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원샷법-상법 개정안’ 활용한 대기업 사업재편 시나리오] 삼성·현대重 부실 계열사 교통정리 쉬워져 

현대차·한화는 경영승계에 역삼각합병 활용 가능 … SK는 신사업 추진 부담 덜어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summary | 정부는 이른바 ‘원샷법’으로 불리는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원샷법은 실타래처럼 얽힌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와 중복투자·과당경쟁 등 산업 구조조정을 일거에 해결할 목적으로 도입됐다. 여기에 지난해 말 통과된 상법 개정안도 재계가 활용할 여지가 많다. 증권가에서는 특별법 등의 효과로 올해 국내 M&A 시장 규모가 77조원을 웃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장에서 나도는 여러 시나리오를 집중 분석해봤다.

이른바 ‘원샷법’으로 불리는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이 곧 시행된다. 특별법은 인수·합병(M&A) 등 기업이 사업재편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상법·세법·공정거래법의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법 아니냐는 비난도 일부 있었다. 그런 까닭에 정부는 적용 대상을 과잉 공급 분야로 한정했다. 비록 3년짜리 시한부 법안이지만, 과당 경쟁에 시달리는 산업의 구조조정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한다고 3월 4일 밝혔다. 산업부는 업계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의결 등 제반 절차를 거쳐 6월 말까지 제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법 시행 예정일은 8월 13일이다. 증권가에서는 특별법 효과로 올해 국내 M&A 시장 규모가 77조원을 웃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별법 통과로 건설·조선·철강 등 대내외 환경 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분야 기업의 선제적 구조조정과 사업부 조정이 예상된다. 특별법에 따라 기업의 자발적인 사업재편을 촉진하기 위해 사업재편계획심의위원회를 구성, 기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우선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에 순풍이 불 전망이다. 두 회사는 건설 등 중복 사업이 많아 2008년과 2014년 두 차례 합병을 추진했다. 그러나 일부 주주가 합병에 반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특별법은 이 같은 주주 반발의 부담을 줄이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을 20일에서 10일로 단축하고, 회사의 주식매수 의무기간은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렸다. 그동안 현금 여력 부족 등으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부담을 느껴온 삼성중공업으로서는 한시름 놓게 됐다. 양형모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특별법은) 부실기업 정리 및 사업재편이 목적이라 자회사를 많이 거느린 지주회사가 수혜를 볼 것”이라며 “공급 과잉 업종인 조선·철강·화학 기업의 체질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선 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후반 선박 수주 감소로 플랜트·건설장비를 대거 저가 수주한 탓에 자금 사정이 악화된 곳이 많다”며 “계열사 간 사업부 조정과 비효율 부문을 정리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엔지니어링 합병에 순풍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해 삼성SDS의 지분 2.05%를 대량 매각한 점도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의 합병 가능성이 커진 요인이다.

주택사업을 KCC에 넘긴다는 루머가 무성한 삼성물산의 경우 건설부문과 삼성엔지니어링을 묶는 삼각합병 방안도 거론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을 자회사로 분할해 삼성엔지니어링과 합병 후 존속회사로 남기는 방안이다. 특별법보다는 상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통과돼 가능한 시나리오다. 모기업이 자회사를 이용해 특정 기업을 인수할 경우, 인수대금을 모기업의 주식으로 치르는 방식이 삼각합병이다. 기업 오너의 경영권을 유지, 강화하는 동시에 계열사 간 사업부를 재편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삼성물산의 경우 건설 자회사가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취득한 대가로 삼성엔지니어링 주주에게 삼성물산 주식을 지급한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삼성물산의 건설계열사에 흡수돼 법인이 사라지지만, 주주는 삼성물산의 지분을 갖게 된다. 최근 삼성엔지니어링의 지분을 사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선 삼각합병의 대가로 삼성물산의 지분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그룹에 대한 지배구조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 특히 자사주를 합병 대가로 받기 때문에 신주 발행에 따른 지분 희석이 없다. 이 부회장이 취득한 삼성물산 지분이 오롯이 지분율에 반영된다는 얘기다. 삼각합병은 주주총회가 필요 없어 기타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우려도 없다. 만약 삼성물산이 지분교환 등의 일반적인 방식으로 삼성엔지니어링을 합병한다면,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떨어질 수 있다.

