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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살인자’ 미세먼지] 인구 고령화와 맞물려 대재앙 불가피 

OECD의 ‘한국, 대기오염 경제 피해 1위’ 경고 … 알맹이 빠진 종합대책에 불안감 여전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ins.com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단계였던 5월 30일 서울 남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내의 모습. 건물이 윤곽만 보일 정도로 뿌옇다.
“마스크가 일상이 됐어요. 아이는 답답하다며 자꾸 벗는데 건강에 나쁘다니 벗을 수도 없고 답답하죠. 실외 공기도 안 좋다, 실내 공기도 안 좋다고 하는데 걱정이 되죠. 차도 문제, 고등어도 문제, 뭘 어떻게 조심하라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주부 이정화(35)씨의 토로다. 그는 얼마 전 70만원을 주고 공기청정기를 구입했다. ‘애들 키우는 집에선 필수’라는 조언에 계획에 없던 큰 지출을 했다.

미세먼지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매우 작은 물질이다. 대기 중에 오랫동안 떠다니거나 흩날려 내려오는 직경 10㎛ 이하의 입자상 물질이다. 주로 석탄이나 석유 등 화석연료를 태울 때, 공장이나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미세먼지는 질산염(NO3-)·암모늄(NH4+)·황산염(SO42-) 등 이온 성분과 탄소화합물, 금속화합물 등으로 이뤄져 있다. 입자의 크기에 따라 지름이 10㎛ 이하인 미세먼지(PM 10), 지름이 2.5㎛ 이하(PM 2.5)인 초미세먼지로 나뉜다.

문제는 미세먼지가 기관지를 거쳐 폐에 흡착돼 각종 폐질환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는 미세먼지 중 디젤에서 배출되는 BC(black carbon)를 1급 발암 물질로 지정했다. 장기간 미세먼지에 노출되면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나 천식 등 호흡기 질환에 걸릴 수 있고, 심혈관 질환이나 피부·안구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게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이다. 특히 초미세먼지는 기관지나 폐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기 때문에 심각한 폐질환을 야기할 수 있다. 미세먼지가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이유다.

경유차? 고등어? 미세먼지 원인 놓고 갑론을박


환경부는 1995년 미세먼지를 대기오염 물질로 규정했고, 2014년 2월부터 미세먼지 예·경보제를 시행하고 있다. 81~150㎍/㎥ 사이일 경우 ‘나쁨’, 150㎍/㎥ 이상일 경우 ‘매우 나쁨’ 단계로 예보된다. 2013년~2015년 전국의 미세먼지 연평균 농도는 각각 49㎍/㎥, 49㎍/㎥, 48㎍/㎥다. WHO 권고 기준(50㎍/㎥)에 부합한다. 그러나 미세먼지가 집중되는 봄은 사정이 좀 다르다. 실제로 올해 4월부터 5월 중순까지 서울 시내는 맑은 날이 없다고 할 정도로 뿌연 먼지로 뒤덮였다. 시내 특정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가 400~500㎍/㎥까지 치솟는 일도 잦았다. 이렇게 미세먼지 주의보가 자주 발령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이 유독 커진 것이다.

예전엔 중국발 황사가 미세먼지의 주 원인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엔 국내 자동차·공장·가정 등의 화석연료 사용이 더 큰 원인이라는 전문가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석탄을 쓰는 화력발전소와 경유차가 주범으로 지목된 것도 이 때문이다. 큰 이견이 없는 건 미세먼지 발생원 중 중국 등 국외 영향이 30~50%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경유차와 공장, 비산먼지가 주 원인이지만 각각의 비중은 연구에 따라 격차가 크다. 수도권의 경우 경유차가 2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게 환경부의 입장이다.

