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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수퍼치킨’은 잊어라 

조직 내 페킹오더는 구시대의 산물 … 지금은 조직 응집력이 중요한 때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

▎ⓒted.com
여수에 진남관(鎭南館)이 있다. 이순신 장군께서 활약하시던 전라좌수영 본영 건물이다. 거북선 모형과 충무공 동상 앞에서 인증샷도 찍어야겠지만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광장 주위에 세워진 12개의 북 모양의 표지석, 그리고 거기에 새겨진 낯선 이름들이다. 이억기, 원균, 권준, 어영담, 배홍립, 이순신(동명이인), 김완, 김인영, 나대용, 정운, 송희립, 정걸. 그렇다. 바로 ‘이순신 장군을 도운 사람들’이다.

기라성 같은 천재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하는데 단서가 하나 붙는다. 나머지 만 명이 천재를 잘 보필하거나 최소한 엇박자는 내지 말아야 한다. 리더십(Leadership)은 팔로워십(Follower ship) 위에 피는 꽃이다. 지난 수 십 년간 대다수 조직이나 사회는 이른바 ‘수퍼치킨 모형(Superchicken model)’에 따라 운영되어 왔다. 가장 뛰어난 수퍼스타를 찾아내서 그들에게 모든 자원과 권한을 줘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일견 효율적일 수 있다. 또 지금까지는 비교적 잘 굴러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변했다. 모든 게 빠르고 불확실하고 복잡하기만 하다. 이런 혼돈의 세상에서도 여전히 수퍼치킨 모형이 유효할 수 있을까.

수퍼치킨 몇 명보다 팀워크가 중요


▎사진:중앙포토
다섯 개 회사의 CEO를 역임하고 작가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마가렛 헤퍼난(Margaret Heffernan)의 주장도 그렇다. 그녀의 경험에 따르면 수퍼치킨 몇 명의 탁월함보다는 팀원들간의 강한 응집력이 장기적으로 더 높은 성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책상에 머리를 틀어박는 조직보다는, 휴식시간에 수다 떨고 그때그때 도움을 주고받는 조직이 더 강한 조직이라는 말이다.

미국 퍼듀 대학의 진화생물학자인 윌리엄 뮤어(William Muir) 교수는 닭을 연구했다. 그는 닭의 생산성, 즉 더 많은 달걀과 더 좋은 육질을 얻기 위해 실험을 했다(닭들이 이래저래 고생이 많다). 닭은 보통 무리를 지어 사는데, 그는 닭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그룹은 평범한 닭으로만 구성해서 6세대 동안 그냥 방치했다(닭의 1세대는 6개월 정도). 두 번째 그룹은 생산성 높은 수퍼치킨들로만 구성하고 세대가 바뀔 때마다 가장 뛰어난 개체만 골라서 번식을 시켰다. 실험의 초점은 당연히 두 번째 그룹, 과연 6세대 후 세계 최고의 에이스 그룹이 탄생했을까? 결과는 충격적이다. 세 마리만 남고 다 죽었다. 수퍼치킨들 중에서도 더 잘난 세 마리가 나머지를 죄다 쪼아서 죽였던 것이다.

닭들이 이럴 줄은 몰랐다. 그럼 사람은 어떨까? 가만히 있을 학자들이 아니다. MIT 팀에서 실험을 했다. 수백명의 실험 지원자들을 여러 그룹으로 나누고 아주 어려운 문제를 주었다. 예상대로 그룹별로 성과에 차이가 났다. 흥미롭게도 고득점한 그룹은 한 두 명의 엄청난 IQ를 가진 천재가 속한 그룹이 아니었다. IQ 합산이 가장 높은 그룹도 아니었다. 최고의 그룹은 IQ와는 무관하게 그저 평범한 그룹이었는데 대신 세 가지 뚜렷한 특징을 보였다.

