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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 기자의 ‘앵그리 2030’ (20) | 왜 20대 총선이 중요한가?(2)-(끝)] 단언컨대 투표는 밥 먹여준다 

정치권에서 젊은 세대 눈치 보도록 ... 캐스팅보트 꽉 쥐어야 


이 기사를 끝으로 ‘앵그리 2030’ 시리즈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기성 정치인들이 2030의 문제를 얼마나, 어떻게 방치해왔는지 주로 살폈습니다. 우선순위를 따질 때마다 늘 ‘다음에’였고, 덜 급하다는 명분으로 항상 청년은 후순위였습니다. 정치권에서 ‘청년’이란 키워드가 별도의 고려 대상으로 분류된 것은 채 20년이 안 됐습니다. 태도가 바뀐 데는 이유가 있겠죠. 바로 ‘노청(老靑) 간 이해의 충돌’입니다. 선거가 세대 간의 전쟁 양상으로 변해가는 건 우리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최근 전 세계에서 벌어진 각종 선거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 역시 ‘이념’이 아닌 ‘세대갈등’이었습니다.

미국에선 베이비부머(1946년~1964년생)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이후 출생자)의 투표 대결이 내년 대통령 선거의 핵심으로 부상했습니다. 공화당은 친(親)민주당 성향인 밀레니얼 세대의 적극적인 투표 의지를 두려워합니다. 그리스에선 청년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급진 좌파연합(시리자당)이 창당 10년 만에 정권을 잡았습니다. 제러미 코빈 의원이 영국 노동당 당수 선거에서 승리한 것 역시 당원이 아닌 20~30대 일반 유권자 덕분이었습니다. 이 정도를 제외하면 압도적 표의 힘을 보유한 ‘어른’들이 이겼습니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유럽연합 회원국에서 치러진 14번의 선거 중 우파 성향 정당이 12번이나 승리했죠.

50대 이상의 표심에 달린 대한민국 선거


우리나라에서도 슬슬 이념이나 지역 대립 구도가 깨질 조짐이 보입니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게 바로 세대 간 대립입니다. 18대 대선 당일 한국갤럽이 실시한 예측조사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30대 득표율은 각각 28.3%와 71.1%였습니다. 이와 달리 60대 이상에선 박 후보 74.7%, 문 후보 25.2%였죠. 세대별 지지 성향이 확연히 갈립니다.

제6회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도 그랬습니다. SBS의 출구조사 결과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후보와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의 20대 득표율은 각각 74.5%와 24.9%였고, 30대는 66.0%와 33.1%였습니다. 40대부터 역전돼 50대에선 정 후보가 무려 76.5%를 얻었습니다. 20~30대는 새정치민주연합을, 50대 이상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확고해졌다는 의미죠.

이렇게 갈라질수록 중요해지는 건 유권자의 숫자와 투표율입니다. 그런데 갈수록 50대 이상 유권자는 늘고, 20~30대 유권자는 줄어듭니다. 19대 총선 당시 20대(19세 포함) 투표자는 307만명이었고, 60세 이상은 568만명이었습니다. 20대 총선에선 20대 312만명, 60대 이상 699만명(‘the300’ 예측결과)입니다. 격차가 2배 수준 이상입니다. 20~30대와 50대 이상을 묶어 분류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두 그룹 간 투표수 차이는 무려 565만명입니다. 246개 지역구로 단순히 나누면 지역구 하나당 약 2만3000명입니다. 보통 총선은 1만~2만 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고, 고작 1000표 정도의 박빙 지역도 수두룩합니다. 50대 이상의 표심을 누가 잡느냐에 당선이 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투표율 격차도 여전합니다. 19대 총선에서 20~30대의 투표율은 45%를 밑돌았지만 50대와 60대 이상은 각각 62.4%, 68.6%를 기록했습니다. 18대 대선 투표율은 20대가 68.5% 30대는 70%였습니다. 그러나 50대는 82%, 60대 이상은 80.9%였죠. 그나마 대선이라 청년 세대의 관심이 컸습니다. 20~30대는 대선과 다른 선거 간 투표율 격차가 큽니다. 하지만 60세 이상의 고연령층은 어떤 선거든 꾸준히 70% 내외의 투표율을 보여줍니다. 투표율이 가장 낮은 지방선거에서도 60대 이상의 투표율은 70% 이상입니다. 유권자도 많고, 투표율도 높다는 얘기죠.

앞으로는 더 암울합니다. 10년 뒤엔 젊은 세대가 아무리 투표를 열심히 해도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이 올 겁니다. 머릿수 차이가 너무 심하게 벌어져서죠. 한국이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 이상)에 진입하는 2026년 유권자의 연령별 비율은 20대(19세 포함) 13.7%, 30대 15.7%, 40대 17%, 50대 19.2%입니다. 60대 이상은? 무려 34.4%입니다. 10년 후면 지금 2030이 3040이 되겠죠. 우리가 그 때의 20대와 힘을 합쳐도 비중이 절반에 못 미친다는 뜻입니다.

