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경영의 신과 기업인의 신전 

 


100년 전인 1915년 11월,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현대 정주영 회장과 105년 전인 1910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난 삼성 이병철 회장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30대에 해방을 맞은 동년배들이었다. 두 사람이 해방 후 대한민국 건국 과정의 혼란과 뒤이은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기업을 일으키고 사업을 확장해 오늘날 글로벌 기업의 초석을 놓은 과정은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을 대변한다. 흔히 한강의 기적을 라인강의 기적에 비유하지만 2차 대전 이후 경제 발전의 기적은 한강의 기적 하나이다. 독일은 19세기 후반에 유럽 강대국 프랑스를 군사적으로 물리쳤고, 이미 과학기술은 물론 철학과 문화예술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있었다. 비록 2차 대전으로 폐허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고급 인력과 지식자원이 남아있었던 상태에서 미국의 마셜플랜에 따른 원조가 뒷받침하면서 진행된 경제 회복이다. 라인강의 기적은 과거 수준을 회복하는 과정이었지만,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기적이다.

기업가로서 이런 과정을 견인한 이병철·정주영 회장은 많은 측면에서 대조적이다. 삼성은 치밀하고 빈틈없는 창업주의 성격에 부합하는 제분-제당-섬유와 같은 프로세스 산업에서 출발해 가전, 반도체, 휴대폰 등 디지털산업으로 확장하면서 특유의 기획관리 역량을 십분 발휘했다. 현대는 과감하고 도전적인 창업주에 걸맞게 건설-조선 등 프로젝트 산업에서 출발해 자동차, 중공업의 글로벌 리더로 올라섰다. 출발한 사업과 운영방식은 차이가 있었지만 빈곤한 조국에서 사업보국이라는 사명의식에 기반한 원대한 사업가적 안목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히 현대는 북한 공산치하를 피해 월남한 이북 출신들이 남한 사회에 가져온 역동성을 상징한다. 이상적 사회를 동경하는 관념적 지식분자들이 대거 월북하는 와중에 김일성의 공산체제를 경험하면서 한계를 절감하고 남한으로 탈출한 피난민들은 맨주먹으로 부산의 국제시장과 서울의 평화시장, 남대문시장에서 삶터를 일구어 나갔다. 무일푼이 되어 남한으로 왔지만 정신은 살아있던 실향민들은 남한 사회의 역동성을 높이면서 산업화의 에너지로 기여했다. 프랑스 파리에 파리바게트를 개점한 SPC그룹과 글로벌 화장품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은 70년 전 이북 출신들이 월남해 세운 기업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영삼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 더불어 민주화 시대의 주역이었다. 성격과 노선에서 대비되는 두 사람이 경쟁자이자 협력자로서 민주화 시대를 이끌었듯이,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도 각각 중후장대형, 경박단소형 산업 분야를 개척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키웠다.

다신교를 믿는 로마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죽어서 신(神)이 됐다. 그러나 신전은 정치가와 군인들의 차지였고 상인들은 꿈도 꾸지 못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전통이 강한 일본에서도 기업가의 지위는 마찬가지였으나,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혼다 쇼이치로는 큰 발자취를 남기고 ‘경영의 신’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우리나라에서 만약 같은 의미를 담은 신전이 세워진다면 100여년 전 식민지에서 태어나 70여년 전 신생 대한민국이라는 불모지에서 기업을 세우고 불가능에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의 화신이었던 두 사람이 가장 먼저 입장할 것으로 생각한다.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1313호 (20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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