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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나관중作 [삼국지연의]의 ‘3인의 결투’ 

가장 약한 자가 이기려면 강한 두 사람이 싸우게 해야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삼국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황석영은 “[삼국지]에서 어떤 이는 정의를 볼 것이며, 어떤 이는 권모와 술수를, 그리고 어떤 이는 경영과 처세를 읽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변화무쌍해서일까, [삼국지]는 읽을 때마다 맛이 다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나이에 따라, 혹은 시대에 따라 해석이 새로워진다.

나관중의 [삼국지통속연의]는 한나라를 이어받은 촉나라, 그러니까 ‘촉한정통설’을 따른다. 그래서 유비·관우·장비와 제갈량을 주목한다. 몰락한 선비나 무뢰배에 지나지 않았던 유비·관우·장비와 제갈량은 요즘말로 ‘흙수저’다. 이와 달리 귀족 출신인 조조, 강남 명문 제후의 후손인 손권은 ‘금수저’다. 초야에 묻혀있던 흙수저들이 의를 앞세우고 나와 금수저에 맞짱 뜨는 모습은 서민들의 마음 한구석을 짜릿하게 만드는 맛이 있다.

권력 장악한 동탁의 공포정치

[삼국지]의 시작은 동탁이다. 동탁은 ‘십상시의 난’때 낙양을 접수해 어린 황제를 폐위하고 권력을 장악한다. 조조와 원소, 유비 등 제후들이 반동탁 동맹을 만들어 공격하자 동탁은 낙양을 버리고 장안으로 천도한다. 제후 간 분란을 틈타 동탁은 권세를 탄탄히 쌓는다. 장안성 밖에 백성 25만 명을 동원해 별궁 ‘미오’를 짓는다. 동탁은 스스로를 상보(임금이 특별한 대우로 신하에게 내리는 칭호)라 일컬으며 황제의 부와 권세를 누리기도 한다. 동탁은 잔인하다. 포로들의 팔다리를 자르고 눈알을 파내며 혀를 잘라 부글부글 끓는 큰 가마솥에 던져 넣는 공포정치로 백성을 다스린다. 맘에 들지 않는 신하는 그 자리에서 목을 쳐 소반에 받쳐 술자리에 내놓는다.

한나라의 멸망을 안타까워하던 충신, 왕윤은 더 이상 동탁을 눈뜨고 지켜볼 수 없다. 하지만 일개 사도로 동탁을 무찌르기는 난망한 일. 더구나 동탁에게는 천하의 장수, 여포까지 있다. 자력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맞닥뜨릴 때 어떤 전략을 써야 할까.

상대를 어떻게 제압할 것인가는 경제학에서도 오랜 고민거리였다. 경제학의 기본은 자유경쟁이다. 경쟁에는 상대가 있다. 내가 움직이면 상대도 움직인다. 상대편의 대처행동에 따라 나도 전략을 달리해야 한다. 상대의 행동에 따른 최선의 선택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이를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이론이 ‘게임이론’이다.

왕윤과 여포, 동탁은 3인 게임이다. 세 사람의 권력관계를 보면 ‘왕윤 < 여포 < 동탁’ 순이다. 왕윤은 여포와 동탁을 제거하고 싶다. 게임이론은 이 경우 어떤 해법을 제시할까? 왕윤의 상황은 ‘3인의 결투’로 설명된다. 3인의 결투란 A, B, C 세 사람이 결투를 하는 게임이다. 세 사람이 총을 한 자루씩 들고 차례대로 총을 쏘되 마지막 한 사람이 살아남으면 게임은 끝난다. 세 사람은 명중률이 각기 다르다. A는 명중률이 10%다. B는 50%다. C는 백발백중 100%다. 총은 A, B, C 순으로 쏜다. 단, 한 사람이 살아남을 때까지 이 순서대로 계속 총을 쏜다.

A가 가장 좋은 상황은 B, C 중 한 사람을 제거해 1대1 구도를 만든 뒤 선수를 뽑는 것이다. 그렇다면 A는 누구를 먼저 쏘는 게 유리할까?

① A가 B를 쏘는 경우: 만약 B가 살게 되면 화가 난 B는 A를 쏜다. 공연히 B의 화만 돋궜다. 혹 운 좋게 B를 죽였다고 치자. 다음 총을 쏠 차례는 C다. C는 명중률 100%의 명사수다. B를 죽인 의미가 없다.