고령화의 힘은 이미 지난 18대 대선에서 입증됐습니다. 당시 투표율은 16대(70.8%)와 17대 대선(63%)보다 월등히 높은 75.8%을 기록했죠. 기존 통념은 ‘투표율이 높을수록 야당이 유리하다’는 것. 그래서 낮 한때, 문재인 후보가 승리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렸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죠. 17대에서 18대 대선으로 넘어오는 4년 사이 20~30대 유권자 비중은 44%에서 38.2%로 줄어든 반면, 50대 이상의 비중은 33.5%에서 40%로 늘었기 때문입니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젊은 세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더 어려워진다는 뜻이고, 우리가 지지하는 정당을 특정한 뒤 그들이 승리하도록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내 편, 네 편이 없다면 젊은 세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캐스팅 보트를 꽉 쥐는 것입니다. 완승이 어려우니 둘 다 우리의 눈치를 보도록 만드는 거죠.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그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최고의 수단이 바로 투표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귀찮아도 신분증을 챙겨서 투표장에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당하고도 아무 것도 안 한다면, 이 때의 무관심은 좀 거칠게 말해 ‘악(惡)’입니다. 관심이란 거, 별 거 아닙니다. 투표. 투표. ‘기승전투표’입니다.

이제껏 젊은층은 주로 야당(새정치민주연합 등)을 지지했습니다. 20대 총선에서도 그래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 누가 이기든 상관없거든요. 누가 하든 당장 젊은 세대의 처지가 나아질 리 없습니다. 핵심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기성 정당에 투표의 힘을 보여주는 겁니다. ‘우리도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겁니다. 투표율이 지난 총선에 비해 5~10%포인트 정도만 오르면 여야 모두 엄청난 공포에 휩싸일 겁니다. 그래야 다음부터라도 제대로 대접을 받겠죠.

20~30대 투표율 5%만 오르면 여야 모두 공포감

더 중요한 건 ‘된다는 걸’ 확인하는 겁니다. 투표하니까 바뀌는구나, 참여하니까 반응이 오는구나 하는 걸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청년의 지분을 스스로 입증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음 단계란 20~30대의 삶 속에 누적된 불만과 개혁 의지를 끌어내고, 에너지를 결집시킬 청년 정치세력, 즉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젊고, 의지가 있다는 리더들조차 각 정당에서 활동합니다. 아니면 정치색을 띈 시민단체 소속이거나. 청년들의 권익을 대변할 정치 환경이 이토록 빈약한데 20~30대 오피니언 리더의 상당수가 기성정당의 울타리 속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프레임 전쟁에 찌들 대로 찌든 바로 그 정당 말입니다. 그중 일부는 비례대표라도 받아 금뱃지를 답니다. 하지만 어차피 4년 뒤엔 공천의 노예가 될 겁니다. 지역구 하나 잡아볼까 기웃거리는 기성 정치인으로 전락하는 거죠. 혹 당선되면 상임위를 다른 곳(청년과 전혀 무관한)으로 옮길 것이고, 대부분은 선거철 총알받이 역할을 하다 사라질겁니다.

지난 기사에서 청년들이 ‘가운데’서 만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성세대에게서 학습 받은 좌우 이념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가운데’란 보수와 진보 사이에 서 있다는 의미에서의 ‘중도’와 다릅니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가운데입니다. 이 분열된 정치 지형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 낼 미지의 공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와도 연대할 수 있습니다.

주식회사 형태 ‘크라우드 정당’ 만들어야

우리의 지지층은 보수도 진보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의 구분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무당파가 아니라, 사안에 따라 지지 정당을 바꿀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정치 공학적으로 보면 고정 지지 기반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입니다. 절대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어디든 왔다 갔다 자유롭고, 입체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물론 이 ‘가운데’ 는 험로(險路)일 게 분명합니다. 본질적으로 ‘가운데’는 무관심을 수반합니다. 조직화가 쉽지 않습니다. 추진력을 얻기 어렵겠죠. 더구나 이 나라에선 보수나 진보가 아니면 ‘철새’ 또는 ‘회색분자’로 불릴 게 뻔합니다. 아무리 수평적 의미의 ‘중도’와 다르다고 해봐야 안 먹힐 테고,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을 할 때마다 양 극단에선 화살이 쏟아질 겁니다.

실제로 중도 실험을 했던 많은 정치인과 학자들이 이런 비난에 밀려 처절한 실패를 맛봤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실패한 건 보수와 진보 사이에 자신들의 땅을 세우려 했기 때문이고, 이 두터운 양당 체제를 무너뜨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1차 목표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을 3등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양당이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귀 담아 듣도록 만드는 겁니다.

