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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의 이 한 문장] 신의 자비와 야수의 무자비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싸움에서 이기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는 법에 의한 것이고 하나는 힘에 의한 것이다. 전자는 인간의 수단이고 후자는 짐승의 수단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전자의 방법만으로는 불충분하므로 후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즉 군주는 짐승과 인간을 교묘히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군주론 18장
인간 본성에 대한 오랜 주제인 성선설·성악설을 [군주론]에 대입시켜 보면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인간이란 어떤 악이든지 예사로 범할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또 그렇다고 하여 완전무결한 성인일 수도 없다’(로마사 논고 1-27)고 지적한 것처럼 인간은 신처럼 성스럽기도 하고 야수처럼 잔인하기도 한 양면성을 갖고 있다. 신의 속성을 가진 고귀한 인간을 통치하는 것은 법이고, 야수의 속성을 가진 잔인한 인간을 통제하는 것은 무력이다. 법만으로는 야수를 통제할 수 없고 무력만으로는 인간에게 인정받기 어렵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고대의 군주들이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괴물 케이론에게 훈육 받았다는 설화를 인용하며, 인간이란 소위 도덕군자와 짐승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에 이를 모두 이해해야 통치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이런 배경에서 현명한 군주는 정책을 펼 때 법률과 무력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조심성’을 갖추어야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군주는 여우와 사자의 기질을 배워야 한다. 사자의 기질에만 의존하면 힘은 갖게 되나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현명한 군주들은 밥 먹듯이 약속을 파기하고 이유도 그럴 듯하지만 비난할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는 지적인 힘을 주는 여우의 기질이다. 여우의 기질은 잘 숨겨서 사용해야 한다.’(군주론 18장)

저명한 과학저술가 칼 세이건은 인류의 진화를 다룬 대표작 [에덴의 용]의 부제를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로티누스(204~270년)를 인용하여 ‘신과 야수의 중간적 존재’로 붙였다. 단세포 생물에서 시작된 진화의 여정이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여 오늘날 우리가 존재하고, 진화의 역사는 우리의 뇌구조에 축적되어 있으며, 해부학적으로도 인간은 신과 야수의 중간으로 개인과 집단의 행동도 신의 속성과 야수의 속성을 모두 나타낸다. 인류애의 상징 슈바이처와 유태인의 도살자 히틀러는 동시대 독일인이었다. 따라서 인간이 신과 야수의 중간적 존재라면, 인간이 모인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도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을 본질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인간이 신과 야수의 중간적 존재라면, 신도 인간을 통치할 수 없고, 야수도 통치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을 이끄는 리더는 철저하게 신이기도 하고, 철저하게 야수이기도 해야 한다. 리더는 신의 자비와 야수의 무자비 사이를 오가면서 여우의 지략과 사자의 용맹을 구사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다. 주어진 환경과 제도가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서 개인적 삶의 조건이 충족될 수 있으면 선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남을 속이고 해쳐야 살아남을 수 있으면 악하게 되는 것이다. 반세기 전 아프리카의 모범국이었던 소말리아가 체제 붕괴로 혼란에 빠지고, 정상적 직업을 통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 평범한 일반인들이 해적이 된 것은 개인적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1332호 (201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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