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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학술상 수상 6人의 박근혜 정부 3년 진단] “너무 많은 걸 하려다 아무것도 못 했다” 

6명 모두 3%대 성장률 목표 ‘부정적’ … “3기 경제팀 할 수 있는 것만 집중해야”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이 지났다. 정부의 바람과 달리 한국 경제는 살아날 조짐이 없다. 오히려 더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박근혜정부 3년을 어떻게 평가할까. 본지는 한국판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로 불리는 ‘청람학술상’ 역대 수상자 6인에게 박근혜정부 경제정책 평가를 문의했다. 경제 현안과 진단·대안도 함께 들었다.

“한국 경제 침체의 근본 원인은 정치·문화·제도·체제의 문제다. 그러나 아직도 정부와 정치권은 무엇이 근본 원인인지 모르는 것 같다. 풀어야 할 문제는 달라졌는데 관성과 경로 의존에 빠져 처방은 예전과 동일하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김 교수는 2005년 청람학술상 수상자다. 청람학술상은 한국경제학회가 매년 가장 뛰어난 연구 성과를 보인 만 45세 미만의 경제학자를 선정해 시상하는 상이다. 1983년부터 지난해까지 38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본지는 2000년 이후 청람학술상을 받은 경제학자 중 6명에게 박근혜정부 경제 정책 평가와 경제 현안 진단을 문의했다. 신관호(고려대, 2001년 수상)·김재영(서울대, 2003년)·김병연(서울대, 2005년)·김소영(서울대, 2006년)·서병선(고려대, 2007년)·성태윤(연세대, 2014년) 교수다.

이들은 지난 3년 간의 박근혜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모두 평점 ‘C’ 이하를 줬다. ‘못한 것도, 그렇다고 잘한 것도 없다’는 평이 많았다. 김재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다양한 정책을 제시했고 정책의 방향 면에서 맞았다”면서도 “정치권의 부조화와 갈등, 허약한 리더십과 정부부처 간 유기적 협력체계의 부재 등으로 정책의 실행은 크게 실망스럽다”며 평점 ‘C-’를 줬다. 김병연 교수는 ‘C’를 매겼다. “큰 실책은 없지만 크게 성공한 정책도 없고, 구조개혁이 필수적이었는데 큰 진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간에 이루기 어려운 너무 많은 것을 동시에 이루려 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외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부분은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 초기 모멘텀을 갖고 정책 방향을 추진할 수 있었던 중요한 시기를 명확한 방향성 없이 보냈고, 이후 국제 여건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정책 대응 효과가 떨어져 있다”고 밝혔다.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와 서병선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각각 평점 C, D를 줬다.

“디플레이션 가능성 작아” vs “이미 디플레 진입”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3%대를 달성할 가능성에 대해선 6명 모두 부정적이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월 19일 열린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올해 3%대 경제성장은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고 말한 것과 대비된다. 서병선 교수는 “국내 제조업의 매출·이익 감소가 계속되고 있고 민간 소비와 설비 투자 위축, 주요 산업의 대외경쟁력 약화로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병연 교수는 “구조적 침체에 더해 미국 금리 인상과 중국 경기 하강 요인 등 지난해보다 부정적 요인이 더 많다”고 진단했다. 김재영 교수는 “해외 여건의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큰데,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국내 리더십이 허약하다”고 진단했다.

수출 전망도 회의적이다. 서병선 교수는 “국내 제조업의 매출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올해도 호전될 가능성은 작다”고 봤다. 서 교수는 또한 “주요 산업의 대외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고 주요 교역국인 중국 경제 상황도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성태윤 교수 역시 “엔저 등으로 국내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어 교역 상황의 개선이 힘들다”고 진단했다. 김소영 교수는 “세계 경기가 교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데, 경기 부진으로 교역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했다. 성태윤 교수는 “국내외적인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확장적 재정정책뿐 아니라 통화정책, 구조개혁 등 전방위적인 경기 회복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조언했다. 김재영 교수 역시 “확장적 재정정책은 필요하다”며 “다만 정책의 내용을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소영 교수 역시 “정부 재정수지와 부채를 악화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확장적 재정정책은 사용 가능하다”고 했다. 서병선 교수는 “불필요한 지출이나 사업은 억제해야 하지만 원론적으로 확장적 재정정책은 민간 소비와 기업 투자를 대체하는 효과를 갖는다”며 “특히 민간이 수행하기 어려운 교육·연구개발 분야의 재정 지출은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병연 교수는 “구조적 침체 국면에서 경기 부양은 제한적 효과만 있다”며 “현재로서는 재정 여력이 있지만 재정 적자가 누적되면 대외 충격에 더욱 취약해 질 것”이라고 반대 의견을 냈다.

“미국 금리정책과 보조 맞춰야”

