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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 시행해보니 | 공공기관] 10곳 중 4곳 내년 채용 계획 ‘無’ 

정부, 공공기관에 도입 엄포 … 청년 3% 고용룰부터 먼저 지켜야 


▎정부는 연내 공공기관 316곳 전체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계획이지만 반발도 만만찮다. 사진은 올 8월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 관계자들과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모습. / 사진:중앙포토
박근혜 대통령은 8월 6일 대국민 담화에서 “올해 안에 전체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하고 향후 2년간 8000개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간 ‘성역(聖域)’으로 여겨졌던 공공기관(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 공공기관 등)에서도 임금피크제 도입이 진행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9월 4일 기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공공기관은 총 100곳. 도입률은 공기업 70%, 준정부기관 49%, 기타 공공기관 18%다. 정부는 올해까지 316개 전체 공공기관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절감된 재원을 청년 채용 확대 등 새로운 고용 창출에 쓴다는 계획이다. 박 대통령의 담화 내용처럼 2017년까지 8000개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다.

연내 공공기관 전체 임금피크제 도입


이에 한국전력공사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농어촌공사 등 대형 공공기관들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인천국제공항공사·국민연금공단·국민건강보험공단 등 다른 대형 공공기관들도 9월 중 도입할 계획이다. 이번 노사정 합의로 공공기관들의 임금피크제 도입 속도는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는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성과급을 깎고 내년 임금 인상률을 반 토막 내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기재부 관계자는 “임금피크제 도입 확산을 유도하기 위해 공공기관별로 (임금피크제) 도입 시기에 따라 내년 임금 인상률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이 신규 채용에는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현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9월 14일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정부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로 2년간 8000명의 청년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했지만 매년 자연 증가분이 그만큼 되고, 신규 채용도 증가하고 있어 정부가 말하는 청년 일자리 창출 효과는 허구”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그 근거로 이명박 정부 당시 공공기관별로 10~15%의 정원이 감축됐다가 다시 정상화 단계이며, 공공 서비스 확대와 국민 경제 성장으로 최근 전체 공공기관에서 매년 8500명가량의 정원이 증가하고 있는 점을 들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박완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역시 이번 국감에서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9월 9일 기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96곳의 공공기관 중 38.5%인 37곳은 내년에 신입사원을 채용할 수 없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공공기관 3곳 중 1곳이 신입사원을 뽑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이는 공공기관의 정원과 예산을 결정하는 기재부가 내년 이들 37곳의 별도 정원을 ‘0명’으로 정한 데서 기인한다. 정원이 1000명 이상인 인천공항공사는 내년에 단 5명, 기술보증기금은 단 7명을 채용할 수 있어 대대적인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부 홍보가 무색한 지경이다. 익명을 요구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기재부는 공공기관의 비대화를 막아 공공기관을 개혁하겠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정원을 늘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섣부른 정원 확대는 비정규직 등 질이 낮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96개 공공기관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늘릴 수 있는 일자리는 총 1817개로 전체 정원 대비 1.8%에 불과하다”며 “계획한 신규 채용 인원이 5명 이하인 공공기관이 전체의 27%인 26곳에 이른다”고 강조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이 눈에 띄는 청년 고용 확대로 이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9월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이 의뢰해 조사·분석한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 시 청년 일자리 창출 분석’ 자료에서도 국회예산정책처는 ‘정년 연장 효과, 임금피크제를 이미 도입한 기관, 신규 채용 시 드는 간접 노동비용 등을 고려하면 정부가 목표한 만큼의 신규 채용 규모를 달성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전한 바 있다.

다른 문제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한 청년 고용 확대를 추진 중이지만, 공공기관들이 신입 직원 채용에는 소극적인 상황이라 이 또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성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9월 15일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청년 고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청년 고용 촉진 특별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청년 고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공공기관은 22곳 중 절반인 11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레일, 올 들어 단 한 명의 청년 고용도 없어

특별법 제5조 제1항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의 경우 매년 정원의 3% 이상을 청년 미취업자로 고용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LH와 코레일·한국국토정보공사·한국시설안전공단·한국건설관리공사·코레일유통 등 국토부 산하 6개 공공기관은 지난해와 올해 모두 이를 지키지 않았다. 코레일관광개발·코레일로지스·코레일네트웍스·코레일테크·항공안전기술원 등 5곳도 올해 청년 고용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기관으로 추가됐다. 22곳이 채용한 인원도 지난해 1848명에서 올해는 전년 대비 54%가 감소한 841명에 그쳤다. 코레일의 경우는 지난해 494명을 채용했지만 올해는 9월 현재 단 한 명도 채용하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이 지키지 않는 유명무실한 특별법이란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 의원은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행하고 있는 맞은편에서는 공공기관이 청년 고용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엇박자의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며 “특별법 시행에도 공공기관의 청년 채용이 거꾸로 감소하고 있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매번 정부 눈치만 볼 게 아니라 공공기관도 특별법의 입법 취지에 맞도록 청년 채용에 앞장 서면서 스스로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그래야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로 청년 채용을 늘릴 수 있다는 정부 주장도 신뢰를 얻는다.

- 이창균 기자 lee.changkyun@joins.com

1304호 (2015.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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