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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실록으로 읽는 사서’] 싸워 이겨야 할 상대는 ‘어제의 나’ 

항상 자기 혁신에 노력해야 ... 숙종 “매일 새롭지 않으면 퇴보”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1693년(숙종19) 5월 13일, 왕은 새로 지은 작은 전각에 이름을 붙이고 직접 다음과 같은 글을 지었다. ‘무릇 천하의 모든 일은 날마다 새롭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날마다 퇴보하게 마련이다. 더욱이 군주의 마음가짐은 정치를 하는 근본이며 만물을 교화하는 근원이니 진실로 그 덕을 날마다 새롭게 하여 진작시키지 않는다면, 어찌 백성들을 이끌 수 있겠는가…(중략)…지금 학문이 충실하지 못한 바가 있다면 날마다 새롭게 할 것을 생각하고, 덕이 수양되지 못한 바가 있다면 날마다 새롭게 할 것을 생각하며, 간언을 받아들이고 경청함이 넓지 못하다면 날마다 새롭게 할 것을 생각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방도가 옛날만 못하다면 날마다 새롭게 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중략)…날마다 새롭게 하는 근본은 반드시 마음속에서 사사로움을 단호히 잘라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사사로운 욕심을 물리쳐서 마음을 태연하게 해야 한다. 그리 되면 덕이 수양되는 것을 바로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나라를 다스리는 성과는 날로 새로워져 이 ‘일신(日新)’이란 이름을 지은 뜻에 거의 어긋나지 않게 될 것이다.’

영조가 정조에게 “자질에 안주하지 말아야”

지금은 사라져 버리고 없지만 옛날 경희궁의 한 자리를 차지했던 ‘일신헌(日新軒)’에 관한 설명이다. 숙종은 [대학(大學)] 전(傳) 2장의 ‘탕왕의 세숫대야에 새겨져 있기를 ‘진실로 날로 새로워지려거든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라’ 하였다(湯之盤銘 曰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는 구절에서 이 이름을 가져왔다. 우리가 세수를 하며 얼굴에 묻은 더러움을 씻어내듯이 탕 임금은 마음에 묻는 티와 먼지를 닦아내기 위해 매일같이 수신에 힘썼다. 그는 날마다 자신이 새겨놓은 글을 보며 새로운 마음으로 스스로를 진보시켰고 어제보다 나은 정치를 펼쳐 성군으로 추앙 받았다. 일신헌이라는 이름 속에는 이러한 탕 임금을 본받겠다는 숙종의 다짐이 담겨있다.

탕 임금이 남긴 교훈을 중시했던 것은 비단 숙종만이 아니다. 영조도 그의 손자 정조에게 남긴 하교에서 ‘할아비의 나이가 이미 77세가 되었다. 올해도 저물어 가고 내 나이 또한 저물어 가고 있으니, 당부의 말을 남기고자 한다면 지금 해야지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느냐. 내가 비록 노쇠하지만 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깊고도 침착한 도량과 분수를 아는 명철함은 네가 이 할아비보다 낫다. 그러나 두려워해야 할 점이 있으니, 성탕(成湯, 탕왕)의 성스러운 덕은 날로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졌다는 것이다. 성인(聖人)도 이와 같으실진데, 하물며 그 아래 경지에 있는 사람은 어떠해야 하겠느냐’고 말한다(영조 45.11.27). 정조가 제왕의 자질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말고 스스로를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도록 탕 임금처럼 부단히 새로워지라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어제의 나’보다 나은 ‘오늘의 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올 초 개봉한 영화 [킹스맨]에는 헤밍웨이의 말이 인용됐다. ‘타인보다 우수하다고 해서 고귀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자신보다 우수한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고귀한 것이다.’ 이것도 같은 맥락이다. 나를 한계 지우고 나를 나태하게 만드는 적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포기도 다른 사람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서 하는 것이다.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이유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가 아니다. 그와 가는 방향도 다르고 보폭도, 속도도 다르다. 나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저 나 자신만 체크하면 된다.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는 않았는지, 혹 후퇴하진 않았는지, 어제보다 진보했고 보다 성숙했는지, 그외에 다른 것은 없다.

그렇다면 과거의 자신보다 우수해지기 위해서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제의 나’보다 나은 ‘오늘의 나’가 되고 ‘오늘의 나’보다 나은 ‘내일의 나’를 만들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탕왕의 반명(盤銘)처럼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는 자기 혁신이 필요할 것이다. 공부로써 지식과 능력을 배양하고,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며, 이전까지의 관행과 습관에서 탈피해 과감히 도전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창의적인 안목을 키우고 반성과 성찰로 자신을 더욱 깊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토대로 ‘나’는 ‘새로운 나’, ‘더 나아진 나’가 되어 끊임없이 발전하는 삶을 열어가게 될 것이다.

조선에서 신하들이 ‘은나라 탕왕의 종시일신(終始日新, 언제나 항상 나날이 새롭게 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임금의 경연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그래서다(선조6.9.21; 효종5.1.15 등). 임금은 하루 3차례 경연에 나가 학문을 배우고 정사를 토론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운다. 간언을 들으며 잘못을 고치고 실수를 개선해 나간다. 이러한 정신적 성장 속에서 내공을 다지고 국정을 담당할 수 있는 안목과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물론 횟수가 많기도 하고 과연 효율적이냐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지만, 종묘사직과 백성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임금에게 경연은 보다 나은 나를 만드는 도구이자 수련의 장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오늘날의 리더들에게도 시사 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를 새롭게 만드는 작업은 결코 쉽지가 않다.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라는 말이 있는데,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엘리스에게 “제 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계속 뛰어야 한다”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어떤 대상이 변화해도 주변 환경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웬만큼 변하지 않고서는 그 자리에 머물거나 도태된다는 것이다.

계속 뛰어야 그나마 제자리

나를 새롭게 하고, 하루하루를 새롭게 만드는 노력도 마찬가지다. 내가 새로워질수록 나를 가로막는 내 안의 적도 새로워진다. 내가 새로워질수록 내가 해야 할 일도 새로워지며, 내가 마주하고 감당해야 할 일들은 보다 커지고 복잡해진다. 이 때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 머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올라서 있는 길은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이 글 첫머리에서 소개한 숙종의 말처럼 “날마다 새롭게 하지 않으면 날마다 퇴보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전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노력을 몇 배 더 가중시켜야 할 것이다. 탕왕이 진실로 새로워지려면 ‘하루하루’, 그리고 ‘또’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한 것은 그래서가 아닐까. 탕왕의 반명은 우리가 새로워지고자 한다면 일회성이 아닌 꾸준한 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거듭하고 또 거듭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313호 (20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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