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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점 大戰 그 후] 5년 후 두산·신세계 또 웃을까 

‘5년 시한부 사업’으로 과감한 투자 힘들어 


재계의 화제가 됐던 대기업 사이의 ‘면세점 대전’에서 두산과 신세계가 웃었다. 이들 회사는 특허 재승인 심사를 받는 오는 2020년까지 면세점을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 두 회사 모두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에 골머리를 앓던 터라 면세 특허를 차지했다는 데 한껏 고무됐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했다는 점에서 외부 시각도 긍정적이다. 경영난에서 벗어나고 있는 두산은 재도약의 새로운 발판을 마련했고, 성장이 더뎌진 신세계도 유통 분야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게 됐다. 지난 7월 한화에 이어 두산·신세계도 서울 지역 면세점에 진출하면서, 오랜 기간 1강(롯데) 2중(신라·동화) 체제로 유지돼온 면세점 업계의 판도 역시 다자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이번 특허 심사 결과를 두고는 지역과 사업자를 균등하게 배분한 합리적인 안이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기존 서울시내 면세점들은 소공(롯데)·장충동(신라)·세종로(동화) 등 서울 도심에 절반, 광장(SK)·삼성·잠실동(롯데) 등 서울 동남부에 절반이 나뉘어 배치된 형국이었다. 이 때문에 지역별 면세점 간에 경쟁이 심화되고, 관광객들의 면세점 수요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특히 강남권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지역인데도 면세점이 2~3개나 자리한 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잠실동과 광장동에 있던 면세점 특허를 각각 동대문(두산)과 남대문(신세계)으로 옮겨 4대문의 관광객 수요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도록 안배했다는 평가다. 동대문은 연간 중국인 관광객이 710만명에 달하는, 명동 다음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이다. 전략적으로 20여년 전부터 의류·패션단지로 육성된 곳이기 때문에, 패션 한류의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크고, 주변에 관광 콘텐트가 풍부해 면세점의 입지로는 제격이라는 평가다. 남대문 역시 명동부터 이어지는 관광벨트의 한 축이고 유동인구가 많다는 점에서 면세점이 들어서면 상권은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관광객 수요 따른 안배 vs 강북지역 경쟁 심화


국내 면세점 시장 규모는 지난해 8조3000억원에서 오는 2020년 22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며, 이 중 시내면세점은 같은 기간 5조4000억원에서 16조3000억원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승은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시내면세점 비중은 지난 2009년 이후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으며, 중국인 관광객의 방문이 증가함에 따라 앞으로도 시내면세점을 중심으로 면세점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서울 도심 면세점 시장을 롯데가 독식하는 시장구조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된다. 롯데 소공점은 관광 동선의 요충지에 위치한 면세점으로, 단일 매장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또 동화면세점의 경우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신정희 사장이 운영하는 곳으로 롯데와는 특수관계. 사실상 도심 면세점은 지난 40년간 롯데가 장악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번 결정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면세점을 도심에만 집중시킨 것은 강북지역에 집중된 관광 수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란 관측이다. 차로 10~20분 거리에 면세점이 5개나 들어서면 과당 경쟁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업자 선정 결과 가장 큰 손해를 본 곳은 롯데다. 롯데는 표면적으로는 매출 비중이 절대적인 소공점을 지켰기 때문에 선방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소공점은 애초부터 재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소공점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요지에 위치한데다, 연매출 2조원짜리 매장이라 관세청도 조심스러웠을 것이란 관측에서다. 심지어 ‘소공점은 대통령도 어쩌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떠돌았다. 롯데로서도 소공점을 지킬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심사에서 월드타워점 사수에 사활을 걸었다.

롯데가 월드타워점을 내준 게 뼈 아픈 이유는 단지 수익 감소 때문만은 아니다. 월드타워점을 내줘 호텔롯데 상장에 타격이 있을 수 있고, 나아가 경영권 분쟁에서 신동빈 회장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롯데는 지난 9월 KDB대우증권을 호텔롯데의 상장주 간사로 선정하고, 내년 2월 기업공개 (IPO)를 한다는 계획이다. 증권가에서는 ‘대어(大魚)’의 출현을 반기며, 호텔롯데의 공모자금이 최대 6조원에 달할 것으로 점쳤다. 이는 역대 최대의 공모자금을 모았던 삼성생명(4조8881억원)보다도 20% 많은 수치다. 이런 가운데 연매출 4820억원(지난해 기준)에 이르는 월드타워점을 놓치면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호텔롯데 상장에도 악영향?


증권가에서는 이번 선정으로 1조원 정도의 공모자금이 날아갈 것으로 추정한다. 호텔롯데의 사업은 면세·숙박·놀이공원 등 크게 3개로 나뉘는데, 면세사업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호텔롯데의 지난 10년간 영업이익 1조8000억원 가운데 1조7000억원이 면세점에서 나왔다. 이런 면세점의 한 축이 날아갔으니, 롯데로서는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니다. 더구나 신세계와 두산이 각각 남대문·동대문에 면세점을 열면서 소공점의 매출 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호텔롯데 주가의 가늠자라고 볼 수 있는 롯데쇼핑의 주가는 지난 9월 말 29만원대였지만 11월 중순 현재 22만원대로 급락했다.

