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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의 이 한 문장] 치세의 기반은 실체보다 이미지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군주는 여러 가지 좋은 덕성(virtu)을 모두 갖출 필요는 없더라도, 갖추고 있는 듯이 보일 필요는 있다. 더 대담하게 말한다면, 그런 훌륭한 기질을 갖추고 항상 존중하는 것은 오히려 해로우며,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더 유익하다. 즉 자비심이 많다든가, 신의가 두텁다든가, 인정이 있다든가, 겉과 속이 같다든가, 경건하게 믿게 함이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만일 그와 같은 태도를 버려야 할 경우에는 전혀 반대 기질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전환의 수단을 알고 있다는 자신감을 항상 갖고 있어야 한다.’ - [군주론] 18장
인간이라면 누구나 덕망 높고 학식이 있으며 도덕적이고 용기 있는 완전한 지도자상을 기대한다. 인간 한계를 뛰어넘는 신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도덕정치의 당위론은 숭고하지만 비현실적이다.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수많은 영웅호걸도 실제 도달하지 못했던 이상향을 추구하는 것은 백면서생의 공리공론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그것을 갖춘 듯 보이는 것은 중요하다’는 대목은 요즘 표현으로 ‘브랜드 구축’을 의미하는 현실적 대안이다. 마키아벨리의 지적처럼 인간의 모든 면을 속속들이 알 수 없다. 심지어 수십 년을 함께 한 부부조차도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갈등하고, 결정적 순간에 오해하곤 한다. 이것이 삶의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군주가 도덕론에 매몰되어 지고지선한 성인군자로 단련하려는 자기 완성의 허상에 빠지지 않고, 실현 가능한 수준의 덕성을 갖추면서 동시에 좋은 이미지를 구축해 신민과 소통하라는 권고는 현실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3대 요소로 에토스·파토스·로고스를 들었다. 에토스는 연사의 인격과 매력, 청중에 대한 영향력으로 설득 과정에서 60%를 차지한다. 파토스는 청중의 심리상태로 설득에 미치는 영향은 30% 수준이다. 주장에 대한 논리적 근거인 로고스는 10%이다. 사람들은 논리에 설득돼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동화돼 추종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중은 복잡한 논리보다는 호감이 가는 이미지에 동질감을 느끼고 환호한다. 이런 맥락에서 계몽시대의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는 ‘우리는 가장 모르는 것을 가장 잘 믿는다’라는 문구를 수상록에 남겼다. 정치는 물론 기업의 마케팅에서도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이미지이지 논리가 아니다. 물론 논리의 기반 없이 이미지만으로는 환상이나 속임수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정연한 논리가 강력한 이미지로 뒷받침되지 못하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지식인은 논리를 만들지만, 리더는 사람을 움직인다. 따라서 리더는 사물을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사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미지를 만들어 소통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맞도록 메시지를 구성해 소통하고 전파하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매스미디어의 개념도 없던 500년 전에 브랜드와 이미지의 본질을 꿰뚫어 실체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제한되어 있다면,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 리더십을 확보하는 자산이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최악은 훌륭한 리더의 덕성이 조직원들과 소통되지 않아 난폭하고 사악한 리더로 인식되는 경우다. 최소한 이런 경우는 피해야 할 것이다.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1329호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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