 스스로의 결정에 대해 지나친 확신을 갖기가 쉽다. 하지만 그 지위나 경험, 연륜이 오히려 편견이 되고 선입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 장점이 오히려 내 눈을 가리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늘 주의 깊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실수를 고치고 잘못을 바로잡으며 더 좋은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듣기 싫은 소리라 하여 귀를 닫아버리고, 내 뜻에 거슬린다 해서 역정을 낸다면 그 사람은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게 된다. 그는 점점 더 편협해질 뿐이며, 올바른 길로부터도 멀어지게 될 것이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303호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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