신동빈 회장은 호텔롯데 상장에서 나오는 현금을 계열사 지분 매입 등 경영권 승계에 활용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흥행에 실패하면 경영권 승계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롯데는 하이마트부터 시작해 최근 뉴욕호텔과 KT렌터카 등을 잇따라 고가에 인수하면서 실탄을 많이 소진한 상태. 호텔롯데의 차입금은 지난 2011년 6000억원대였던 것이 현재는 2조6000억원으로 늘어났다. 더욱이 신 회장으로서는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게 됐다.

SK도 면세점을 잃어 타격이 적잖다. 23년 역사의 SK워커힐점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상징적인 차원의 손실만이 아니다. 면세점을 새로운 먹거리로 키우겠다며 그동안 들였던 수천억원의 투자비가 물거품이 됐다. 최태원 SK 회장도 면세사업자 탈락 소식을 접하고 대노했다는 후문이다. SK네트웍스의 주가는 11월 초 7000원대 초반에서 중순 현재 6000원 안팎으로 떨어졌다.

울상을 짓고 있는 롯데·SK와 달리 신세계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신세계는 서울 면세점을 따내며 20년 숙원을 푼데다, 부산 면세점도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센텀시티로 옮기는 것으로 재승인 받아 면세점 강자로 급부상했다. 11월 말 특허가 만료되는 SK워커힐점의 기존 인력도 흔쾌히 승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세계는 일단 내년 4월 말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과 바로 옆메사빌딩 2개 건물에 연면적 3만3400㎡ 규모의 시내면세점을 열 계획이다. 신세계 측은 본점 면세점을 기준으로 개점 첫 1년간 1조5000억원, 2020년까지 10조원의 매출을 자신하고 있다. 신세계는 관광객에게 즐길거리를 함께 제공하기 위해 5년간 2700억원을 투입해 인근 보행로 미디어폴 조성, 한국은행 앞 분수 광장 리뉴얼 등도 실시키로 했다. 신세계의 연결기준 총매출이 5조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그룹 전체적으로 연간 20% 수준의 매출 증가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신세계의 기업가치는 7000억~8000억원가량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투자비는 많이 들 텐데 5년 후 운명은 불투명

두산은 면세사업자로 선정되면서 막혔던 숨통을 트게 됐다. 경기 부진 탓에 위축된 중공업에서 한 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면세는 물론 유통 부문에서의 첫 발걸음이지만, 이 부문을 차세대 먹거리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라 강한 드라이브를 걸 태세다. 먼저 두산면세점은 두산타워 가운데 9개 층을 새로 단장해 연면적 1만7000㎡ 규모로 만들 계획이다. 버스·승용차 등 총 10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두타 전용 주차장은 이미 확보한 상태다. 두산은 또 면세점과 연계한 관광 프로그램을 살려 반경 1.5㎞ 이내의 흥인지문·한양도성 성곽길·낙산공원·대학로 등을 새 관광명소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두산 역시 2년 후 면세점 매출이 1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호텔신라도 실보다는 득이 많다. 서울 도심에 면세점이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장충동 본점 매출이 줄어들 수는 있다. 하지만 롯데 소공점의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이 분산될 가능성이 있어 크게 손해나는 상황은 아니다. 특히 올 12월 용산 HDC 신라면세점 개장을 앞두고 있어 해볼 만하다는 입장이다. 일명 ‘DF랜드’로 불리는 이 면세점의 총 면적은 6만5000㎡로 국내 면세점 중 가장 크다. 장충점보다도 접근성이 뛰어나고, 공항과 KTX와 맞닿아 있어 고객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 특히 버스를 200대 이상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이 마련돼 있어 단체 중국인 관광객을 받기 수월하다. 호텔신라는 장충점이 지난해 1조1500억원의 매출을 올린 가운데, HDC신라 면세점이 내년 1조원 매출을 달성한다면, 롯데를 제치고 첫 업계 1위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면세사업은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고 5년마다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 사업자도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다. 관세법 176조는 면세사업자를 5년마다 재심사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정 기업의 독과점을 막고 많은 기업에 기회를 주자는 차원에서 도입한 규정이다. 이에 사업자들은 5년 이내에 수천 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모두 회수해야 하는 압박을 받게 되며, 만약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특허를 뺏기면 큰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기에 최근 국회가 면세점 사업자의 특허수수료율을 올리고 리베이트 관행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영업이 예전만 못할 수도 있다. 특히 두산처럼 경험이 없는 회사들은 인력 확보부터 제고관리·영업 등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런 우려 탓에 신세계·두산·호텔신라의 주가는 지난 11월 16일 반짝 오른 뒤 이내 약세로 돌아섰다. 이에 증권가에서는 면세점 사업의 경쟁 심화와 과다한 초기 투자비용, 시한부 특허 등의 문제가 있어 지나친 장밋빛 전망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김유경 기자 kim.yukyoung@joins.com

1312호 (201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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