역대 최악의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중공업도 특별법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은 엔진기계·건설장비·육상플랜트·전기전자·정유업 등 비조선업 사업부문 비중이 조선 빅3 가운데 가장 크다. 더구나 이들 사업에서 거의 수익이 나지 않아 많은 사업부를 정리해야 할 처지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부문은 자회사에 넘겨 모기업의 부실 확률을 낮추는 한편 타사에 매각해 현금을 확보, 부채비율을 떨어뜨릴 필요가 있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특별법으로 기업의 합병과 분할, 자산 양수도가 용이해지면 건설·화학·중공업 자회사의 선제적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모회사의 가치도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현대중공업은 사업부 재편과 함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현대중공업의 지배구조는 ‘현대중공업→현대 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뤄진 순환출자 형태다. 현대중공업이 현대삼호중공업 지분 94.92%를, 현대삼호중공업은 현대미포조선 지분 42.34%를, 현대미포조선은 현대중공업 지분 7.98%를 보유 중이다.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등 오너 일가가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 전량을 매입하면 순환출자 고리는 끊어진다.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 가치는 5000억원 대로 인수 부담이 만만치는 않다. 그러나 방법이 없진 않다. 증권가에서는 하이투자증권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고, 계열사 간 지분스왑 등의 방법을 동원하면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다고 본다.

현대중공업그룹 지주회사 체제 가능성


▎부산 영도의 텅 빈 조선소 모습. / 사진:중앙포토
에너지·화학 업종에 주력하는 한화그룹도 특별법과 상법 개정의 수혜를 볼 수 있다. 한화케미칼·한화에너지·한화큐셀 등 공급 과잉 업종 계열사가 있어 이들에 대한 사업재편이 필요한 상황이다. 여기에 지주회사 체제로의 지배구조 개편과 3세 경영으로의 구조개편도 내다볼 수 있다. 한화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는 ㈜한화다. 현재 김승연 회장이 이 회사의 지분 22.5%를,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가 4.4%,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전사혁신실 부실장이 1.7%, 삼남 김동선 한화건설 과장이 1.7%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김 회장의 3형제가 경영승계를 위해 지주사의 지분을 높이기 위해선 각각 보유한 한화S&C를 활용해 ㈜한화의 주식을 취득하는 ‘역삼각합병’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중간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화S&C의 지분은 김 전무가 50%, 김 부실장과 김 과장이 각각 25%씩 보유하고 있다. 시나리오는 대충 이렇다. 먼저 한화가 물적분할을 통해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를 만든다. 그 다음 한화S&C가 이 회사를 합병한다. 한화S&C가 자회사를 흡수해도 한화는 분할주체로서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은 100%로 변화가 없다. 자회사의 주인이 된 한화S&C는 한화S&C의 지분만큼 한화의 지분을 교부 받는다. 결과적으로 한화S&C가 사들인 것은 자회사가 아니라, 한화의 지분인 셈이다. 모기업에 대한 3세들의 지분율이 확 높아지기 때문에 한화로서는 경영 승계의 주춧돌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한화의 화학·에너지·방산 계열사는 김 전무가, 금융·IT·마케팅은 김 부실장이, 건설·유통·관광 계열사는 김 과장이 승계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물적분할을 하면 분할주체의 지분가치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기존 주주는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 모기업에서 분리된 자회사가 인수자가 아닌, 피인수자라는 점에서 삼각합병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한화에너지·한화케미칼 등 핵심 계열사를 거느린 한화S&C의 자산가치는 10조원 수준으로 한화그룹 총자산의 25%에 해당한다. 이 기업의 가치가 더욱 커질 경우 이들 3형제는 더욱 많은 한화 지분을 챙길 수 있다. 상법 개정을 통해 역삼각합병이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한화S&C가 기업 가치를 키운 뒤 상장해, 한화와 일대일로 합병하는 방안이 거론돼왔다.