같은 자료를 전국으로 보면 다르다. 초미세먼지 1차 배출량 가운데 자동차를 비롯한 도로이동 오염원에서 발생한 양은 10.4%였다. 전국 사업장 등에서 배출한 초미세먼지가 39%로 압도적이다. 경유차는 도로나 공사장 등에서 날리는 비산먼지(16.1%), 생물성 연소(11.9%)보다도 비중이 작다. 국립환경과학원가 발표한 다른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도로이동 오염원이 직접 내뿜은 미세먼지는 1만2103t으로 2012년 1만2969t보다 800t가량 줄었다. 초미세먼지도 역시 800t가량 감소했다. 차량은 늘었는데 미세먼지는 줄었다는 의미다. 경유차 규제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반론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다 난데없이 고등어와 삼겹살 등 구이음식이 논란에 중심에 섰다. 환경부가 5월 23일 “음식을 굽는 과정에서 다량의 미세먼지가 배출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하면서다. 직화구이를 할 때 다량의 미세먼지가 배출되는 건 사실이다. 소고기를 구우면 테이블 주변 미세먼지 농도가 1만㎍/㎥ 수준으로 크게 증가한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시 음식점에서 직화구이로 배출되는 미세먼지의 양이 157t에 이른다. 수도권 전체로 확대하면 전체 미세먼지의 5% 안팎에 이르는 적지 않은 양이다. 원인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정부가 나서 고등어와 삼겹살을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꼽은 격이 되자 반발이 확산됐다. 고등어 가격까지 출렁이자 결국 6월 6일 환경부는 “음식을 구울 때 환기를 잘 시켜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한 발 물러섰다.

대기오염에 취약한 노년인구 급증

어쨌든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 학계의 경고는 무섭다. 5월 19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주최한 ‘미세먼지 저감 및 피해방지를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 토론회에 참석한 김창수 연세대 의대 교수는 “대기오염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같은 농도의 대기 오염 물질에 노출됐다 하더라도 건강에 피해를 입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라며 “한국의 경우 최근 노년인구의 비율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는 대기오염에 취약한 인구집단이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급속한 고령화와 맞물리면 엄청난 사회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비슷한 지적이 해외에서도 나왔다. OECD는 미세먼지에 둘러싸인 한국의 심각한 대기오염 문제를 경고하고 나섰다. 6월 9일 발표한 ‘대기 오염의 경제적 결과’ 보고서를 통해서다. 이 보고서에서 OECD는 ‘한국이 대기오염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2060년 OECD 회원국 가운데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 사망률이 가장 높고, 경제 피해도 가장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전 세계 조기 사망자 수는 2010년 300만 명 수준에서 2060년 600만∼900만 명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또한 OECD는 대기오염 관련 질병으로 인한 의료비 증가와 노동생산성 감소, 농작물 수확 감소 등으로 2060년 연간 2조6000억 달러(약 3000조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에 달하는 수치다. 한국 역시 GDP의 0.63%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이 예상된다.

정부 ‘클린 디젤 정책’ 공식 폐기 확인


▎고기 등을 불에 직접 구울 때 기름이 타면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는 도심·주택가 대기오염의 원인 중 하나다.
OECD는 대기오염에 따른 피해가 가장 우려되는 나라로 한국과 중국, 인도 등을 꼽았다. 2010년 인구 100만 명당 대기오염 조기 사망자 수는 한국이 359명으로 일본(468명)이나 영국·프랑스 등 유럽연합(EU) 주요 4개국보다 적다. 그러나 대기오염에 추가 대응을 하지 않으면 2060년에 한국의 조기 사망자 수는 1109명으로 3.1배로 급증한다. OECD 회원국 가운데 100만 명당 사망자가 1000명 이상인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공기가 가장 맑은 호주와 뉴질랜드는 2060년 95명에 그쳐 조기 사망률이 한국의 8.6%에 불과했다.