첫째, 공감검사(Reading the Mind in the Eyes Test) 측정 결과 최고 그룹에 속한 이들은 사회적 감수성이 높았다(공감검사는 사람의 눈 표정 36가지를 보여주고 그 감정 상태를 알아 맞추는 사지선다형 테스트. 감수성이 높은 사람은 30개 이상, 둔감한 사람은 20개 이하를 맞춘다고 한다). 둘째, 최고 그룹에서는 모든 참가자들에게 골고루 기회가 주어졌다. 저 혼자 잘났다고 나대는 사람도, 될 대로 되라며 방관하는 사람도 없었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최고 그룹에는 여성이 더 많았다. 평균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감수성이 더 높기 때문에 성과가 좋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MIT 실험이 보여주는 것은 뛰어난 그룹의 비결이 서로에 대한 사회적 유대감이라는 사실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현실에서 주어지는 문제는 혼자서 끙끙대는 수학경시대회 문제가 아니라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아옹다옹하며 부대껴야 풀리는 문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협동심이 강한 팀이 두각을 낼 수밖에 없다. 내가 모든 것을 몰라도 되고, 필요한 부분은 도움을 주고받기 때문에 개개인의 능력을 뛰어넘는 성과를 낸다. 또한 협동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고, 일이 물 흐르듯 막히지 않으므로 엉뚱한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역시 공짜는 없다. 협동심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조직 차원의 세심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일부 회사들은 직원이 자기 책상에서 혼자 커피 마시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대신 공용 커피머신 옆에서 서로 어울리면서 마시게 한다. 스웨덴에서는 커피나 쿠키를 먹으면서 수다를 떠는 시간을 일컫는 ‘피카(Fika)’라는 말이 따로 있을 정도다. 미국 메인 주에 있는 아이덱스(Idexx)라는 회사는 구내에 채소 텃밭을 만들어 여러 부서의 사람들이 같이 텃밭을 일구면서 소통하게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복잡해져 가는 세상에서 결국 벽돌(Brick) 하나하나가 아니라 서로를 잇는 회반죽(Mortar)이 중요하다. 이렇게 싸여진 연대감을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한다. 사회자본은 회사에 추진력을 주고 회사를 굳건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면서 좋은 생각이 위대한 생각으로 바뀔 수 있다. 모든 생각과 아이디어는 처음엔 미숙하고 너저분하지만 대신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가능성이 현실이 되려면 아낌없는 기여와 믿음, 도전이 있어야 한다. 상호 신뢰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자본이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고(高)성과 창출의 열쇠는 사회자본


▎‘수퍼치킨’ 강연 동영상.
닭들의 세계는 ‘페킹오더(Pecking order: 먹이를 쪼는 순서)’가 지배한다. 자칫 먼저 부리를 갖다 대었다가는 벼슬이 남아나지 않을 수 있다. 침팬지들은 우두머리 앞에서 몸을 낮추고 짧게 꿀꿀거리는 소리를 내며 복종의 의사표시를 한다. 어떤 때는 등을 긁어주기까지 한다. 인간 사회도 다를 바 없다. 페킹오더가 높은 사람에게는 눈치껏 기어야 한다. 까불거나 대드는 순간 회사 생활은 끝장난다.

허나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조직의 목표가 페킹오더 정하기가 아닌 이상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살았다. 서로 스타가 되기 위해 지겹도록 경쟁을 했다. 그나마 스타가 실력으로 정해지지 않고, 학벌이나 연줄로 정해지면 그 조직의 운명은 뻔하다. 진정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면 한 두 명 스타의 개인기보다는 팀원 전체의 조직력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이에게서 최고를 이끌어 내는 사람이 자신에게도 최고를 발견하는 법이다. 더 이상 리더는 혼자서 복잡한 문제를 풀어내는 영웅이 아니다. 모든 조직원이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고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판을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고독한 영웅의 시대는 갔다. 왕년에 펄펄 날던 헐크, 토르, 아이언맨도 이제는 어벤져스 팀에 들어가 함께 싸운다. 아직도 혼자 싸우는 수퍼맨과 배트맨도 소속사만 같았다면 내심 어벤져스에 끼고 싶었을 게다(헐크, 토르, 아이언맨은 마블사, 수퍼맨과 배트맨은 DC코믹스 소속).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1315호 (201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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