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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민 기자의 센터링 경제학⑭ 스포츠 베팅 양성화 논란] ‘안전제일’ 주의가 오히려 불법 조장? 

날로 커지는 유럽 스포츠 베팅 시장 … 국내선 “양성화로 구단 지원 늘려야” 주장도 


▎스포츠 베팅 업체가 유니폼 메인스폰서인 EPL의 스토크시티와 웨스트햄. / 사진:뉴시스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를 보면 스포츠 베팅 업체의 이름이 눈에 자주 들어온다. 선수 유니폼과 경기장 광고판에서의 노출이 늘어서다. 2015-2016 시즌 EPL 20개 구단 중 7개(웨스트햄유나이티드·크리스털팰리스·선덜랜드·스토크시티·웨스트브로미치·왓포드·본머스) 구단의 메인 스폰서가 스포츠 베팅 회사다. 전체 중 35%의 선수들이 가슴팍에 도박 업체의 이름을 달고 뛰는 셈이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유럽에선 어느 정도 익숙한 풍경이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은 스포츠 베팅, 특히 축구 관련 베팅 시장이 활발하다. 역사도 깊다. 영국에서 최초로 축구 투표권이 발행된 건 1923년이다. 존 무어스가 리버풀 지역에 베팅 사업체 리틀 우즈 풀스를 설립한 게 기원이다. 이후 1960년대 들어 베팅 사업체 레드브록스가 승·무·패에 따라 배당률이 확정된 고정배당률제를 도입해 인기를 끌면서 스포츠 베팅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다.

100여년 전 시작된 축구 베팅


영국에서 성공한 스포츠 베팅 사업은 주변 국가들로 번져갔다.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인기와 더불어 불법 베팅이 성행하던 스웨덴이 1934년 먼저 최초의 국영 스포츠 베팅 업체를 설립했다. 불법 도박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고, 수익을 얻는다는 취지다. 영국 못지않게 축구에 열정적인 이탈리아도 1946년 스웨덴의 모델을 따라 스포츠 베팅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독일·덴마크·노르웨이·그리스 등지에서 비슷한 국가 독점 형태의 사업을 시작했다.

1980~1990년대 위성 중계 기술이 발전하면서 베팅의 대상은 해외 리그로까지 확장됐다. 여기에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 베팅도 활발해지자 각국의 국가 독점 형태 사업은 조금씩 민간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영국처럼 여러 베팅 사업자가 경쟁 체제를 유지하면서 소비자가 가져가는 배당률을 높이고 다양한 상품을 출시하는 구조가 갖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돈이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하자 유럽의 구단과 베팅 업체는 최근 일종의 윈-윈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구단 입장에서는 짭짤한 수익원이자 새로운 축구팬을 끌어들이는 통로로 스포츠 베팅을 활용한다. 베팅 업체들은 이를 통해 상호를 전 세계로 노출시켜 막대한 광고 효과를 누린다. 또, 수익을 확보한 구단은 선수 영입이나 시설 확보로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덕분에 축구가 인기를 끌면 베팅 수요가 늘어나는 셈이니 베팅 업체로서는 그것만으로도 간접적인 효과를 얻는다.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베팅 관련 규제가 느슨한 영국은 특히 스포츠 베팅산업의 비중이 커지는 추세다. 이번 시즌 EPL에서 베팅 업체를 메인 스폰서로 둔 7개 구단의 스폰서십 금액은 약 2200만 파운드(약 400억원). 전체의 10%다. 구단들은 메인 스폰서 외에도 여러 베팅 업체와 다양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스포츠 베팅 회사가 아예 구단을 소유하는 경우도 있다. 스토크시티의 구단주는 스포츠 베팅 업체 베트365(bet365)다. 자국 업체만 있는 게 아니다. 다른 메인스폰서 업체의 경우 몰타·지브롤터·필리핀·중국 등 영국 밖의 업체들이다. 스포츠 베팅이 전 세계적으로 시장을 넓혀가며 성장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제한 많은 국내 스포츠 베팅


