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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져 봅시다 | 저유가는 과연 악재인가] 중국발 악재 없다면 분명히 호재 

소비·생산에 플러스 효과 … 저유가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 

백우진 한화증권 편집위원 woojinb@hanwhawm.com

summary | 저유가에도 세계 경제와 그 위에 떠 있는 한국 경제에 좀처럼 활기가 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이제는 유가 하락의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고 현재 저유가는 신흥경제국발 역풍을 맞고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 경기 둔화라는 강한 맞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는 저유가의 해류를 따라 순항하고 있으리라는 말이다.

“한 경제학자가 전력 공급의 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이렇게 계산했다. 그는 전력 부문이 그 나라 국내총생산(GDP)에 약 3% 기여한다며 1년 동안 전체 전력공급망의 절반이 정전사태를 겪더라도 GDP 성장률이 입는 타격은 1.5%포인트에 불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사모펀드 칼라일 그룹의 제이슨 M. 토머스 리서치 디렉터가 던진 농담이다. 토머스 디렉터는 2월 중순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에서 이 농담에 빗대 ‘원유와 가스 부문이 미국 GDP의 2% 밖에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저유가가 경제 전반을 끌어내리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을 반박했다. 그는 “경제활동은 전력에 엄청난 정도로 의존한다”며 원유에 대해서도 비중만으로 중요성이나 영향을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토머스는 이 기고를 통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쟁에 뛰어들었다. 논쟁의 한쪽 진영은 그처럼 큰 폭 하락한 원유 가격이 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본다. 반대 편에서는 낮은 유가는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토머스는 반대 진영에 서서 발언한 인물로 리처드 브랜슨 영국 버진그룹 회장을 지목했다. 브랜슨 회장은 앞서 1월 말 CNBC방송에 나와 “저유가는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대부분의 산업, 특히 항공산업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배럴당 30달러를 밑도는 유가가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는 경기 침체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며 “저유가로 모두의 소비 여력이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식시장은 토머스가 가담한 진영의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 주가지수는 원유 가격이 큰 폭 떨어지면 기겁하며 급락하고, 유가가 오르면 안도하며 상승하는 양상을 반복하고 있다. 2월 12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29.44달러로 12.3% 급등했다. 이에 힘입어 이날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 지수는 2.0% 상승했다. 주말이 지나고 열린 15일 주식시장에서 코스피 지수는 1.5% 올랐다. 이날 닛케이225 지수는 7.2% 급등했다. 이와 달리 2월 23일에는 유가가 떨어지자 주가도 함께 하락했다. 이날 WTI가 배럴당 31.87달러로 4.6% 급락했고 S&P500 지수는 1.3% 하락했다. 24일 열린 국내 주식시장에서 코스피 지수는 이에 영향을 받아 하락 출발했고 장중 심하게 출렁이다 약보합으로 선방했다.

주가지수, 유가에 동조해 등락

주가가 유가 하락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떨어지자 주식시장에서는 세계 경제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 위기에 이어 3차 위기에 빠지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확산됐다. ‘유가 충격의 감춰진 위험’이라는 제목이 달린 토머스의 기고가 WSJ에 실린 게 이 즈음이다.

칼라일 그룹의 토머스를 비롯한 저유가 위험론자들의 논리는 무엇일까. 이들은 기업과 산업의 생산활동이나 매출이 서로 엮여서 일어나고, 따라서 한 구석의 지출 증가가 다른 쪽 지출에 영향을 주는 관계를 강조한다. 한 산업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 새로운 생산설비 투자가 위축되고 이는 다른 산업의 주문 감소,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

토머스는 가계지출이든 투자지출이든 변동성이 큰 항목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유가 하락 충격에 금속·원자재 가격 하락이 더해지면서 자본재와 중간재 주문이 급감했는데, 이는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증감폭이 커서 경기 변동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고 분석한다. 그는 2008년 생산설비 구매액은 GDP의 불과 6%였지만 2009년 GDP 위축분의 절반 가까이가 이 금액 감소에 기인했다고 사례를 든다.

이에 맞서 저유가가 글로벌 경제에 득이 된다고 반박하는 측은 “경제학의 법칙은 유효하다”며 “저유가는 과거에 그랬듯이 세계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주장은 최근 보험금융회사 알리안츠의 미카엘 하이제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내놓았다. 하이제는 상대편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인다. 낮은 유가로 원유 생산업체의 수익이 크게 줄었고, 이는 관련 투자 삭감으로 이어진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원유 수출국의 총수요도 위축되고 있다고 인정한다.

그는 그러나 이 대목에서 ‘비중’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유 생산업체와 산유국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고, 기업과 국가의 대부분은 원유를 소비하고 수입한다는 것이다. 토머스가 ‘비중’의 의미를 축소한 반면 하이제는 ‘비중’에 따라 영향을 분석해야 한다고 보는 셈이다.

유가 하락은 소비 여력 확대, 원가 절감에 따른 기업 이익 증가, 해외 수요 성장, 경상수지 개선 등을 통해 경기부양 효과를 낸다. 이 가운데 소비지출은 저유가로 얼마나 늘어날 수 있을까.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014년 6월 이후 유가 하락 덕분에 미국인이 휘발유 비용을 가구당 평균 700달러 절감하게 됐다고 계산했다. 금융회사 JP모건체이스는 미국인이 유류 지출 절감액 가운데 80% 정도를 소비지출에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JP모건체이스는 신용·직불카드 사용자 2600만 명의 결제를 분석한 결과 1인당 휘발유 지출액은 월 101달러에서 79달러로 22달러 줄었다. 조사는 2014년 1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3개월과 이보다 1년 전의 같은 기간에 이뤄졌고 두 기간 사이에 유가는 평균 30% 하락했다.

저유가의 효과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뚜렷하게 나타났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시장 장악력을 키우기 위해 생산량을 늘려 당시 유가는 배럴당 10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한국 경제는 저유가에 저금리와 저물가가 더해져 1986~1988년 연 12% 성장하는 이른바 ‘3저 호황’을 누렸다. 하이제는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과거 저유가 시기처럼 경기가 부양되는 힘을 받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유가 하락 덕분에 세계 경제성장률이 2014~2015년에 연 0.75% 이상 더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토머스의 주장 중 원유가 전력처럼 경제에 긴요하다는 대목은 맞지만 유가 하락을 정전사태로 비유한 부분은 논리적이지 않다. 유가 하락은 정전이 아니라 전기료 인하에 해당한다. 전기료가 인하되면 전력회사는 수익성이 저하되지만 전기를 쓰는 경제 주체는 모두 지출이나 비용이 절감되는 이득을 얻는다.

연 0.75% 이상의 경제성장률 플러스 효과

그렇다면 저유가에도 세계 경제와 그 위에 떠 있는 한국 경제에 좀처럼 활기가 돌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이제는 유가 하락의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고 현재 저유가는 신흥경제국발 역풍을 맞고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 경기 둔화라는 강한 맞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는 저유가의 해류를 따라 순항하고 있으리라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세계 경제에서는 중국의 떨어지는 힘이 우세한 가운데 저유가의 띄우는 힘이 이에 맞서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경제가 연착륙할 경우 저유가가 생산 및 소비활동에 골고루 스며들어 경제가 힘을 내도록 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OPEC이 감산에 합의해 유가가 반등할 경우 새로운 판에서 다시 전망해야 한다.

- 백우진 한화증권 편집위원 woojinb@hanwhawm.com

1326호 (201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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