‘청년당(당연히 정당명은 다를 수 있습니다)’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의미를 살리려면 구체적인 정당 운영 방식도 기성 정당과 달라야 할 겁니다. 제가 제안하는 건 주식회사 형태의 ‘크라우드(Crowd) 정당’입니다. 물론 이 제안은 정당법·선거법 등과 상충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 법 체계 안에서 정당을 만들어 봐야 친반연대·거지당 밖에 못 만듭니다. 우리의 시도는 이 틀 밖에서 이뤄져야 하고, 필요하다면 ‘법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일단 1000명이든 1만명이든 모여 정당을 만듭니다. 이들은 당원이자 주주가 됩니다. 당연히 투자를 해야 합니다. 1주당 10만원씩 1000명이 모였다고 치죠. 자본금 1억원짜리 정당이 하나 만들어집니다. 10주~100주를 사도 됩니다. 당연히 지분율은 늘어나겠죠. 단, 의결권(투표권)은 제한됩니다. 10만원을 내든 1000만원을 내든 똑같이 한 표입니다. 자본이 정당을 지배할 수 없도록 막는 동시에 가짜(청년당의 뜻과 반하는 사람이 고의로 당원이 되려 하는 경우)를 걸러내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청년당에서 지분율은 ‘실질적 권리’라기 보단 ‘명예’의 개념입니다. 저는 그럼에도 청년당에 힘을 실어줄 선의의 후원자가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꼭 20~30대만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청년당의 목표에 공감하는 사람, 누구든 괜찮습니다. 정당의 운영비는 매년 내는 당비로 충당하고, 당의 규모가 커진다면 증자(추가 당원 모집)도 가능합니다.

당원의 투표를 통해 일정 인원의 당원대표기구(이사회)를 꾸립니다. 매년 12월 전당대회 개념의 당원회의를 개최합니다. 체육관 빌려 모일 필요 없습니다. 온라인투표를 하면 됩니다. 선거에 나설 사람도 필요합니다. 청년당의 1차 목표는 비례대표 의원의 배출입니다. 비례대표로 누구를 공천할지는 당원대표기구가 결정하지 않습니다. 비례대표 공천의 주체는 당원과 일반 국민입니다. 여기서의 선택 수단이 바로 ‘크라우드 펀딩’입니다. 후보자마다 하나의 상품이 되는 건데 자신의 비전과 정치인으로서의 활동 계획을 내놓고 후원을 받습니다.

가장 후원을 많이 받은 사람이 비례대표 1번이 됩니다. 단, 사업 아이템에 투자하는 일반적인 크라우드 펀딩과는 다릅니다. 투자지만 돌려받길 기대하는 투자가 아니라, 모금에 더 가깝습니다. 비례대표 후보가 되려면 일정 목표액을 달성해야 합니다. 여기에 못 미치면 후보가 될 수 없고, 목표액에 미달하는 모금액은 투자자에게 돌려줍니다. 목표 기준액이 ‘1억원’이었다고 치죠. ①~⑤순으로 후원금이 많았는데 각각 5억~1억원이었습니다. 그러면 총 모금액은 15억원. 이 돈으로 선거를 치릅니다.

청년당의 핵심은 투명성입니다. 수백 억원의 국고보조금을 지원받고도 사용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감사조차 받지 않는 기성 정당과 달라야 합니다.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된 만큼 스스로 외부 감사를 받습니다. 정당 운영비와 후원금 사용내역, 선거 비용 등을 매달 홈페이지에 공개합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외부 감사를 받습니다. 국민이 고귀한 돈을 모아 정치에 투자하는데 이 정도는 당연합니다.

당원대표기구의 활동 내용 역시 외부의 평가를 받습니다. 평가는 객관적인 외부 시민단체와 당내 감사기구가 공동으로 합니다. 이들이 개인별, 기구별 활동을 평가하는 겁니다. 비례대표라면 법안 발의 건수와 내용, 그 결과까지 포함됩니다. 이 평가 내용은 다음 당원대표기구 멤버를 뽑고, 비례대표 후보를 선정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평가 기구의 전문성과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이 부분은 좀 더 보완이 필요할 겁니다.

‘무기력한 삶’ 내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면…


비현실적이라 말할 수도, 몽상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이 구상이 이뤄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어떤 형태여도 괜찮습니다. 20~30대가 일어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지금처럼 앉아서는 안 됩니다. 일단 투표를 하러 가야 합니다. 주머니에서 100원이든 10만원이든 꺼내야 하고, 귀한 시간도 투자해야 합니다. 청년 정치가 자리를 잡으려면 많은 사람의, 장시간의 노력이 투하돼야 합니다.

세상이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80% 이상인데, 세상이 나아질 거라 믿는 사람은 20%가 안 됩니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그 어떤 세대보다 많이 배웠습니다. 지식인이 넘치는데,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들 저 살기 바쁩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내버려둔 채 미래를 이야기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생산적이지도 않거니와, 좋은 결과가 나올 리도 없습니다. 참여가 너무나 절실합니다. 무기력하고, 정체성도 없는 이 나약한 삶을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물려줘선 안 됩니다.

모두 함께 ‘우리만의 정치’에 발을 담글 때가 됐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도 곧 늙을 겁니다. 부인하고 싶겠지만 지금의 절망과 분노를 잊고 서서히 세상에 젖어 들겠죠. 사회의 룰에 적응하고, 이 세계의 구조적 결함보단 내 집, 내 새끼의 문제에 집착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예전 ‘꼰대’라 그토록 욕했던 그 모습을 거울 앞에서 발견하게 되겠지요. 무언가 바꿔야 한다면 바로 ‘지금’입니다.

- 장원석 기자

1317호 (201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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