SK는 특별법이 정한 증손회사의 주식보유지분율 규정 완화의 혜택을 볼 수 있다. SK는 지난해 8월 1일 SK㈜와 SK C&C를 합병하며 ‘옥상옥’ 구조에서 벗어났다. ‘최태원→통합법인 SK→SK텔레콤→SK하이닉스·SK브로드밴드·SK플래닛’으로 지배구조를 수직계열화했다. SK는 지배구조 개편과 함께 반도체 사업 강화를 위해 SK하이닉스를 통해 소재·모듈 회사를 인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다만, SK하이닉스가 새 회사를 인수할 경우 시가총액 수천 억원에 달하는 기업의 지분을 100% 사들여야 해 많은 실탄이 필요했다. 그러나 특별법을 통해 증손 회사에 대한 지분 부담이 줄어든 만큼, SK로서는 신사업 추진에 부담을 덜었다. 이 문제를 두고 그동안 SK 내부에선 SK C&C의 IT부문과 SK텔레콤의 SK하이닉스 지분을 스왑하거나, SK텔레콤을 인적분할하는 등의 방안이 거론돼왔다. 전용기 현대증권 연구원은 “CJ와 SK의 빅딜처럼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그룹사 간에 자발적 M&A 가능성도 있다”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주사 계열에서 수평적·수직적 합병, 기업분할, 분할합병 등 구조조정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삼성전자·삼성생명도 사업부 재편을 목적으로 특별법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삼성생명은 올 초 삼성전자가 가진 삼성카드 지분(37.5%)을 인수하면서 삼성카드의 지분 72%를 확보했다. 이 거래로 삼성전자와 삼성카드 간 순환출자고리는 끊어졌고,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결속력은 강화됐다. 한발 더 나아가 삼성생명이 삼성카드 지분을 100% 인수해 중간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해 금융회사를 일원화할 수 있다. 이 금융지주회사는 지주회사격인 삼성물산 아래에 놓이게 된다. 특별법은 발행주식의 90%를 보유해야 하는 간이분할합병 요건을 3분의 2로 대폭 완화했다. 삼성생명은 주주총회 없이도 삼성카드를 분할해 순수 영업자산만 양수하거나 간이합병 할 수 있게 됐다. 삼성그룹이 금융 계열사를 서초사옥에 결집하는 것도 금융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이 과정에서 소규모합병 요건 완화를 이용해 삼성전자·삼성SDS가 합병할 것이란 시나리오도 제기된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이 0.57%에 불과해 삼성SDS를 삼성전자에 합병시켜 이 부회장의 지분율을 높일 것이란 관측이다. 이 부회장의 삼성SDS 지분율은 9.2%다. 특별법은 상법상 규정된 소규모합병의 100분의 10 규정을 100분의 20으로 완화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이사회 의결만으로 시가총액의 20%(2945만9867주, 약 34조6153억원)의 범위 내에서 계열사를 얼마든지 합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SDS의 시가총액은 약 19조5766억원으로 소규모합병 요건에 부합한다. 삼성전자가 자회사를 만들어 삼성SDS 주주에게 합병신주 대신 삼성전자 주식을 주는 삼각합병 방식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

경영권 승계에 특별법 활용할 수 있을진 미지수


현대자동차그룹도 소규모합병을 통한 경영권 승계를 시도할 수 있다. 정의선 부회장이 23.29%의 지분을 보유한 현대글로비스를 현대자동차에 흡수시키면 현대자동차에 대한 정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또 증손회사의 주식보유지분율이 100%에서 50%(비상장사 40%)로 낮아져 현대차가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지 못한 경우 주식을 추가 인수해 전량 확보하든가, 회사를 매각해야 한다. 특별법 시행으로 현대차는 ‘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건설·현대제철’의 구조로 수직계열화 할 수 있으며, 현대엔지어링·현대에너지·현대씨엔아이 등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확보하지 않아도 된다. 역삼각합병을 이용해 정 부회장의 지주사 지분율을 높이는 길도 열려 있다. 한화의 시나리오처럼 현대차도 지주사에서 분리한 자회사를 현대글로비스가 인수해 정 부회장의 그룹 장악력을 키우는 방법이다.

다만, 삼성과 현대차가 특별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느냐는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다. 정부는 경영권 승계 등 대기업이 특별법을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과잉 공급 분야 기업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삼성SDS와 현대글로비스의 업종이 공급 과잉인지 여부는 민관합동 심의위원회가 결정한다. 이 때문에 삼성·현대차가 원샷법의 수혜를 입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기획재정부도 최근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히며, 원샷법을 이용한 경영권 승계는 원천 봉쇄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 때문에 증권가 전문가들도 앞으로 나올 정책 세부안과 상황 변화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1327호 (201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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