‘디플레이션 우려는 기우’라는 한국은행 입장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했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는 “아직까지는 디플레 리스크가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김소영 교수는 “당장 디플레이션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인플레이션율을 타깃 수준으로 올리기 위한 지속적인 정책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병연 교수는 “디플레이션은 총공급이 감소해야 일어나는 현상인데 현 상황에서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교수는 “저성장이 스태크네이션(경기 정체 또는 침체)으로 이어진다면 디플레이션이 유발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서병선 교수는 “민간소비와 설비투자의 둔화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는)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작더라도 이에 대한 준비와 대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교수 견해는 달랐다. 성 교수는 “디플레이션은 이미 시작돼 상황이 악화하고 있고 이러한 효과가 실물 경기 부진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성 교수는 또한 “생산자물가를 중심으로 생산 측면뿐 아니라 소비자물가 역시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이는 일시적인 공급 충격이 아닌 심각한 수요 감소에 기인한다”며 “(한국은행이) 정책 대응에 이미 실기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기준금리 딜레마에 빠진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미국 금리정책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김재영 교수는 “미국의 금리정책 변화와 유럽·일본 등의 확정정책 추이를 지켜보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해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병선 교수는 “국내 상황이 호전되지 않고 있어 기준금리를 인상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특히 “(한국은행의) 금융 안정에 대한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봤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보다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주문했다. 성 교수는 “정책대응 실기로 인해 이미 실물경기가 상당히 악화하고 있어 보다 적극적인 경기대응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제로금리까지 갈 수 있다는 자세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렸다. 3명은 정부 개입은 적절치 않다고 봤다. 2명은 조건부 개입을, 1명은 적극 개입을 주문했다. 김소영 교수는 “무리한 환율 시장 개입은 오히려 외환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환율을 정책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자본 유출입이 자유롭고 방대한 현 상황에서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적절한 환율 스무딩(미세조정)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재영 교수는 “정부가 외환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제반 사항을 고려할 때 적절치 않다”면서도 “다만, 중장기적인 환율 변화에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인지는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반면, 성태윤 교수는 “현재 경상수지 흑자는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로서 이를 방치하면 경기 침체가 더욱 심화하고 기업 수익성 악화로 수출뿐 아니라 내수도 하강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성 교수는 “따라서 금리 인하를 포함한 완화적인 통화정책과 함께 원화가 경쟁국가의 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세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 추가 하락 막는 게 최선”

6명의 경제학자는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3기 경제팀에 대해 쓴소리를 아까지 않았다. 김재영 교수는 “정치권의 협조를 구하고 더불어 경제 부처가 공조체제를 업그레이드하는 일이 중장기적으로 경제부총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문제 해결의 우선 순위를 다시 점검하고 행정력을 순차적으로 현명하게 집중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3대 개혁의 성공적인 완수, 민간경제의 활력을 저해하는 규제의 개혁, 경제부처와 한국은행 등 정책당국 간의 긴밀한 협조를 주문했다. 김병연 교수는 “불평등이 커지거나 지속하면 장기적으로 경제와 성장에 해를 끼친다”며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복지와 성장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시간이 없기 때문에 구조개혁 성과를 거두기 어렵겠지만 그 방향은 잡아야 할 것”이라며 “남은 정부 임기 동안에 규제 완화, 특히 미래 먹거리 산업에 불필요한 규제를 푸는 것에 집중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성태윤 교수 역시 “지금은 새로운 것을 추진하기보다는 기존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게 더 나은 상황이며 위험관리에 초점을 두고 경기 추가 하강을 막는 것이 최선”이라고 밝혔다. 김소영 교수는 “거시건전성·재정·금리·외환정책 등의 조화로운 운용이 필요하다”며 “각 정책의 주요 역할과 한계를 명확히 이해하고 전체적인 거시경제 상황과 금융 안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책을 운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박스기사] 청람상 6人 ‘자유발언’ 들어보니 | 정치 불안과 정부 무능이 또 다른 리스크


본지는 6명의 경제학자에게 공통 질문 외에 한국 경제를 위해 특별히 제안하고 싶은 의견이 있는지 물었다. 임기가 2년 남은 박근혜정부가 새겨야 할 말이 많았다. 김재영 서울대 교수는 “어려운 경제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단순한 경제원리와 단편적 상황 인식에 근거한 급조된 정책 수립과 시행은 피해야 한다”며 “특히 정치논리에 따른 정책 수립은 절대 금물”이라고 말했다. 또한 “민간·공공 부문의 긴밀한 협력체제, 부처 간 공조체계, 정치권의 협조체제를 복원해야 하다”고 강조했다.

서병선 고려대 교수는 “산업경쟁력 약화, 인구 고령화, 가계부채, 불평등 심화 등 어려운 숙제가 늘고 있다”며 “이런 문제에 대해 장기 비전을 갖고 국민과 소통하는 지도층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태윤 교수는 “한국 경제는 매우 심각한 하방 압력을 받고 있으며 이를 저지하지 못할 경우 장기적인 경기 침체의 구조화와 함께 금융시장 불안이 커질 가능성에 노출돼 있다”고 우려했다. 성 교수는 “따라서 정책당국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거시적인 위험을 관리해 경기의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2016년 한국 경제의 외부 위협요인에 대해선 중국 경제 둔화와 미국 금리 인상, 신흥시장 불안, 중국 제조업의 추격, 엔저 등을 꼽았다. 내부 위협 요인으로는 가계부채 문제, 한계기업 증가, 소득 불평등, 낮은 인플레이션율, 주요 산업 경쟁력 약화, 주택시장 불안 등을 지목했다.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위협 요인에 가려 간과되는 리스크에대해서는 ‘정치와 정부’를 꼽은 학자가 적지 않았다.

김병연 교수는 “전반적으로 정부 역량이 정체 혹은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병선 교수는 “정부의 사회통합력 약화와 불평등 심화”를 꼽았다. 성태윤 교수는 “정치적 이벤트를 앞두고 경제 정책이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영향 받는 상황”을 우려했다. 김재영 교수는 “정부 곳곳에 만연해 있는 무기력과 불감증의 근저에는 국가 중추기능을 담당하는 정부 및 주요 공공기관이 대책 없는 지리적 분산으로 흩어져 있어 발생하는 비효율과 고비용 문제가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1324호 (201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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