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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실록으로 읽는 사서’(끝)] 쉽게 여기고 덤비면 백전백패 

지극히 두려운 마음으로 성심 다해야 ... 세종·영조도 거듭 강조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그대는 일찍이 사관(史官)을 지내며 나를 지켜보았으니, 백성의 삶에 대해 근심하는 나의 뜻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그대가 갈 고을에는 흉년이 들었다. 무엇보다 백성을 구제하는 대책에 힘쓰도록 하라.” 1427(세종9)년 12월 8일, 세종은 새로 칠원 현감으로 부임해 가는 양봉래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양봉래가 “신이 시골에서 자라 민간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사옵니다만, 제 성품이 워낙 용렬하고 어리석으므로 책임을 완수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라고 걱정했다. 이에 세종이 그를 격려한다. “대개 일을 쉽게 여기고 덤벼들면 실패하나, 그 일을 어렵게 여기고 해나간다면 반드시 성공하는 법이니, 지금 그 마음가짐으로 노력하면 될 것이다.”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

세종은 또 이런 말을 남겼다. “지혜와 노력을 다 쏟아내어 도모했는데도 일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천운(天運)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도모한 바가 지극하지 않으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면, 두려운 마음으로 일에 임하되 지모를 내어 일을 성사시키라는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도모할 것은 다 도모했다 말하지 말고 다시 도모하며, 의논할 것은 다 의논했다 말하지 말고 다시 의논하라.”(세종22.6.20). “옛 사람은 큰일을 당하게 되면 반드시 두려운 마음으로 일에 임하되 힘껏 도모하여 성사시키라 하였다. 일에 임할 때 두려워하라는 것은 심사숙고하고 조심해야 할 바가 있다는 것을 말함이요, 힘껏 도모하여 성사시킨다 함은 두려워하고만 있지 말라는 것이다.”(세종31.9.20).

여기서 세종이 거듭 강조하고 있는 ‘두려운 마음으로 일에 임하되 힘껏 도모하여 성사시키라(臨事而懼 好謀而成)’는 말은 본래 [논어] ‘술이(述而)’편에 나온다. 어느 날 애제자 안회, 자로와 더불어 한담을 나누던 공자가 안회에게 말했다. “등용해주면 나아가 백성을 위한 도(道)를 펼치고, 버림을 당하면 미련 없이 떠나 은둔하는 것, 이는 오직 나와 너만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안회를 높이 평가하는 공자의 말이 서운했던지 자로가 물었다. “선생님, 삼군(三軍)을 통솔하실 일이 있다면 그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자로는 아마도 공자가 그건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용맹과 무예가 뛰어나기로 가장 이름이 높았던 사람이 바로 자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자의 대답은 자로의 기대와 어긋났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으려 하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 하다가 죽어도 후회함이 없는 자와 나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일에 임할 때는 반드시 두려워하되, 힘껏 도모하여 일을 성사시키고 마는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 목표를 이루고, 일을 성공시키는 것은 용기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로와 같이 직선적이고 과격한 사람은 물불가리지 않고 무모하게 덤비다가 실패하기 쉽다. 공자는 자로에게 행동에 나서기 전에 먼저 사려 깊게 생각할 것,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공자의 가르침 중 ‘힘껏 도모한다’는 대목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내가 가진 지혜와 노력을 남김없이 발휘한다는 의미다. 단체의 차원에서 보자면 여러 사람들의 지혜와 의견, 즉 집단지성을 모은다는 뜻으로 사용될 수 있다. 영조는 균역법 개혁을 위해 궁궐 밖에 나아가 백성들의 의견을 직접 경청하곤 했는데, 그 때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이미 양역을 변통하기 위한 계획들이 상세하게 검토되었고, 추진할 방향도 어느 정도 정해졌지만 공자가 말하길 ‘일에 임할 때는 두렵게 여기고, 힘껏 도모하여 일을 성취한다’고 하였으니, 두렵게 여긴다는 것은 조심하는 것이고, 힘껏 도모한다는 것은 여러 사람들의 모책(지혜)을 모은다는 뜻이다. 지금 삼복 더위에도 내가 또 다시 백성들 앞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부디 그대들은 각자의 생각을 남김없이 다 말하라.”(영조26.7.3).

우리가 일을 성사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들던 것을 완성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목표를 달성하고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여러 가지가 필요할 것이다. 방향설정, 주위의 도움, 투입되는 자원과 역량 등이 모두 적절해야 하고 서로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 그런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그 일에 임하는 나의 자세와 마음가짐이다.

이에 대해 공자는 우선 그 일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두려워하라는 것은 무조건 일을 어렵게 여기라거나, 내가 과연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만 하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다. 세종의 설명대로 그것은 조심하라는 의미이다. 원래 ‘조심(操心)’이란 단어에서 ‘조(操)’자는 나무 위에 앉은 세 마리의 새(品+木)를 손으로 잡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나무 위에 앉은 새는 언제 날아갈지 모른다. 그런 새를 잡으려면 준비를 철저히 하고 호흡을 가다듬어 천천히, 차분하게 다가서야 한다. 일도 마찬가지다. 그 일을 손쉽게 여기고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시작하다 보면 새가 훌쩍 날아가 버리듯, 일도 금세 틀어져 버린다. 별로 전진하지도 못한 채 중간에 주저앉게 된다. 따라서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가볍게 여기지 말고 신중하라는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따져보고, 예상되는 리스크에 대비하여 철저히 준비하고 임하라는 뜻에서 공자는 ‘두려워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의 성공을 위해서는 두려워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일을 어렵게 여기는 만큼, 또 신중하게 생각하는 만큼 혼신을 다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자신의 지혜와 역량을 남김없이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공자가 꾀, ‘모(謀)’를 강조한 이유이다. 이 ‘모’에는 결단력도 포함된다. 조심한다고 주저하면, 일을 성공시키는 데 필요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모든 지혜와 역량을 모으고, 여러 사람들의 중지(衆智)를 모아 그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조심하되 ‘때’를 놓치지 말아야

일찍이 정조는 “넉넉한 기상으로 혼신을 다하되 촉박한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저 빨리 성취하려고만 하다 보니, 지나치게 황급히 일을 처리하려 들어 마침내는 다급하고 불안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일득록)고 경계했다. 어떤 일이든 완벽히 똑같은 일을 두 번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일을 한다는 것은 가지 않은 길을 가보는 것이고, 길이 나지 않은 산을 오르는 것이다. 산 정상을 이정표 삼아 꾸준히 있는 힘껏 올라가되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너무 급하게 올라가면 금세 지친다. 함부로 발을 내딛다 보면 헛디디기 쉽다. 심지어 중도에 무서운 산짐승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공자의 가르침처럼 두려워하되 있는 힘껏 도모하는 것, 조심스럽게 도전하되 내가 가진 모든 꾀와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러한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한 까닭이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316호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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