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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귀헌의 ‘질문 레시피’ 왜(Why)의 힘] 목적 없는 사람은 방향타 없는 배 

‘왜(Why)’라는 물음이 모든 일의 출발점 … 의문 갖고 능동적으로 나서야 

권귀헌

▎사진:중앙포토
스코틀랜드의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토머스 칼라일은 “목적이 없는 사람은 방향타 없는 배와 같다”고 말했다. 살아갈 목적이 없다면 인생은 파도나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휘청거리다 부서지고 흔적도 없이 바다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다. 이와 달리 목적이 분명하다면 죽음이 눈앞에 닥쳐도 삶의 의지를 이어갈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의사 빅터 프랭클 박사는 목적이나 신념을 가진 수감자들이 단순히 생명 연장만을 추구했던 수감자에 비해 더 많이 살아남았다고 증언했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28명 중 1명도 안 됐지만 삶의 의미를 찾았거나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의 생존율은 더 높았다. 빅터 프랭클 스스로도 신문지나 폐기된 서류 뒷면에 [의사와 영혼]의 원고를 썼다.

내 일의 ‘Why’는 무엇인가

조직에는 목적과 목표가 있다. 여기에서 목적은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이고, 목표는 그걸 달성하기 위한 과업이다. 보통 목적은 어떤 방향이나 이념인 반면 목표는 비교적 구체적이며 대부분 측정 가능하도록 설정한다. 물론 비전, 가치, 철학과 같은 개념을 함께 다루면 미묘한 차이가 생기지만 이 글에서는 목적과 목표만 다루기로 한다.

목적 없이 생겨난 조직은 없다. 하물며 고교 동창 모임의 정관에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라는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조직의 목적이 사라지면 이내 조직도 사라진다. 체계적인 구조는 없었더라도 나름의 목적에 따라 활발했던 모임도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목적이 불분명해지거나 동력을 잃으면 조직은 엉성해지게 마련이다. 직장도 조직이니 이런 논리를 적용해볼 수 있다. 이윤창출, 고객만족, 가치창조 등 조직마다 지향하는 곳은 달라도 목적은 존재한다. 잘 모르겠다면 회사 홈페이지, 복도나 회의실 벽에 걸린 구호, 경영자의 신년연설 등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분명 거기에는 조직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이 있다.

사소한 일이라도 저마다의 목적이 있는데 탁월한 조직일수록 그런 것이 하나의 큰 목적으로 수렴된다. 수렴 정도가 높으면 조직은 높은 성과를 올릴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에너지가 분산되고 조직은 분열된다. 부서나 구성원마다 목적이 다른데 함께할 이유는 물론이고 협력이나 상생은 기대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진이 아닌 이상, 조직의 목적을 생각할 일은 드물다. 내가 당면하고 있는 일과 밀접하지도 않을 뿐더러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조직이 클수록 그렇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출발 지점이 바로 조직의 목적이고 목표란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담당 업무의 경중을 떠나 거기서 의미를 찾고 성과를 내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왜(Why)’를 정립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우리 회사, 부서, 팀이 과연 어떤 목적을 갖고 만들어졌는지, 그것이 지금도 유효한지, 상황이 달라졌다면 앞으로 어떤 목적을 추구해야 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선배들이 알려주는 이른바 ‘꿀팁’이라는 것들, 예를 들어 인사고과에서 중요한 부분은 무엇인지, 어떤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하는지, 상사가 좋아하는 것과 혐오하는 것은 무엇인지 같은 정보는 팁이 될 수 있을지언정 본질은 아니다.

‘왜(Why)’가 명료하지 않으면 직장생활은 방향타가 부서진 배를 탄 것과 같아진다. 도무지 내가 하는 일은 죄다 쓸모없는 일처럼 보이며, 이 따위 일을 하려고 그렇게 고생했나 하며 자괴감에 빠지기 쉽다. 대개 입사 후 1년 안에 이직하곤 하는데 이직 고민은 그보다 일찍 시작될 것이다. 극단적 선택은 이렇게 탄생한다. 물론 자신의 철학과 가치가 일터의 ‘왜(Why)’와 맞지 않을 수 있다.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과 그걸 흔쾌히 하는 건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사람들이 주는 스트레스, 불합리한 업무 배분, 야근을 종용하는 문화 등은 그냥 참고 가기에는 버거울 때가 많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건 없다. 그런 곳을 찾았다면 떠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자신의 상황이 그렇지 않다면 본인이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시도해보는 게 어떨까. 주변을 탓하거나 불평을 쌓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내가 하는 일의 목적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 내가 마무리한 일이 전체 프로세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는 것이 바로 그 첫 단추다.

불평하기 전에 내가 할 일부터 찾아야

세상일은 대개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지도 못한 일은 수시로 우리를 괴롭힌다. 일에 관해 분명한 ‘왜(Why)’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변화된 상황에서도 융통성을 발휘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습게 여기는 허드렛일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 단순히 문서를 복사하는 일도 복사기가 고장 나거나 용지가 부족할 수도 있고, 복사하려는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 이럴 때 ‘복사본이 왜 필요한지, 어디에 쓰이는지’ 같은 복사의 목적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부서에서 복사할지, 회사 밖에 나가서 할지, 다른 시간대에 할지, 출력으로 대신할지 등과 같은 대안을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작은 일이지만 이런 일조차도 상사에게 달려가 “복사기가 고장 났는데 어떡하죠?”라고 묻는 직원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거래처와 연락이 안 되는데’ ‘납품차량이 사고가 났는데’ ‘오후 2시에 야외행사가 있는데 비가 오잖아’ 같은 이유를 대며 “어떻게 할까요?”라고 아무 생각 없이 상사의 의견을 물었던 적은 없었나. 상황이 바뀐 것을 알리는 차원이 아니라 스스로 조치해볼 의지와 용기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나? 막연히 윗사람의 지시를 기다렸던 것은 아닌가?

목표에 이르는 경로와 방법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일은 언제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의 목적을 분명히 하는 일은 변화하는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한 지침이 되기도 하며, 옳다고 믿는 일을 해내기 위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일을 처리하느라 많은 수고를 해도 괜찮다. 그런 노력은 경험과 경륜이란 모습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상사는 부하직원의 어떤 단면으로 전체를 평가하곤 한다. 지각하는 모습에서 성실함을, 업무의 마무리를 보고 책임감을 평가한다. 보통 그쯤 되면 하나를 보고 열을 알 수 있다고 자부한다. 상사가 여유를 갖고 기다려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사의 덕이 부족하다며 불평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아까운 것은 내 시간이고 내 에너지이다. 잠깐 시간을 내서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자. 나는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왜(Why)’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내 일은 어떤 ‘왜(Why)’를 갖고 있는가? 팀원들은 ‘왜(Why)’를 공유하고 있는가?

권귀헌 - 어떤 질문을 해야 삶이 풍요로워지는지 연구하는 조용한 혁명가로 질문연구소 SMART Q-Lab을 운영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세계를 이끄는 한국의 최고 과학자들], [질문하는 힘], [삶에 행복을 주는 시기적절한 질문] 등이 있다.

1315호 (201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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