▎충북경찰청이 2월 100억원대 사설토토 사이트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 사진:뉴시스
한국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베팅 업체가 많지 않고 ‘공식적인’ 스포츠 베팅 광고도 접하기 어렵다. 규제가 많아서다. 현재 국내법상 스포츠 베팅 사업은 정부의 인가를 받은 민간 업체 한 곳(현재 케이토토)만 가능하다. 이 외에는 모두 불법이다. 합법 토토는 매출 총액이 제한돼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판매를 중단한다. 또 싱글·라이브 베팅 등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는 사설 토토와 달리 상품 출시가 제한된다. 배당도 짜다. 사설 토토의 배당률은 90%가 넘지만, 정부는 합법 스포츠토토의 환급(배당)률을 50~70%로 정해놨다. 지난해 스포츠토토의 환급률은 58.14%다. 그만큼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돈이 적다는 얘기다. 개인당 구매 한도 역시 10만원이 상한이다. 모두 지나친 사행성 조장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전문가들은 규제가 재미와 매력을 반감시켜 소비자가 불법 시장으로 흘러가게 되는 역효과가 있다고 얘기한다. 이른바 풍선효과다. 실제로 국내 불법 스포츠 베팅 시장 규모는 지난 4년간 135.4% 커졌다. 2013년 국내 불법 스포츠 베팅(사설 토토) 시장은 31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합법 스포츠 베팅 시장의 10배에 달한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합법 스포츠 베팅의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 구매 한도를 높이거나 다양한 게임 방식을 도입하면 소비자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불법 시장으로 가지 않을 거라는 논리다. 다수 업체를 허용해 경쟁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토토 매출 중 149억원 축구단으로


축구계에서도 이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정이 어려운 구단에 도움이 될 수 있어서다. 장지현 SBS스포츠 축구 해설위원은 “규모가 큰 불법 시장의 수요를 합법 시장으로 끌어오면 구단 지원금이 늘어 재정이 어려운 구단의 자생력을 키우고 국내 프로축구 리그 수준을 끌어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정의석 단장은 “연 100억원 내외로 구단을 운영하는 시·도민 구단이나 K리그 챌린지 구단에게는 스포츠토토의 지원금이 운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합법 스포츠토토의 수익금 일부(약 3분의 1)는 국민체육진흥공단과 각 체육협회를 거쳐 베팅의 대상이 된 구단으로 흘러간다. 지난해의 경우 스포츠토토 매출 3조2800억원 중 환급금과 사업자 수익과 운영비를 뺀 1조825억원이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갔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따르면 이 가운데 149억원이 대한축구협회로 배정됐고, 이 돈을 각 구단이 나눠 받았다. 각 구단은 이 돈의 45%를 유소년 육성에, 나머지는 구단 운영에 보태 쓴다. 케이토토 관계자는 “사설 토토의 매출이 전부 합법 시장에서 발생했다고 가정하면, 국민체육진흥기금이 최대 4조원 가까이 늘어날 것”이라고 추산했다. 지금의 비율로 따지면 국내 프로축구 구단 지원금이 약 550억원 증가하는 셈이다.

스포츠 베팅의 규제 완화가 위험하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복권 사업처럼 사행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스포츠의 순수성을 훼손하며 승부조작의 원인이 된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여전하다. 큰 돈이 오가면 도박꾼과 조직폭력배, 브로커 등이 모인 음성적 세력이 만들어지고, 그들이 선수에게 접근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내 프로축구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기억인 2011년 선수들의 승부조작 파문도 스포츠 도박이 발단이었다. 이수근·김용만·탁재훈 등 방송인들이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한 시도민 구단 관계자는 “스포츠 베팅 확대로 구단이 얻을 수 있는 게 많겠지만, 그로 인해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음을 감안하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팬 관심 많으면 승부조작 없을 것”

스포츠 베팅이 가장 활발한 영국도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 영국도박위원회는 2014년부터 영국 내에서 도박사업과 광고를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면허를 받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무분별한 해외 베팅업체의 진입과 불법 베팅을 막기 위해서다. 경기장 LED 광고판을 통해 무면허의 해외 베팅 업체 광고를 내보내는 구단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를 보내고 있다. 리차드 슈다모어 EPL 회장은 바클레이스와의 스폰서십 계약이 끝나는 2016년 이후에도 “베팅 업체가 EPL의 타이틀 스폰서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국내 불법 스포츠 베팅 양성화론자도 승부조작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다만, 이는 합법 시장의 규제가 아니라 철저한 감시와 강력한 처벌로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 차원의 대책도 필요하지만, 일반인의 인식 전환이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불법 행위를 자행하면서도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풍토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또 한 축구계 관계자는 “팬들의 관심만 있어도 승부조작은 일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일어난 승부조작 사건 대부분이 리그보다는 관심이 적은 컵대회에서 발생한 점을 겨냥해 한 말이다. 그는 “감시의 눈이 적다는 측면에서 도박꾼들에게 인기 없는 스포츠보다 매력적인 곳은 없다”며 “팬들의 관심이 스포츠 베팅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 함승민 기자

1310호 (201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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