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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다양한 시나리오로 계획 세워라 

대세의 흐름부터 살펴야 ... 무산 가능성 염두에 두고 ‘때’ 기다려야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사진:중앙포토
새해를 맞아 많은 사람이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각오를 다졌을 것이다. 올해는 어떤 계획과 목표를 세워 무엇을 이룰 것인가? 세상의 변화가 워낙 심해 1년 전에 세운 계획이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계획을 세우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비즈니스에서는 특히 계획이 중요하다. 그래서 경영학 책의 앞 부분에 ‘계획화(planning)’라는 부문이 나온다. 단기 계획과 중장기 계획, 부문별 계획 등 계획의 종류도 많다. 이런 계획을 잘 세워야 회사 경영이 원활해질 것이다. 바둑에서 고수들은 어떻게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지 알아보자.

◇계획 없는 운영 = 크든 작든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누구나 계획을 갖고 경영을 한다. 계획 없이 되는 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업가들이 모두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우는지는 의문이지만, 사업에서 계획이 필수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계획이 없는 사람은 계산이나 전략이 없는 사람이다. 바둑경전인 『기경13편』에서는 ‘계산이 없이 싸우는 사람은 닥치는 대로 마구하는 지략이 없는 자’라고 표현한다. 계획이 없이 닥치는 대로 대처하는 사람은 이기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한편, 뜬구름 잡는 계획을 세우는 사람도 목표를 달성하기가 힘들다. 대박심리에 젖어 가능성이 별로 없는 계획을 장밋빛으로 물들이는 사람이 여기에 속한다. 주어진 상황과 이용 가능한 자원 등을 고려한 현실적인 계획을 세워야 목표에 이를 수 있다. 바둑에서는 계획을 어떻게 세울까.

[1도]는 예전에 강펀치로 불린 오히라 9단과 면도날로 불린 사카다 9단이 둔 바둑이다. 흑과 백이 착실하게 실리를 취하며 차분하게 포석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사카다 9단은 백16에 다가서 백A로 상변 흑진에 뛰어들 계획을 세운다. 하수들은 백16으로 즉각 A에 뛰어들지도 모른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이권을 탐하는 행동이지, 계획이 아니다. 반면에 고수들은 시나리오가 있는 계획을 세운다. 백A로 들어갈 경우 어떤 시나리오가 벌어질 것인지를 예상하고 계획을 세운다. 그 시나리오가 잘 들어맞을 수 있도록 시기를 조정한다. 이 시점에서 사카다 9단은 직 시기가 아니라고 보아 일단 백20에 벌려 하변의 영토를 개척한다. 우선 하변에 집을 건설하려는 생각이다. 이렇게 보면 백은 두 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는 셈이다. 하나는 하변의 영토건설, 다른 하나는 상변 흑진에의 침입작전이다. 백은 이 두 가지 계획 중 하나만 달성되어도 성과가 나쁘지 않다. 하변에 큰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수익 면에서 나쁘지 않다. 만일 이곳에서 성과가 적으면 상변에서라도 소득을 올려야 한다. 그래서 백은 이곳을 두면서도 A쪽의 침입계획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다. 흔히 고수들은 다른 지역에서 일을 벌이면서도 핵심이 되는 목표 지역을 머릿속에 둔다.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이 목표 지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계속 모니터한다.


◇계획은 무너지기 쉽다 = 수많은 계획은 뜻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수가 많다.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나와 변화를 부르기 때문이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를 계획했다가 메르스 사태로 취소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벤트 계획을 믿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큰 낭패였다. 계획이 무너지는 것은 바둑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세운 계획은 상대편의 태도에 따라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착각이나 잘못된 판단에 의해서도 계획이 일그러진다.

[2도]를 보자. 사카다 9단의 제1 계획은 하변에 영토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사가 생각한 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흑1로부터 두어오고 흑백이 서로 대응을 한 끝에 흑15까지 진행되었다. 이 결과를 보면 하변에 백집을 건설하려는 계획은 무산되고 오히려 흑집이 생겨났다. 백의 영토건설 계획은 보기 좋게 깨어진 모습이다. 이렇게 된 것은 백이 다른 가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하변의 영토건설 대신 왼쪽에서 실리를 얻어낸 것이다. 일종의 딜이라고 할까. 그렇지만 백이 망한 것은 아니다. 왼쪽에서 소득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염두에 두고 있던 상변으로 갈 찬스가 생겼기 때문이다. 계획이란 이처럼 깨어질 수 있으므로 그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한 번 계획을 세웠다고 그것을 악착같이 고수하려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상황 변화에 따라 신축성 있게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궁극적 목표 달성 = 계획은 주변의 사태 등 여러 가지 변수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이런 가변성을 인정하더라도 전반적으로는 계획이 어느 정도 달성되어야 한다. 계획을 추진했는데 아무런 성과가 없다면 참으로 허망한 일이 아닌가. 궁극적으로 계획했던 목표를 달성하려면 환경의 흐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원래 계획을 세울 때 세상의 흐름을 고려하여 구상했을 것이다. 바둑에서는 ‘대세의 흐름’이라고 한다. 이러한 흐름에 큰 변화가 없다면 계획대로 일을 추진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3도]에선 백1의 침입이 기다리던 대망의 요소다. 이곳에 뛰어들어 7까지 움직여 나간다면 백의 전반적인 계획은 성공이다. 흑의 영역을 깨뜨린데다, 왼쪽 흑돌을 공격하며 나아갈 수 있어 백의 이익이 적지 않다. 결국 이 요점을 둘 수 있어 백의 작전은 계획대로 되었다고 평할 수 있다. 실전에서 백은 이 부분 접전을 잘 처리해 승기를 잡았다. 이곳에 침입할 계획을 세우지 않아 흑에게 집을 짓도록 허용했다면 백의 승리는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바둑에서는 계획을 때맞춰 잘 실천해 성공적인 결과를 얻게 되었다.

바둑에서의 계획화를 알아보았다. 고수들은 계획을 시나리오로 구상하며, 그것을 실현할 적기를 기다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계획은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 항상 무너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계획의 무산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세상의 흐름을 잘 살펴서 궁극적인 계획이 달성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318호 (201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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