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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어디로 | 구조조정 회오리] 재계 화두는 ‘긴축경영·구조조정’ 

사업 재편-인력 감축 이미 시작 … 정부도 구조조정 압박 

2016년 대한민국 산업계의 화두는 긴축경영과 구조 조정이 될 전망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235개사를 대상으로 ‘2016년 최고경영자 경제전망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2.3%가 내년에 ‘긴축경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현상 유지’는 30.2%, ‘확대 경영’은 17.4%에 그쳤다. 구조조정 칼바람은 시간이 갈수록 매서워지고 있다 이미 사업 재편과 인력 감축에 나서는 기업이 늘고 있고,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정부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구조조정은 조선·해운·철강·건설·석유화학 등 이른바 취약 업종을 넘어 전 산업으로 확산할 조짐이다.

조선·해운·철강·건설·석유화학 ‘휘청’


한국 경제를 이끌던 주력 산업은 어느 하나 성한 게 없다. 특히 중후장대형 산업은 벼랑 끝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스신용평가가 산업별로 신용등급 변동을 분석한 결과 조선업종이 마이너스 75%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기업 대비 등급이 오른 곳과 낮아진 곳의 차이를 산정, 해당 업종 신용등급의 상대적인 방향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외 하락 성향은 정유 25%, 석유화학 21.4%, 종합건설 17.9% 순으로 높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나이스신용평가 관계자는 “올해 신용등급을 낮춘 기업 31곳 가운데 건설과 조선·석유화학·철강·정유 업종 등 이른바 취약 업종에 속한 기업이 19곳으로 전체의 약 40%에 달한다”고 말했다.

한국신용평가의 평가도 비슷하다. 2015년 상반기에만 포스코·SK에너지·GS칼텍스·현대중공업·삼성정밀화학·포스코건설·대우조선해양·동국제강·삼부토건·동부메탈 등 철강·정유·조선·건설 분야에서 취약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락이 이어졌다.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데 글로벌 경기 둔화, 중국 경쟁 업체의 성장 등 불리한 환경이 이어지며 경영 실적이 악화돼서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산업을 재편하라고 권한다. 무디스의 크리스 박 이사는 “한국의 경제 규모를 봤을 때 건설이나 화학 등 일부 산업에서는 시장 참여자가 너무 많다”며 “영업 환경이 악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숫자를 줄여나가는 것이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바람은 중소기업에 더욱 차갑게 불어 닥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중소기업의 신용위험평가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다.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지만 정부 지원과 대출을 통해 연명해온 이른바 ‘좀비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고삐를 더 죄겠다는 각오도 여러 번 밝혔다. 불똥은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에도 튀었다.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규모에 관계없이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올해 중소기업 구조조정 대상 선정 때 적용했던 신용위험평가 기준을 2016년에도 적용할 방침”이라며 “시중은행들이 충당금을 추가로 쌓아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경제 위기에 선제 대응한다는 기본 방침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신용평가 기준도 더욱 깐깐해졌다. 기존 기준은 3년 연속 적자,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 대비 금융이자 비율) 1 미만, 자산 건전성 요주의 등급이었다. 여기서 압박 수위를 높여 취약 업종에 대해서는 연속 적자 기준을 3년에서 2년으로 줄였다. 2015년 말 기준 금감원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분류한 중소기업은 모두 175개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래 가장 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의 도마에 올랐다. 2014년에는 125개였다.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대상에 오를 대기업 명단에도 이목이 쏠린다. 금감원은 중소기업과 달리 대기업 평가 방식에는 변화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이 기간산업 경쟁력 제고에 나선 만큼 퇴출 대기업이 잇따라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감원은 지난 6월 정기 신용위험평가를 거쳐 대기업 35곳을 구조조정 대상으로 추렸다. 또 11월부터 수시 신용위험평가를 진행, 추가 대상을 선정할 예정이다. 과거 연도별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대기업은 2012년 36개, 2013년 40개, 2014년 34개였다. 금감원 기업금융개선국 관계자는 “기준에 변화가 없다고 해서 대기업을 봐준다는 외부의 시선은 잘못된 것”이라며 “매년 채권은행들이 대기업 구조조정 절차를 밟아 나가는지 평가하고 개선계획 불이행 때 수시평가 등을 통해 조치하도록 철저히 지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좀비기업 비율이 전 산업에서 15%에 달한다”면서 “특히 조선·철강·해운을 중심으로 3년 연속 좀비기업이 늘고 있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선제 구조조정 사례로 삼성그룹을 꼽았다. 김 원장은 “삼성은 화학 부문을 팔고 바이오에 진출한다든지 하며 구조조정을 활발히 하고 있다”면서 “문제는 그렇지 않은 기업들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자산 매각 등을 통한 고통이 수반되는 구조조정이라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좀비기업은 솎아내야

정부의 구조조정 압박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다. 기준이 불분명한데다 정량화되지 않은 부분에서는 주관적 평가가 개입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한번 C등급을 받으면 기업으로서는 큰 타격을 받는데다 다시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도 쉽지 않다. 공정성 시비를 없애기 위해 기업 평가 기준을 명확하게 공개하고,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재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소명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에 정부 당국은 지금도 평가 과정에서 해당 기업의 소명 기회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단 결과가 나오면 이의 제기가 어렵다. 지금처럼 중간 심사 과정에서만 소명 기회를 주는 것으론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등급 공개 후에도 소명 절차나 이의 제기를 할 수 있어야 정부가 구조조정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기홍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기업금융팀장은 “C등급은 정상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 기업이지만 일단 시장에 명단이 알려지면 채권단이 돈을 회수한다”면서 “이렇게 되면 도미노 회수로 이어져 멀쩡한 기업도 버티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이미 C등급조차 부실기업 낙인을 찍는 조짐이다.

정부 방침은 명확하다. 2016년 내내 구조조정을 강행할 계획이다. 정리해야 할 기업이 버티는 탓에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해서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기업 수 대비 창업 기업을 뜻하는 진입률과 기업 수 대비 폐업을 뜻하는 퇴출률이 각각 20%를 웃돌았지만 2015년 들어 5~10% 선으로 떨어졌다. 정부 관계자는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아 금융권 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들은 자구방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시장 원칙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 조용탁 기자 cho.youugtag@joins.com

1317호 (201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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