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법의 지배와 경제적 자유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대 최악으로 평가되는 19대 국회가 저물어간다. 국회의원 법정 임기는 5월 말까지다. 그러나 총선이 끝나고 한 달 남짓 지나면 상당수 의원이 방을 빼야 하는 때에 국회가 나라와 국민을 위해 평소에도 안 하던 일을 이제와 하지 않을 것이다.

의정 활동 통계를 봐도 이번 국회는 최악의 평가를 받을 만하다. 3월 기준으로 19대 국회에 접수된 법안 총수는 1만7757개이며, 이 중 94%를 의원들이 발의했다. 제17대(2004~2008년)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 7489개와 비교하면 무려 1.4배 수준이고, 제18대(2008~2012년) 국회와 비교해도 28%나 많은 역대 최다(最多)이다.

먼 옛날 중국의 철학자인 노자(老子)는 법이 많고 엄하면 국민들이 범법자, 전과자가 되고 법상 규제가 많으면 국민들이 가난해진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인들은 노자의 경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하루에 12개꼴로 법률을 새로 만들거나 바꾸자고 했다. 국민들이 권태와 염증을 호소할 만큼 숱한 정쟁(政爭)을 벌이는 와중에도 여야 정치인들은 수많은 법안을 발의했다. 19대 회기 내내 졸속과 부실 입법, 과잉 입법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일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중 1만여 건은 심의조차 되지 않고 미처리 상태로 계류돼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의정 활동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고 법안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주목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발의된 법안들이다. 국민이 아닌 정치인 자신을 위한 발의였던 것이다.

19대 국회에서 가결한 법안도 2665개로 역대 최다이다. 국회선진화법에 기대어 노동개혁법안, 서비스산업발전법안 등 경제 회생,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 법안은 방기했지만 가결한 법안 총량도 만만치 않다는 게 놀랍다. 그러나 가결된 법안 중에는 단말기 보조금 경쟁을 제한하는 단통법, 책값 경쟁을 제한하는 도서정가제 등 경제적 자유를 저해하고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내용도 적지 않다.

지금처럼 경제적 자유의 확대에는 반대하고 거꾸로 규제의 신설·강화에는 찬동하는 경향이 계속된다면 한국 경제가 앞으로도 활로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경제적 자유가 개인의 행복과 국가 번영의 원천이라는 사실은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1776)에서도 누누이 강조했던 내용이다. 스미스는 사유 재산권, 계약 및 경쟁의 자유를 비롯한 경제적 자유가 법률에 의해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 나라에서는 상업과 제조업이 결코 융성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경제적 자유의 보호는 정의로운 정부가 마땅히 할 일이라고까지 했다.

국가 번영의 초석인 경제적 자유는 정치와 직결돼 있다. 경제적 자유는 법률의 내용과 집행에 의해 규정되고, 법률은 정치적 과정을 거쳐 국회에서 제정되기 때문이다. 올 초 헤리티지 재단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적 자유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에서 19위로 저조한 편이다. 이 책임의 상당 부분은 법률을 생산하는 국회에 있다. 앞으로 제20대 국회에서는 국민의 경제적 자유를 보호하는 개념으로서 ‘법의 지배(rule of law)’ 원칙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국회가 만든 법은 내용과 관계없이 모두 정당하다고 보는 ‘법률 통치(rule by law)’ 개념으로는 한국 경제의 앞날을 기대하기 어렵다.

-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330호 (201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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