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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사직상소에 비친 조선 선비의 경세관’⑫] 선언(善言) 취하면 천하 다스리기에도 넉넉 

공조판서직 사직소 올린 장현광... 인조와 집권세력의 전횡 견제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1634년(인조12), 경상도 영양(永陽, 지금의 영천) 땅에 은거하고 있던 한 노인이 조용히 지필묵을 준비했다. 얼굴에 난 주름 위론 세월이 많이 스쳤지만 꼿꼿하게 앉아 써내려가는 노인의 필체에는 여전히 힘이 넘쳤다. 노인의 나이는 여든 살. 그가 쓰고 있는 글은 사직상소이다.

17세기를 대표하는 유학자로 김장생과 더불어 국가로부터 학문적 권위를 공식 인정받은 바 있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은 생애의 대부분을 향리에 머물며 배움에 힘썼다. 같은 남인뿐 아니라 반대 정파인 서인에게서도 존경과 신망을 받았던 그에게 임금들은 계속 출사를 요청했지만 그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했다.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았는데도 끝내 부임하지 않아서 직무유기로 문책을 받은 적도 있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죽는 순간까지 변함이 없었는데 여든의 나이에 제수 받은 공조판서직에 대해서도 곧바로 사직소를 올린다. ‘신의 병세가 깊어 조금도 소생할 가망이 없으니 목숨이 실낱 같이 남아있을 따름이옵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노쇠한 신을 가엽게 여기고 직책을 거둬주시어 신으로 하여금 분수를 지키며 죽는 날을 기다릴 수 있게 하여주소서.’(인조12.7.4, 이하 인용은 모두 [旅軒集], [辭工曹判書疏]이 출처임). 관직을 맡기에는 나이와 건강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 정파인 서인에게도 존경받아

다만 장현광은 임금에게 올리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몸은 이미 나아가지 못한 바 조정의 일을 할 수가 없사오나 마음은 아직 죽지 않아 입으로는 한 말씀 진언하고자 합니다.’ 비록 직임을 맡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는 것이다. ‘신이 생각건대 도리는 무궁하고 사업은 끝이 없으니, 비록 대성인(大聖人)이라 하여도 스스로를 성인이라 여겨 나날이 진보하고 더하여 늘게 하는 공부를 멈추신 적이 없나이다. 올바름을 추구해 가는 길을 결코 그만두시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위대한 순임금은 묻기를 좋아하셨으니, 순 같은 대성인은 부족한 점이 없으셨을 텐데 어인 까닭이겠습니까? 늘 스스로를 부족하게 여김으로써 자만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더 낫게 만든 것입니다.’

일반인이라 할지라도 나는 모르는 게 없다, 부족한 점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다.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느라 맡은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임금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임금의 책임은 한없이 무겁고 담당해야 할 일은 깊이나 넓이 면에서 모두 끝이 없기 때문에, 완벽한 수준에 이를 때까지 끝없이 정진해야 한다. 순임금과 같은 위대한 군주들이 항상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여긴 이유이다. 그래야 노력을 멈추지 않을 수 있고 완벽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장현광은 말을 이어갔다. ‘또한 순임금은 얕고 가벼운 말도 꼼꼼하게 살피는 것을 좋아하셨고, 나쁜 말은 가려주고 좋은 말은 칭찬해주셨으니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말하게 한 것입니다.’

사람이 부족함을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식을 습득하고 경험을 쌓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뭐니뭐니 해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일, 즉 ‘경청’이 중요하다. 말에서 지혜를 얻고, 말에서 방법을 찾으며, 말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임금은 묻기를 좋아한 것이고, 얕고 가벼운 말일지라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꼼꼼하게 살핀 것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여건도 필요한데, 다른 이의 말을 두고 경박하다, 쓸데없다, 틀렸다는 등의 논평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은 앞으로 웬만해선 말을 꺼내려 들지 않게 된다. 이러다 보면 다른 좋은 말이 나올 수 있는 기회 역시 차단되는 것이다. 순임금이 얕고 가벼운 말도 존중해주고 나쁜 말이라 해서 탓하지 않으며 좋은 말을 칭찬한 것은 그래서이다.

물론 그렇다고 어떤 말이든지 다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 장현광도 이렇게 말한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선언(善言)을 취하는 일을 유념하셔야 합니다. 맹자가 말하기를 ‘선언을 좋아한다면 천하를 다스리기에도 넉넉하거늘 하물며 한나라에 있어서이겠는가’라 하였으니, 선언은 진실로 만 가지 복의 근원입니다.’ 어떤 말이든 경청하되 거기서 ‘선한 말’을 가려내 명심하고 그것을 정치를 하는 근본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이란 무엇인가. ‘신이 살펴보건대, 옛사람과 지금 사람들 중에 마땅히 선(善)을 행해야 하고, 마땅히 불선(不善)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하여야 할 것을 하고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자는 항상 적으며, 마땅히 하여야 할 것을 하지 못하고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자는 항상 많으니, 어째서입니까? 그것은 이 ‘선(善)’ 이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어서, 이것을 따르면 반드시 성공하고 반드시 이롭고 반드시 길하고 반드시 복을 받으며, 이것을 어기면 반드시 실패하고 반드시 해롭고 반드시 흉하고 반드시 화를 받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장현광이 직접적인 개념설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선’이란 ‘인간으로서 마땅히 실천해야 할 도리’ 정도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선한 말’도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말’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담은 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임금은 이 ‘선한 말’을 항상 유념하며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정치의 중심을 지킬 수 있고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된다. 선한 말 속에 담겨 있는 ‘선을 보기를 분명히 하고 그 선을 행하기를 돈독히 한다면’ 이루지 못할 사업은 없으리라는 것이 장현광의 판단이다.

사직상소에 담은 간곡한 염원 이뤄지지 않아

요컨대 그가 상소를 통해 강조한 것은 임금의 경청, 그중에서도 선한 말에 귀 기울이고 그 ‘선’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장현광은 다른 사직상소에서도 임금의 자만을 준엄하게 비판하곤 했는데, 그는 당시 임금이었던 인조의 독선과 의심이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인조반정 공신들의 전횡도 심각했기 때문에 이를 견제하고자 사직서를 빌어 경고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인조와 집권세력은 달라지지 않았고 심지어 인조는 신하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청을 자극하다가 병자호란을 초래하게 된다.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장현광은 여든 셋의 노구를 이끌고 선비들을 회합하여 각 지방에 통문을 돌렸으며 재산을 갹출해 의병을 지원하는 등 헌신적으로 활동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인조가 남한산성을 나와 청태종에게 항복했고, 절망에 빠진 그는 산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고 생을 마쳤다. 사직상소에 담았던 간곡한 염원이 실현되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한 채.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1333호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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