② A가 C를 쏘는 경우: 만약 C가 살게 된다고 가정하자. 다음 총 쏘는 사람은 B다. B는 A에게 원한이 없다. B는 A보다 더 위협적인 C를 쏜다. 그런데 C가 죽지 않는다고 치자. C는 A와 B에 같이 원한이 있다. A는 불안하다. 혹시 B가 C를 죽이면 어떻게 될까. A는 비로소 선수를 잡아 B를 쏠 수 있다. 만약 A가 첫발에서 C를 죽이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웃을 수 없다. 다음 차례는 B다. B가 선수를 뽑아 A를 쏜다.

③ 최선의 정답은 A가 그냥 하늘에다 대고 쏘는 것이다.

A가 하늘에 총을 쏘면 차례는 B에게 넘어간다. B는 A에 별 감정이 없다. A보단 명중률 높은 C를 쏠 것이다. 그런데 C가 안 죽었다. 다음은 C가 쏠 차례다. C는 자신을 쏜 B를 쏜다. B가 죽고 나면 A 차례가 된다. A는 1대1 상황에서 선수를 뽑았다. 만약 B가 총을 쏴서 C를 죽였다고 치자. 다음 번 차례는 A다. A와 B의 1대1 구도가 되면서 A가 선수를 뽑았다.

①에서는 어떤 식이든 A는 1대1구도에서 선공을 할 수 없다.

②에서는 첫 발에 C는 죽지 않고, 둘째 발에 B가 C를 죽이는 ‘행운’이 뒤따라야 한다. ③은 어떠한 경우에도 A는 1대1 구도 아래에서 선수를 뽑게 된다.

3인의 결투가 주는 함의는 ‘강한 두 사람이 싸우게 하라’다. ‘3인의 결투’ 이론에서 A는 왕윤, B는 여포, C는 동탁이다. 왕윤으로서는 여포에 총질을 하거나, 동탁에 총질을 하는 게 무조건 손해다. 여포를 죽이려다 실패하면 여포의 손에 죽을 것이고, 운 좋게 여포를 죽여도 동탁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그냥 자신은 빠진 채 여포와 동탁이 서로 싸우도록 하는 것이 ‘내시의 균형’이다.

왕윤의 선택은 가기(歌妓) 초선이었다. 왕윤은 친딸처럼 아끼던 초선에게 무릎을 꿇는다. “내 이제 연환계(連環計)를 써서 너를 여포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나서 동탁에게 바칠 생각이다. 네가 할 일은 저들 사이에서 부자 간을 이간질을 하여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죽이도록 하는 것이다”

연환이란 ‘고리를 연결한다’는 뜻이다. ‘적의 장수와 병사들이 많을 때는 정면대결을 할 수 없다. 이럴 땐 적 스스로 묶어 놓은 계책을 써서 그 기세를 죽여야 한다’고 손자병법은 ‘연환계’를 설명한다. 가장 대표적인 연환계 전술이 적벽대전이다. 10만에 불과하던 촉·오 연합군은 100만 위나라 조조군과 맞닥뜨린다. 방통은 조조를 속여 선단을 쇠사슬로 묶게 한다. 그런 다음 주유가 화공으로 공격해 조조군을 한순간에 박살낸다.

남의 칼 빌려 사람 베는 ‘차도살인(借刀殺人)’

왕윤의 연환계는 초선을 이용해 여포와 동탁을 묶어놓는 계략이다. 왕윤은 여포에게 초선을 아내로 주겠노라고 약속한다. 그런 후 초선을 동탁에게 보낸다. 통탁에게 자신의 여인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양아들 여포는 이성을 잃는다. “나를 구해달라”는 초선의 눈물에 결국 여포는 녹아내린다. 동탁을 유인한 다음 방천화극으로 동탁의 목을 벤다. 남의 칼을 빌려서 사람을 베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이다.

왕윤의 선택은 옳았다. 하늘에다 총질을 해버리니 여포와 동탁은 서로 칼질을 해댔다. 동탁이 죽은 후 초선은 홀연 [삼국지]에서 사라진다. 초선은 동탁이 죽은 뒤 자살했다는 설이 있다. 혹은 여포의 아내가 되지만, 여포가 죽을 때 관우에게 넘겨졌다가 관우가 여자에 눈이 멀 것을 우려해 초선의 목을 벴다는 이야기도 구전된다. 어떻게 상상해도 좋다. 초선은 역사서인 진수의 [삼국지]에는 나오지 않는 가공의 인물이니까.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1331호 (201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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