지난 5월 OECD가 발표한 ‘2016년 더 나은 삶 지수(BLI)’에서도 한국은 대기환경에서 OECD 34개 회원국을 포함해 조사대상 38개국 중 꼴찌를 기록한 바 있다. 당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29.1㎍/㎥로 OECD 평균(14.05㎍/㎥)의 배에 달했다. WHO 지침(10㎍/㎥)의 3배 수준이다. 사이먼 업턴 OECD 환경국장은 “대기오염으로 앞으로 50년 동안 벌어질 수명 단축 현상은 끔찍하다”면서 “대기오염으로 말미암은 조기 사망자 증가와 경제 손실 전망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 정부가 6월 3일 범정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경유차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를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10년 이상 된 노후 경유차 21만2000대가 2019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차된다. 서민 생계형 소형 경유차를 제외한 노후 경유차는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수도권 통행을 제한한다. 경유차가 미세먼지 발생의 주요 원인(수도권 29%)이라는 판단에 따라 노후 경유차를 퇴출하되 폐차 때 자동차 당 최대 7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경유버스를 압축천연가스(CNG) 버스로 대체하고, 전기차·수소차·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차를 2020년까지 판매되는 신차의 30%(연간 48만대) 규모로 늘린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그간의 ‘클린 디젤’ 정책도 공식적으로 폐기했다. 경유차의 저공해차 지정 기준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 역시 “클린 디젤 정책은 환경친화적 입법으로 도입했지만 중대한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경유차는 신차라도 공용주차장 할인 등 저공해차 지정에 따른 혜택을 받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관심이 집중됐던 경유가격 인상 논의는 공식적으로 미뤄졌다.

미세먼지의 주요 발생원으로 지목된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규제도 강화돼 가동한 지 30년 이상 된 노후 석탄발전소 10기의 운영을 중단한다. 전남 여수의 호남 1·2호기와 강원 강릉의 영동 1호기 등 노후 화력발전소가 대상이 될 전망이다. 현재 건설 중이거나 앞으로 지을 석탄발전소 9기는 미세먼지 배출 기준을 높이기로 했다. 도로 먼지 청소차를 보급하고, 공사장 방진시설을 확대하는 등 생활 주변 미세먼지에 대한 관리도 강화한다. 다만 고등어·삼겹살 등 직화구이 음식점처럼 서민이나 영세사업자와 관련된 시설은 직접 규제보다는 저감 설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통해 미세먼지를 감축하기로 했다.

부처 간 이견에 한계 드러낸 정부 대책

어렵게 나온 대책이다. 이 사이 정부는 미세먼지 발생의 주요 원인을 놓고 부처끼리 대립하면서 혼란을 키웠다. 경유차를 주범으로 꼽았던 환경부가 한 발 물러선 것은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와의 이견 때문이다. 의견 조율에 실패하면서 발표하려던 종합대책이 일주일 이상 연기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그나마 나온 것도 기존 정책의 재탕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노후발전소 배출 허용기준 강화나 노후 자동차 수도권 운행 제한 등은 이미 발표된 내용이다. 효과도 미지수다. 대책 발표 이후 환경운동연합은 논평을 통해 “노후 석탄화력발전소를 일부 축소해도 신규 석탄화력발전 확대 계획에 따라 미세먼지 배출량은 크게 치솟을 것”이라며 “축소 대상으로 지목된 노후 발전소 상당수는 이미 폐지하기로 결정된 설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향후 10년 내에 유럽 주요 도시 수준으로 미세먼지를 개선하겠다는 큰 목표를 세웠음에도 주 원인인 공장·비산먼지·경유차의 배출량을 어떻게 줄이겠다는 내용이 없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업계의 반발도 크다. 특히 자동차 업계는 당황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유로 6’ 기준에 맞춰 차량을 생산 중인데 규제를 더 강화한다고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더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윤순창 한국과학기술 한림원 부원장은 “한국은 뒤늦게 미세먼지 규제를 시작해 기초 연구와 신뢰할 만한 측정 자료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라며 “각종 센서나 디텍터, 측정 및 분석 장비를 제작·운영할 수 있는 측정 과학자 양성과 측정·분석 기기산업의 육성이 미세문제 해결의 첫 단계”라고 지적했다. 유경선 광운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는 “미세먼지를 줄이려면 아황산가스와 질소산화물 저감 기술이 매우 중요한데 한국에서는 이를 위한 원천기술 개발과 산업화가 거의 진행되지 못한 상황”이라며 “이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340호 (201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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