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권귀헌의 ‘질문 레시피’ | 성장의 본질은 무엇일까] 변하지 않으면 절대 나아질 수 없다 

마지노선에 안주한 프랑스의 쓰라린 경험... 끊임없이 변화 시도해야 

권귀헌 질문연구소 SMART Q-Lab 소장

‘노후를 고려하면 사교육비 지출은 어느 정도가 적절할까. 월 소득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적인 마지노선은 20~30% 수준이다.’ 교육비 지출에 관한 한 언론의 기사 일부다. 여기에 등장하는 ‘마지노선(Maginot線)’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처지·입장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더 이상 양보할 수 없을 때 “그 금액이 마지노선입니다” “이번 달이 마지노선이야”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 말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의미가 좀 다르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어떤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과거의 방식을 고집한 나머지 뼈아픈 패배를 기록해야 했던 슬픈 역사가 기다리고 있다.

마지노선은 ‘허용 한계선’ 아니다

마지노선은 제2차 세계대전의 기운이 감돌기 전, 프랑스가 독일의 침공에 맞서기 위해 구축한 방어진지였다.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의 베르뎅 전투에서 콘크리트 포대를 사용한 방어 진지를 구축했는데, 수십 만 발의 독일군 포격을 거뜬히 견뎌냈고 이에 힘입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후 프랑스군은 ‘방어야말로 승리의 절대적인 요인’이라고 말할 정도로 방어의 매력에 푹 빠졌고,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도 방어를 기본으로 한 군사전략을 채택했다.

이런 사상에 힘입어 1927년에는 독일과의 국경선 일대에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한다는 ‘동북 국경 축성안’이 의회에 제출됐다. 이 법안은 예산이 마련된 1929년에서야 통과됐는데 이때의 육군상이 바로 앙드레 마지노(Andre Maginot)였다. 독일과의 국경을 연하는 거대한 방어진지는 그의 이름을 따 마지노선이라 이름 붙였고 1936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완공됐다.

강철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요새에는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탄약운반 리프트까지 완비돼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는 보유하고 있던 육군 전력의 50% 이상(92개 사단 중 50개)을 마지노선에 배치할 정도로 방어진지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다. 프랑스 국민은 모두 독일이 결코 마지노선을 넘을 수 없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듬해인 1940년 5월, 독일군은 프랑스 침공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행동에 옮겼다. 요새에 가까운 마지노선을 정면 돌파하는 대신 프랑스와 벨기에의 국경지역인 아르덴느 삼림지대를 관통하기로 한 것이다. 프랑스 전력의 50%가 배치된 마지노선은 불과 17개 사단만으로도 충분히 견제할 수 있었다. 이들은 오직 방어만 하는 부대였기 때문이다.

공들여 쌓아 올린 마지노선에는 엄청난 전투력이 집중돼 있었지만 허무하게도 한 순간에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프랑스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마지노선은 빠른 속도로 기동하는 독일군을 막을 수 없었다. 독일군은 작전 개시 1개월 만에 마지노선에 전개된 50만 명을 포위했고 프랑스는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마지노선은 기존의 성공 방식에 도취된 나머지 변화를 거부한 대가로 나치의 군화가 온 국토를 짓밟도록 허락한 프랑스의 과오를 상징한다. 지키는 전략만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지킬 수 없다는 변화가 이미 감지됐지만 그들은 여전히 제1차 세계대전의 성공을 회상하며 성을 쌓아올리기에 급급했다. 마지노선이 구축되는 기간 동안, 독일은 차분히 그리고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할 수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변화를 권하면 변하는 것은 주저한다. 변화에는 번거로움, 때로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끝없이 이동하는 자는 흥할 것이다.’ 800년 전 지금의 우크라이나·터키·이란·러시아·중국·베트남 일대에 이르는 대제국이었던 몽골의 오랜 격언이다. 이 말 속, 성을 쌓는 자는 오늘날 변화를 거부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새로운 지식이나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편협한 지식과 경험에 의존해 사물과 현상을 판단한다. 의사소통에 관심이 없으며 설득이나 협력보다는 통제와 지시를 선호하고 권위적인 태도로 자신의 영역을 수호한다.

이와 달리 끝없이 이동하는 자는 변화를 추구하며 늘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그들이 가진 남다른 관점이나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면서도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과 현상을 볼 줄 안다. 지식이나 기술 습득에 관심이 많고 다양한 연결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성장을 도모한다.

변화 없이 발전하길 기대하는가? 안타깝지만 그런 방법은 없다. 어제처럼 생각하면서 오늘, 그리고 내일이 바뀌길 기대하는가? 미안하지만 세상은 정직하다. 인풋이 같다면 아웃풋도 같다. 이것이 바로 동일한 목표를 수행하더라도 이전과 다른 방법, 절차, 수단을 강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생각과 행동이 바뀌었다면 새로운 결과를 기대해도 좋다. 그러나 아니라면 꿈도 꾸지 않는 것이 좋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이동하는 자는 흥한다

자신만의 마지노선을 선정한 채 고루한 기존의 방식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자. 성을 높이 쌓고 외로운 성을 구축한 채 주변의 다른 의견에 귀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변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자. 고인 물이 되어 썩지 않으려면 새로운 물을 받아들이고 머물러 있던 물을 흘려보내면 된다. 안주하는 것보다는 실패하더라도 시도하는 것이 좋다. 적어도 그러한 과정은 우리에게 경험을 남기기 때문이다. 변화를 동경하고 도전이 주는 두려움을 감내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세계 최대의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를 이끄는 도미니크 바튼 회장은 1997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사무소에서 근무했다. 그는 한국에서의 7년을 이렇게 회고했다. “많은 변화가 있는 곳, 급격한 변화가 있는 곳일수록 빨리 성장할 수 있습니다. 리더는 변화 속에서 배우거든요. 많은 변화가 있었고, 많은 도전을 받았고, 그리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서울과 상하이의 삶은 마치 커튼이 열리는 현장을 목격하는 것 같았습니다.”[(더 인터뷰) 중에서]

1935년 S&P500 주가지수에 포함된 500개 회사의 평균 수명은 90년이었지만 지금은 18년에 불과한 이유가 바로 변화에 대한 저항 때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매너리즘을 경계하며 필요한 만큼 빨리 변화하고 있는지 자문한다.

변화를 촉진하기 위해 가장 먼저 바꿔야 하는 것은 가슴에 품고 있는 질문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지, 부장님은 왜 나만 괴롭히는 거야, 내가 이런 일이나 하려고 그 고생을 한 줄 아나, 이 쓸모없는 일을 왜 하는 거야. 이 같은 질문에서는 그 어떤 답도 건질 수 없다. 스스로를 어두운 그림자에 가둘 뿐이다.

질문을 바꿔보자. 나는 충분히 변하고 있는가. 나의 사고방식이나 문제를 보는 관점은 3개월 전과 달라졌는가. 무엇이 나의 변화를 입증하는가. 나는 어디에서 나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가.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낯선 장소를 방문하는가. 해본 적 없는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는가. 스마트폰 액정이나 잘 보이는 책상 위에 이런 질문을 붙여놓는 것만으로도 작은 변화가 시작된 셈이다. 지금 바로 변화를 감행하라.

권귀헌 - 어떤 질문을 해야 삶이 풍요로워지는지 연구하는 조용한 혁명가로 질문연구소 SMART Q-Lab을 운영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세계를 이끄는 한국의 최고 과학자들], [질문하는 힘], [삶에 행복을 주는 시기적절한 질문] 등이 있다

1333호 (2016.05.09)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